[기자수첩] 관행적인 논란 제목 붙이기 이제 그만…예결위원장 사퇴해야
<김재원 예결위장 비틀거리며 횡설수설···추경협상 중 음주논란>
오늘(2일) 중앙일보가 온라인에서 보도한 기사 제목입니다.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 협상이 이뤄지는 도중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음주 의혹이 불거졌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 기사 제목과 내용이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음주에 ‘논란’을 붙여 제목을 달았고, 기사에선 음주 뒤에 ‘의혹’이라는 단어를 붙였습니다. 중앙일보만 그런 게 아닙니다. 많은 언론이 ‘김재원 예결위장 음주 논란’ 등의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술 냄새 진동·횡설수설 모습 직접 목격한 기자들 … 그런데도 논란·의혹?
그런데 어제 오후 11시쯤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이 얼굴이 벌건 상태로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 나왔을 때 여러 명의 기자들이 있었습니다. 해당 기자들이 쓴 기사에는 당시 상황이 자세히 묘사돼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기사 잠깐 볼까요?
“브리핑을 하는 김(재원) 위원장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에서는 술냄새가 풍겼다. 간혹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 기자가 ‘약주를 한 잔 하신 것 같은데, 논의 와중에 한 것이라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자 김 위원장은 ‘아니 그냥 서로 편하게 이야기한 자리였다’고 답했다 … (중략)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에게 ‘술을 마셨냐’고 묻자 김 위원장은 대답하지 않고 황급히 돌아섰다. 위원장실 직원들이 기자를 막아섰다. ‘예결위 심사중에 위원장이 술을 마셔도 되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내가 뭘 술을 마셨냐’며 부인했다.”
(머니투데이 <[현장+] 밤 11시 10분에 나타난 김재원 예결위원장, 술냄새 진동했다>)
머니투데이 기사는 정확히 ‘술냄새 진동했다’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저는 이런 제목이 사실에 기반했다고 봅니다. 오버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최대한 팩트 위주로 보도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다른 언론들이 보도한 기사 제목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됩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중앙일보 외에도 많습니다. 몇 가지만 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야 추경안 실랑이 중에 김재원 예결위원장 ‘음주 브리핑’ 논란> (뉴시스)
<김재원 예결위원장, 추경 ‘음주심사’ 논란…“허허, 뭐 그걸 가지고”> (동아일보)
<김재원 예결위원장, 음주 후 추경 논의?> (매일경제)
<[영상] 추경 실랑이 중 김재원 예결위원장은 음주 브리핑?> (한겨레)
<김재원, 추경안 협상 중 ‘음주 논란’…온라인 시끌> (한국일보)
<국회 예결위원장, 한국당 김재원 의원 ‘음주 심사’ 논란> (YTN)
상당수 언론이 ‘논란’으로 보도했고, 물음표를 붙인 곳도 있습니다. 논란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대상이나 소재에 대하여 이러니저러니 서로 다르게 주장하며 다툰다’라는 의미입니다.
정치 저널리즘의 고질적 문제-기계적 균형이 낳은 ‘논란 저널리즘’
그런데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의 어제 오후 브리핑 상황이 ‘서로 다르게 주장하며 다투는’ 상황인가요? 아닙니다. 한겨레가 찍은 영상만 봐도 김재원 위원장이 횡설수설하는 모습, 그리고 몸이 비틀거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앞서 소개한 머니투데이 기사에서도 기자가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라면 김재원 의원이 술을 마셨는지 여부를 쉽게 알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왜 상당수 언론은 ‘논란’이라고 보도할까요? 저는 그냥 관행적으로 ‘논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관행이야말로 우리 언론이 고쳐야 할 점이라고 보구요.
저는 김재원 예결위원장의 어제 오후 상황은 ‘논란거리’가 아니라 비판받아 마땅한 행위라고 봅니다. 자유한국당에 김재원 예결위원장 사퇴를 요구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것이고 실제 예결위원장 사퇴까지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차라리 언론이 논란이 아니라 파문이라고 했으면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을 겁니다. 파문은 ‘어떠한 일이 다른 데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의미죠. 국회 예결위원장이 추경 예산심사를 하는 도중에 술을 마셨고 이 때문에 국회 일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파문이라는 단어는 나름 적절하다고 보니까요.
하지만 한국 언론은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일단 ‘논란’을 붙입니다. ‘무차별 폭행 논란’ ‘음주운전 논란’ ‘성추행 논란’ ‘난폭운전 논란’ 등 굳이 논란을 붙일 필요가 없는 사안까지 논란으로 보도합니다. 폭행은 폭행이고, 음주운전은 음주운전일 뿐입니다.
김재원 예결위원장, 심사 도중 몇 시간 사라져 … ‘술 마셨다’라고 왜 못하나
저는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이 추경 심사 중에 술을 마신 것과 관련해 분명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음주도 문제지만 추경 심사 도중에 예결위원장이 몇 시간 동안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퇴해야 할 사안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앞서 소개한 머니투데이 기사 가운데 일부를 다시 요약합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이 사라졌다. 미세먼지·재해재난·경기대응 추가경정예산(추경)안 막바지 심사를 벌이고 있던 때였다. 7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두고 여당은 원안 고수를 주장하고 있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적자국채 발행규모인 3조6000억원 삭감을 요구하며 몇시간째 대치중인 상황이었다. 모 예결위 간사는 ‘예결위원장이 심사도중 몇 시간 동안 사라져서 경찰에 신고해서 찾자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털어놨다.”
(머니투데이 <[현장+] 밤 11시 10분에 나타난 김재원 예결위원장, 술냄새 진동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오늘(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김재원 의원을 겨냥해 “예결위원장으로서는 사실 자격상실”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저는 언론도 이런 관점에서 이번 사안을 보도하는 게 온당하다고 봅니다. 논란이 아니라 ‘예결위원장으로서 자격상실’입니다.
최근 민언련이 한국 언론의 이런 관행을 비판한 보고서 <기자님 “지적이 어디서 나왔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를 냈습니다. 저는 한국 기자들이 이 보고서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논란 저널리즘’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기자님 “지적이 어디서 나왔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라는 비아냥을 계속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