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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역사 속에서 사라진 3.1운동 주역 상당히 많다”[이영광의 발로 GO 인터뷰 312] 이재석 KBS 탐사보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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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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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9  19:03:33
수정 2019.03.09  19: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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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난 1일 KBS에서는 일제가 작성한 ‘3.1운동 계보도’를 발굴해 보도했다. 만세 운동 초기인 1919년 3월 22일 조선 총독부 경무 총감부가 작성한 이 계보도는 3.1운동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주도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우리가 알던 인물도 있지만 모르던 인물도 있다. KBS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에 대해 추적했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KBS 사옥에서 ‘3.1운동 계보도’를 취재한 이재석 기자를 만나 계보도 발굴 과정과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에 대한 취재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이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이재석 KBS 탐사보도부 기자. ⓒ 이영광

3.1운동 계보도, 학계 주목도 높지만 대중의 관심은 저조

- 지난 1일 조선 총독부가 작성한 ‘3.1운동 계보도’를 일본 현지에서 발굴해 보도하셨잖아요. 소회가 있을 거 같아요.

“사실 역사에 관심이 없잖아요. 이번 보도를 하는 데에 있어서 제가 3.1운동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아니에요. 다만 이번에 우연히 계보도를 입수했기 때문에 3.1운동에 대해 저도 많이 공부하게 되었고 이번 기회에 탐구하고 학습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소회를 말씀드리면 단순히 이게 단독이거나 특종 보도라는 걸 떠나서 100년 전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잖아요, 그게 남다르더라고요.”

- 어떤 점이 남다르던가요?

“당시 계보도에 등장한 사람 중 소수긴 합니다만 변절한 사람도 있죠. 그러나 그 시절에서는 거기 나오는 140명의 등장인물 모두가 3.1운동에 자기 모든 걸 던진 사람들이거든요. 특히 학생들이 많아요. 지금으로 치면 중고생, 대학생의 이름이 쭉 나열되어 있는데 그분들은 자기 청춘을 다 던져서 3.1운동에 참여하신 거죠. 일제가 작성한 거긴 하지만 100년 전 흔적을 확인하고 실제 취재 과정에서 그분들의 행적이나 후손까지 만났어요. 3.1운동이 그전에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개념이었다면 이번 취재할 때는 저 스스로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 보도가 나가고 반응이 있나요?

“그 부분은 제가 아쉬운 부분입니다.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반응이 꽤 있습니다. 이게 새로운 연구 소재가 되고 기존에 애매했던 부분을 설명해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전문가나 국가보훈처 같은 서훈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이 자료를 매우 유의미하게 생각하는 분위기 있고 같습니다. 예를 들어 계보도에 등장하는 사람 가운데 국가 보훈처에 자료가 없는 분들을 집중적으로 추적했거든요. 그래서 후손도 만났고 그분들의 행적을 저희가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런 부분은 학계에서도 그동안 파악 안 됐고 국가 보훈처에서도 파악 안 된 거거든요. 그런 부분은 저희가 새롭게 추적과 취재를 통해 발굴한 부분이에요.

또 계보도를 전문적으로 들어가 보면 중간중간 특색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북한 지역 목사들이 상당수 나오거든요. 당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지는 과정에서 북한지역 3.1운동 동력이 퍼져나가는 데에 있어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한 북한지역 목사들 이름이 나열되거든요. 이런 건 향후 학계에서 새롭게 연구하고 논문 쓰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그런 부분은 학계나 전문가들이나 국가보훈처에서는 주목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대중적인 호응과 관심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가장 근본적으로는 요즘 워낙 언론사가 많아서 웬만한 기사 같은 경우 서로 인용 보도를 안 해서 회자가 안 되잖아요. 그런 측면이 있는 거 같고 또 역사 문제다 보니 관심이 제한적인 거 같기도 하고 삼일절이 지나면 사람들은 잊어버리잖아요. 여파가 남아 소비되는 게 아니라서 아쉽습니다.”

   
▲ <이미지출처=KBS '탐사K' 보도 영상 캡쳐>

“3.1운동 계보도 발굴, ‘역사저술가’ 김광만 씨 도움 컸다”

- ‘3.1운동 계보도’는 어떻게 발굴하게 된 건가요?

