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8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백화원 초대소로 이동하며 시민의 환호에 손 들어 답 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경축 기념공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보기 위해 입장한 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 (아래) 평양남북정상회담 3일째인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백두산 천지에서 손을 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제공=평양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북한을 비난하던 보수세력이 정작 북한의 변화가 분명해지자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지금 변하지 않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 보수세력이다.” 

오늘자(22일) 경향신문 26면에 실린 이대근 논설고문 칼럼 가운데 일부입니다. 이 고문은 “시대 흐름에서 뒷걸음치던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70년 동결된 체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하는 데 인색할 필요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사실 북한 체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우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전체주의적인 속성이 강하고 분단 이후 절대권력이 3대를 통해 ‘세습’돼 왔다는 점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북한이 올해 3차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보여준 모습은 이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제가 굳이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북한이 어떤 변화를 해도 우리는 믿지 않겠다는 보수야당과 조선일보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고문이 언급한 것처럼 “지금은 말, 행동, 합의문, 계획, 이미지에서 일치한다. 이런 적이 없었다. 거짓 쇼나, 사기극일 수 없다”는 쪽에 방점이 찍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일부 그리고 조선일보 등은 여전히 북한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북한을 비난하던 보수세력이 정작 북한의 변화가 분명해지자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이충재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도 오늘(22일) 비슷한 칼럼을 실었습니다. <보수단체보다 못한 자유한국당>이라는 칼럼인데 일부를 소개합니다. 

“보수단체의 현실적 변화 모색에도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당이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은 안타깝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우리 국방의 눈을 빼버리는 합의’라고 했고, 김성태 원내대표는 ‘영토주권 포기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지방선거 패배 후 냉전반공주의 노선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은 공염불이 됐다. 정치적 적대관계인 문 대통령을 견제하겠다며 한반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애써 부인하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정당이 시대변화를 외면하면 기다리는 건 민심 이탈과 고립뿐이다.”

2015년 ‘통일나눔펀드’ 조성 때보다 후퇴하는 조선일보

사실 저는 보수야당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조선일보의 후퇴(?)가 더 안타깝습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2014년 ‘통일은 미래다’에서 경제사회적으로 통일이 남북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기획기사를 통해 조명했습니다. 특히 당시 통일에 관심이 없거나 반감이 있었던 일부 젊은 세대들에게도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통일은 미래다’에 대한 조선일보의 관심은 같은 해 4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 의해 다시 한번 확인됐습니다. 방상훈 사장은 당시 한국기자협회 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통일은 미래다’ 시리즈와 관련해 “조선일보의 뿌리는 이북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북한 동포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통일에 대한 관심을 남보다 더 오래전부터 가져왔다”고 말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후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을 설립했고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 등을 대상으로 통일나눔펀드 사업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통일과 나눔’ 재단에는 170만명이 기부에 참여해 3137억원을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며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에 나서려고 하는 이때 ‘냉전수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 안타깝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쳤을 때보다 지금 남북관계가 훨씬 진전된 상황인데 조선일보의 지면을 보면 ‘반통일’ ‘냉전’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오늘자(22일) 지면 제목만 잠깐 살펴볼까요?

<文대통령, 수도권 위협하는 北 장사정포 감축 언급… 전문가들 “韓美 화력자산과 맞바꾸면 우리가 손해”> (조선일보 4면)
<핵사찰 양보 없는 ‘미국의 벽’ 앞에 선 文대통령> (조선일보 5면)
<“北 영변 핵시설 폐기前에 사찰해야”> (조선일보 5면)
<9·19 평양 공동선언 “北이 잘 지킬 것” 49%> (조선일보 5면)
<정부, 對北제재의 한 축인 ‘5·24 조치’ 사실상 무력화> (조선일보 5면)

평양정상회담에 대한 조선일보의 ‘트집잡기’ 정도가 심하다

가장 압권은 박은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사회부장의 칼럼 <남쪽에서만 ‘사람이 먼저다’?>입니다. 박 부장은 북한 집단체조를 인권적 측면에서 조명한 뒤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의 눈물, 땀, 고통, 공포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비슷한 옷차림에 같은 꽃을 들고, 발 동동 구르는 ‘타이밍’까지 기막히게 맞추던 그들이 대통령 눈에는 ‘자발적 시민들’로 보였을까”라고 반문하면서 “문 대통령은 북한의 봉건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신체 갈취 시스템’에 왕관을 씌워줬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은 남쪽에서나 하는 말이었나 보다”라며 비난했습니다. 

저는 박은주 부장 칼럼을 읽으며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에 따르면 “과거 사회주의권 지도자도 그렇게 많은 주민들 앞에서 대중연설을 한 적이 없는” 파격과 대우를 이번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것인데 박은주 부장의 ‘눈’엔 이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15만 명의 평양 시민 앞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연설을 한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고, 한반도 비핵화 같은 ‘정치적인 사안’을 꺼내는 것 자체도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평양 연설’에선 그것이 그대로 실행됐습니다. 이 또한 주목해야 할 일이고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 박은주 부장의 시야엔 이런 점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과 관련해서도 체제를 선전하고 정치적인 내용을 줄이면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환영의 의미를 더 강조했습니다. 특히 첨단기술을 동원해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예전의 집단체제 공연에서 카드섹션이 주를 이룬 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평화 통일에 대한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점도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 <이미지출처=조선일보 인터넷판 캡쳐>

조선일보가 과연 인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나 

그런데 박은주 부장 레이더에는 이런 것들은 잡히지 않은 채 오로지 ‘집단체조’의 비인간성과 동원된 평양시민의 인권(?) 같은 부분만 표시가 되나 봅니다. 이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최소한의 균형은 갖추는 게 ‘칼럼의 기본’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의 달라진 모습 그리고 변화된 부분에 대한 평가와 함께 이런 지적을 했다면 나름 ‘공정한 비판’이 될 수 있었는데 박 부장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20일 전국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를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잘했다’(매우 잘했음 52.5%, 잘한 편 19.1%)라는 긍정평가가 71.6%로 집계됐는데 조선일보 지면엔 ‘부정’ ‘비난’ ‘트집잡기’가 난무합니다. 자유한국당 태도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사실 다른 건 논외로 하더라도 조선일보가 ‘인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군사독재정권을 옹호했으며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공격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언론이 조선일보 아닌가요? 자신들의 과거 행태에 대해 조선일보는 지금까지 제대로 사과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런’ 조선일보가 평양정상회담 성과를 비판하면서 난데없이 ‘북한 인권’ 운운합니다. 조선일보에게 북한 인권은 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요?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