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3일부터 열흘 동안 개인적 목적으로 먼 나라에 다녀왔다. 와이파이가 잘 통하지 않는 곳이어서 한국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처럼 여유 있게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길지 않은 나들이를 마치고 ‘대한민국’에 돌아와 보니 엄청난 사건들이 벌어져 있었다. 박근혜 정권의 일방적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경북 성주 군민들의 결사적 저항,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상상을 초월하는 축재와 ‘특급 갑질’,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의 충격적인 ‘성매매’ 의혹 등이었다.

그 짧은 기간에 터진 사건들은 언론매체들이 연말에 선정하는 ‘10대 뉴스’에 오를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크고 한국을 동아시아의 외딴 섬으로 고립시킬 수도 있는 사드 배치는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그리고 우병우의 정치적, 윤리적 파렴치행위는 그 누구보다도 박근혜 자신이 먼저 대국민 사과를 하고 그에게 책임을 물어 해직을 해야 마땅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 앞으로도 국민들을 지켜내기 위해 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해 지켜갈 것이다.”

▲ 현기환(오른쪽)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우병우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박근혜는 우병우도 참석한 그 회의에서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 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 가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박근혜의 ‘참모들’이 지켜야 할 ‘소명’은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드러난 부정행위만으로도 파면을 당해야 마땅한 우병우가 국민을 위해 어떤 소명을 수행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사회가 ‘총체적 국란’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여론이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2일 발표한 주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55%, 긍정적 평가는 32%였다. 특히 대구·경북에서는 부정적 평가가 지난주보다 11%나 높아진 52%, 긍정적 평가가 10%나 떨어진 38%로 나타났다. 이제 박근혜가 기댈 언덕은 아무 데도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주문(呪文)을 외우듯이 ‘소명’과 ‘소신’을 외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을 달래기 위한 ‘최면’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 글은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