“이 대목은 제가 명확하게 말씀드리고 싶은데 아시겠지만 제가 일본 돌아다니며 발굴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고요. 따라서 사료 발굴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해요. 그분이 김광만 씨예요. 김광만 씨와 저의 인연이 오래됐어요. 2015년 제가 안중근 의사 거사 장면을 찍은 필름을 찾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김광만 씨와 공동 취재를 했었어요. 그분은 사료 발굴에 능력이 탁월하신 분이거든요. 이번에도 사실 올 8월 광복절 즈음 2부작 다큐멘터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를 김광만 씨와 저희 팀이 공동으로 함께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 계보도가 발굴된 거거든요. 그러니 실질적으로 발굴에 있어서 혁혁한 공을 세우신 분은 김광만 씨고 그분 발굴을 토대로 저희는 추적 작업을 본격적으로 한 거죠.”

- 제보를 받은 건가요?

“제보라기보다 일본에서 역사적 사료를 발굴하는 데에 있어서 포인트가 있습니다. 막연하게 뒤지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일본 외무성이 설립한 자료 사료관이나 국회 도서관 헌정 자료실 등의 공공기관들이 기본적으로 사료 발굴하는 포인트들이고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자료가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저희가 발굴한 것처럼 일본의 고서점들 같은 경우도 사료가 굉장히 많아요. 이번에도 직접 다녀왔는데 100년도 더 된 지도나 지표가 무수히 많거든요. 그런 고서점에서 발견된 거고 한국 관련 자료를 다수 취급하는 고서점이었습니다. 거기 우리 사료 발굴하시는 분이 종종 가는데 우연히 그 고서점에서 한반도 관련 자료 더미 속에 그게 있었던 거예요, 이번 자료는 처음 선보이지만 다른 자료들은 기존에 알려진 자료도 있고요. 자료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섞여 있는 자료 중 이 계보도가 들어가 있던 거죠.”

“우리가 몰랐던 3.1운동 주역 밝히는 게 핵심”

- 처음 그 자료 봤을 때 어떠셨어요?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 이게 들어와서 처음엔 이게 기존에 알려진 자료인 줄 알았어요. 그러나 학계나 전문가들에게 알아보니 한 번도 본적 없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저희는 곧 삼일절이 다가오니 그때 보도하는 게 맞아 보이는데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보도해야 하는지 고민이 시작 됐고 약간의 흥분이 됐죠.

포인트를 잡는 게 중요했어요. 뭐냐면 단순히 계보도가 처음 발굴되었다는 것만 전달하면 안 되고 계보도에 어떤 내용이 있고 특히 우리가 몰랐던 숨은 주인공을 밝히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밝혀내지 못하고 단순히 오래된 종이 하나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는 시청자들에게 소구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추적과 내용, 사람을 다루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죠,”

   
▲ <이미지출처=KBS '탐사K' 보도 영상 캡쳐>

- ‘3.1운동 계보도’에 등장하는 인물이 140명이에요. 우리가 알던 것과 갭이 있는 것 같은데.

“바로 그 부분입니다. 뭐냐면 3.1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그 당시 국민 10명 중 1명이었어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참여했습니다. 다만 이번 계보도는 처음부터 3.1운동을 주도하고 기획한 사람들이잖아요. 주도해 참여한 사람이 몇 명인지 따져본 적 없어요. 다만 처벌받은 사람을 학계에서 따져본 적은 있었죠. 그러나 그 경우에도 이렇게 많은 수는 아니었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140명이 등장하는 계보도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규모보다 많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럴 수 있기 때문에 불일치가 나오는 거죠.

어떤 불일치가 나오는가 하면 140명중에서 독립 유공자 훈장 못 받은 사람을 일일이 따져봤더니 34명이 나왔거든요. 바로 거기서 갭이 나오는 거죠. 기존에 역사적 평가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서 독립 유공자가 되어 훈장 받은 분도 있지만, 아예 국가가 이 사람에 대해 정보 값이 없어서 특별히 훈장 못 주고 독립 유공자로 인정해주지 못한 사람도 꽤 있었다는 것이고 바로 그 지점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이고 저희가 가장 취재에 집중했던 부분이 그 지점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역사 속에서 사라진 3.1운동 주역.. 젊은 학생 많다”

- 안 알려진 분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을 거 같은데.

“기본적으로 안 알려진 분은 정보 값이 없는 분들이잖아요. 정보 값이 없으니 국가보훈처가 이분들을 평가도 못 하고 독립 유공자로 인정해 주지도 못한 분들이거든요. 그럼 이분들은 왜 정보 값이 없을까를 살펴보면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꽤 많아요. 3.1운동 참여한 후 행적이 안 보이는 경우에는 대부분 20대 때 열심히 3.1운동한 다음에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기록이 안 남은 분이 있어요.

