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인 12일 오후 언론의 눈길은 청와대로 쏠렸다. 박근혜가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와 국민의당 대표 박지원을 만난 자리에서 산적한 국정 과제들을 풀어갈 대책을 어떻게 제시할는지가 커다란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드러난 결과를 보면 박근혜가 야당 대표들에게 ‘안보 강의’에 가까운 ‘설교’를 하면서 ‘전쟁 겁박’을 한 것이 대화의 주류를 이룬 것으로 드러났다. 북핵 문제 해법에 관해 야당 대표들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면서 사드 해법을 논의할 ‘여·야·정 안보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으나 박근혜는 거절했다. “민생협의체와 달리 안보는 여야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고 대통령이 책임지고 끌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한 해에 국민의 세금으로 40조원 가까운 국방예산을 쓰면서 ‘안보’를 대통령이 독점하겠다는 논리를 그 누가 인정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는 사드 배치,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민정수석 우병우 사퇴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두 야당 대표가 구체적으로 요구한 내용도 아예 거부했다. 지난 5월 13일의 회동에서는 ‘여·야·정 민생협의체 구성’ 등 6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공동발표문 조차 내지 못했다. 서양의 절대군주 시대에 왕들이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말하던 사실이 연상된다.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 세종실에서 제41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박근혜와 야당 대표들의 만남이 끝난 지 몇 시간 뒤인 12일 저녁 7시 44분에 경북 경주시 남서쪽 9km 지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일어났고, 50여분 뒤인 8시 32분에는 남남서쪽 8km 지역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일어났다. 한반도에서 지진이 관측된 뒤 최대 규모였다. 원전이 밀집된 곳에서 가까운 지역인 데다 부산을 비롯한 대도시들에까지 지진의 영향이 미쳤기 때문에 전국이 공포에 휩싸였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한 지 두 시간 가까이 된 밤 9시 반께에야 관련 부처의 보고를 받고 대책을 지시했다.

재난방송주관사인 KBS의 1TV는 1차 지진이 일어난 이후 시간에 정규방송을 계속하다가 밤 8시와 8시 45분 사이에 4분가량의 뉴스특보를 방영했다. 뉴스특보의 내용은 지진 발생 지역과 규모 등 기상청이 발표한 기본 정보에 불과했다. 2차 지진 직전인 8시 25분부터는 일일연속극 ‘별난 가족’을 예정대로 방영했다. 국정책임자가 ‘국가적 비상사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리고 그가 임명한 ‘낙하산 사장’이 경영하는 ‘공영방송’이 시청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밤이었다. 

※ 이 글은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