또 공통점 중에는 후손들이 우리 조상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어필하거나 국가 보훈처에 유공자 신청하지 않은 분들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후손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정보가 있었을 텐데 후손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본인의 조상이 3.1운동에 적극 나섰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인지하더라도 막연하게 ‘우리 할아버지가 독립운동 열심히 하셨대’ 정도로만 구전으로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런 분들인 거 같아요.”

- 그중에 변절한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이 저희가 이번에 취재하면 고민한 부분 중 하나예요. 약간 설명해 드릴게요. 140명이 나오잖아요. 이들 중에 최남선, 최린같이 유명한 변절자가 있어요. 이런 사람은 변절해서 훗날 우리는 대표적인 친일파로 알잖아요. 그러나 계보도에 등장할 때만 해도 변절하기 전이었죠.

그러나 문제는 이겁니다. 저희가 140명 중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34명을 추렸잖아요. 그 34명을 국가보훈처에 넣어 질의를 해봤더니 34명 중 10명 정도는 친일로 변절했거나 혹은 월북해서 훈장 못 준다는 답변이 왔어요. 물론 그것도 논란의 여지가 많아요. 하지만 그걸 별개로 치더라도 34명 중 10명은 그렇고, 또 다른 9명은 심사 대상자로 선정돼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34명 중 19명을 빼니까 15명이 남는데 이들은 국가보훈처에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저희가 15명 추적해서 후손도 만나고 자료나 사진이 나온 거죠.

문제는 15명에 대한 정보가 워낙 없다 보니 이분들이 3.1운동은 하셨지만, 훗날 만에 하나 변절하셨다면 우리가 이 사람을 숨은 주인공이라고 띄워 줬을 때 실제로 이분이 나중에 변절하거나 하는 분이라면 우리가 이분들을 조명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민족을 배반한 사람 조명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어요. 그래서 학계 전문가에게 물었어요.

그랬더니 전문가들 답변이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왜냐면 친일으로 변절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료가 나온다는 거예요. 저희가 신문 기사도 다 검색했거든요, 만약 15명 중 훗날 친일파로 변절해서 활동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흔적이 안 나온다는 건 그분들이 최소한 소시민으로 사셨거나 아님 어디 가서 돌아가셨거나 만주에서 독립운동 했다는 것이라서 그런 고민은 취재진이 안 해도 된다고 전문가들이 조언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취재 과정의 근본적 고민이 해소됐어요.”

-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지 이후 친일 행적이 나올 수도 있잖아요?

“맞습니다. 이후 조금이라도 나올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 데 저희가 판결문이나 취조문 등 검색 많이 했어요. 거기서 어떤 방식으로든 조각이라도 걸려든다는 거죠. 그러나 조각이 안 나왔다는 건 친일로 변절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전문가들 이야기입니다.”

   
▲ 3.1운동 계보도 발굴 관련, 도쿄 고서점에서 촬영 중인 모습. <사진=이재석 기자 제공>

“3.1운동 초창기 주도자 발굴된 것.. 주요인물 더 있을 수도”

- 보도를 보면 이걸 작성한 게 1919년 3월 22일 이잖아요. 이때는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던 시점이었단 말이죠. 계보도에 등장하지 않지만, 중요 인물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을 거 같은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이 계보도는 저희가 확인했더니 1919년 3월 22일 조선 총독부 경무 총감부가 작성한 거거든요. 3.1운동 초기 경찰 수사 단계에서 일차적인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검찰로 송치하는 단계에서 작성된 계보도예요. 말씀하신 대로 3.1운동은 그날 하루만 발생하고 만 것이 아니라 4월까지도 계속 전국적으로 만세 시위가 있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계보도는 3.1운동 초창기의 주도자라고 볼 수 있으며, 수사 초기 일제가 파악한 사람들이라고 정리한 것일 수 있습니다. 주요 인물은 더 있을 수 있죠.”

- 그럼 총독부가 정리한 자료도 더 있을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더 있을 수도 있고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요. 다만 국내에도 자료가 있거든요. 국사편찬 위원회에 남아 있는 자료를 보면 판결문이나 취조문서가 있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 형사처벌 받은 분들은 받으셨던 편입니다. 다른 자료가 있을 수도 있지만 윤곽 정도 나왔다고 볼 수 있죠.”

- 기록 남아 있지 않은 15명에 대한 기록도 조사하셨잖아요. 과정이 어떠셨어요?

“저희는 거기에 취재력을 가장 집중했는데 말씀드렸듯이 140명에서 34명을 추리고 거기서 15명을 추린 거예요. 15명이 저희 취재 핵심이었거든요. 기본적으로 그 당시 기사, 판결문, 취조서를 모두 검색했고 이분들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자료를 먼저 검토했고 가장 중요한 계보도에 소속이 나와요.

예를 들어 주익 선생 같은 경우 ‘보성전문 졸업생’으로 쓰여 있어요. 그 말은 고려대에 자료가 있을 수 있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1919년 보성전문 학교를 졸업한 사람을 찾는다고 고려대에 문의 했죠. 운 좋게도 그 당시 학적부와 사진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후손을 만나고 싶지만, 그것만 가지고 후손을 못 만나잖아요. 주익 선생이 신안 주 씨 거든요. 종친회를 찾아 갔어요. 거기 족보가 있잖아요. 거기서 주익 선생 후손들 이름을 알 수 있었고 그렇게 수소문해서 부산에 있는 후손을 만난 거거든요. 이강우 목사 같은 경우 저희가 후손을 만날 수 있었던 게 이 목사가 경기도 이천에서 활동했다는 게 계보도에 나와요. 목회하던 교회를 중심으로 수소문 끝에 후손을 만나는 식입니다.

리포트에서는 시간 제약으로 일부만 전해드렸지만 15명 전체에 대해 조사한 자료가 있어서 국가보훈처에 참고자료로 넘길 예정이에요. 15명에 대한 조사 결과는 대부분 그런 식이에요. 신문 조서, 판결문, 당시 언론 기사, 종친회, 학교 학적부, 종교기록을 다 뒤져서 추적했어요.”

   
▲ <이미지출처=KBS '탐사K' 보도 영상 캡쳐>

“할아버지 독립운동 사실 뒤늦게 알게 된 후손들.. 감동 받아”

- 후손 만나셨는데 어떠셨어요?

“역할 분담해서 이세중 기자가 후손을 만났거든요. 전해드리자면 처음 보는 할아버지 사진이라 감동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막연하게 할아버지가 독립운동 하셨다는 이야기를 구전으로 전해 들었지만, 계보도에 등장하고 주익 선생 같은 경우 3.1운동 이후 신간회 활동하셨거든요. 이분은 꾸준히 독립운동 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후손들 입장에서는 본인들 조상 얼굴도 확인하고 행적도 확인하고 계보도에 이름도 등장했죠. 굉장히 감동해 하셨더라고요. 실제 인터뷰에서 느껴지고요.”

- ‘3.1운동 계보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저도 전문가가 아니라 거창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는 거 같아요. 다만 다시 한 번 강조해 드리지만, 주인공은 여러 명이었어요. 우리가 유관순 누나나 민족대표 33인만 기억하는 게 있지만 그 당시 학생이나 기생까지도 3.1운동에 나섰잖아요. 계보도에 국한시켜 말하면 초기 3.1운동을 기획하고 주도했던 사람들 주요인물 가운데서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 인물이 상당히 있다는 거죠. 우리는 너무 알려진 사람만 기억하는 면이 있는데 계보도가 숨은 주역과 숨은 주인공을 드러내 주죠. 더더군다나 일본이 작성한 거잖아요.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요.”

- 취재하며 느끼는 것도 있었을 거 같아요.

“제가 예전에 김광만 씨와 안중근 필름을 찾아 나설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역사 다큐를 하면 빨려 들어가는 면이 있어요. 저 스스로 그 시대로 빨려 들어가요. 그 당시 사람들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게 되어요. 이번에 계보도도 이름 적힌 옛날 종이 쪼가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거기 등장하는 이름의 면면을 보면서 저 스스로 100년 전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역사다큐를 하다 보면 그런 지점이 오거든요.

최근 탐사보도가 사람들 주목을 받으려고 선정주의로 가는 면도 있어요. 그런데 올해는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100주년이기 때문에 올해만큼은 탐사보도가 역사 사료 발굴에도 나름 성의를 보여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역사 사료 발굴 탐사보도를 충실하게 할 수 있는 건 KBS가 다른 언론에 비해 좋다고 봐요.”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탐사보도가 이젠 주목 끌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탐사보도의 다양한 장르들을 봐주시고 관심 있게 지켜보시는 게 어떨까 해요. 언론환경이 달라지면서 저희 말고도 탐사보도 하는 매체가 늘어났잖아요. 탐사보도에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영광 기자

#이상호의_뉴스비평 https://goo.gl/czqu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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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교수 “금강산 관광 재개, 한국 정부 하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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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평화 무드였던 한반도가 지난 2월 말 베트남...
“문재인 공약, 추상적인 게 많아…대부분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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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2년 맞아 지난 9일 <문재인미터...
“검경 수사권 조정은 어느 한쪽이 나빠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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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4당이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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