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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발뉴스] ‘환상의 빛’ 당신은 그때, 왜였나요?- 때론 빛으로부터도 거리를 두라,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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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문화평론가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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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05  17:29:45
수정 2016.09.05  17: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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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겨울 어느 엠티의 밤에 들은 이야기다. 여행 중 산꼭대기에서 때마침 불어온 높새바람을 만나본 이의 경험담이었다. 그 바람이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해 잠시 쉴 겸 앉았던 데서 일어나기가 싫어진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행복감이 밀려와 그 바람 속에 이대로 있고 싶어진단다. 주변은 쌀쌀해지고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그 따스함 속에 잠시만 더 있자고 여기는 순간 스르르 잠이 온다고 한다. 갑자기 번쩍 자기도 모를 어떤 힘이, 마치 생의 본능 같은 게 치밀어 올랐고 한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등을 떠밀리듯 산을 내려오고 난 뒤 나그네는 산 아랫동네에서 듣게 된다. 그 순간 머물기를 택하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너무나 힘들지만, 그게 유일한 살 길인 듯이 보이는 경우다. 때로는 빛으로부터도 거리를 둬야 한다, 살려면. 살기 위하여.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마저 일단은 거리 두기에 성공한 뒤에라야 가능해지는지도 모른다.

   
▲ <이미지=영화 ‘환상의 빛’ 메인 예고편 캡처>

<환상의 빛 (幻の光, 1995)>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이며 “영화 역사 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 중 하나”라는 찬사가 따라다니는 영화다. 만든 지 20여년만에 우리나라에선 처음 개봉한다는 사실도 관객에게 묘한 느낌을 안겨준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유미코는 행방불명 된 할머니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동네 친구 이쿠오와 결혼 후 갓 태어난 아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중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 이쿠오는 자살한다. 기차가 오는데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는 게 그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증언이다. 별다른 징조도 이유도 없는 말 그대로 날벼락이었다. 일상은 산산조각난다. 그래도 그녀는 신혼집에서 그대로 살며 주변의 도움으로 아이를 키운다. 재혼해 유치원생이 된 아들과 바닷가 마을로 이사해 안정을 찾게 된 그녀는, 그제야 기억 속에 여전한 과거의 상처들과 마주하게 된다. 너무 아파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었던 것들을 비로소 바다 앞에서 풀어놓는다. 

   
▲ <이미지=영화 ‘환상의 빛’ 메인 예고편 캡처>
   
▲ <이미지=영화 ‘환상의 빛’ 메인 예고편 캡처>

그렇게 아무 이유조차 없는 일들은 당한 이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된다. 불쑥 일어나버리고는 어떤 설명도 이해도 차단해버린다. 허나 그 이후 삶은 완전히 헝클어지고 만다. 망가져버린 탓이다. 그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대못처럼 박혀 있는 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세월이 가고 기억이 희미해져도 빠지지 않는 못은 그 자리에 그대로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피가 흘러 빈사 상태인데 출혈부위를 못 찾을 때의 현기증이 이럴까. 남겨진 이들은 떠난 이가 사라진 자리에서 묻고 또 묻는다. “당신은 그때, 왜 그랬나요?”

아마 한동안, 이유라도 알아야겠다며 덤빌 때는 어느 정도 악착같은 삶의 의지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란 애초부터, 바깥에서 던져진 돌덩어리 같은 것이다. 왜 그랬는지 알 수도 없겠지만, 안다고 하여도 어쩌면 그 이후 더 지독한 허탈감이 찾아올지 모른다. 떠난 이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문제’의 정답을 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완전한 적막? 오롯한 절망? 깨달아도 깨닫지 못해도 결국 남은 것은 침묵뿐일 것인가.

츠베탕 토도로프는 책 <환상문학 서설>에서 환상은 ‘망설임’에서 비롯된다고 썼다. 망설임이 유지되는 동안만 환상도 유지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망설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망설임과 머뭇거림 사이, 환상의 진정한 뿌리는 무엇일까. 어쩌면 슬픔일까.

삶에는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는 것, 그 어떤 말로도 어떤 식으로도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괴롭다. 하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문제란 사실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잊지도 화해하지도 못한 채 그 응어리들을 안고 사는 것, 그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내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당신’과 사건 현장에서의 당신은 다른 사람이다. 어쩌면 ‘나’만 몰랐던 것일까. 나는 당신을 전혀 딴판으로 오독한 것인가.

덮쳐오는 쓰라림은 단지 상실감만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것, 그때 나는 당신을 삶 쪽으로 붙들 만큼의 강력한 끈이 못 되었다. 당신은 나를 놓고 ‘어떤’ 소리를 따라갔다. 선로에서 들려오는 어떤 아득함을 좇아 멈추지 않고 걸었다. 내가 있는 쪽으로 돌아보지 않았다. 그게 그날의 이쿠오의 진실인 것일까. 내가 왜 당신에게 그때 의지가 되지 못했는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문제다. 의지가 됐다 해도 그 또한 당신의 몫이다. 어쩌면 뒤늦게 이유 따위를 헤아려봐야 소용없는지 모른다. 그래도, 아프다. 아파서 서럽다.

   
▲ <이미지=영화 ‘환상의 빛’ 메인 예고편 캡처>

유미코가 드디어 수년 후 이것을 인정하게 된 순간은, 그냥 온 것이 아니었다. 충분히 사랑받아본 경험이, 이 아픈 진실을 인정하게 했다. 적어도 쓰러진 나를 일으켜 부축해줄 누군가가 확인되었을 때, 그 서러운 방울소리를 허공으로 흘려보낼 수 있었다.

사람을 삶 쪽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힘, 바다가 부르는 소리를 거슬러 풍랑과 해일을 헤쳐 나오게 하는 힘.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무엇이 ‘부르는 소리’를 따라가게도 뿌리치게도 하는 것일까? 사지에서 빠져나온 이가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에 그 답이 있는 것일까? 그 빛은 이제 환상이 아닌 그리움으로 자리를 옮겨갈 수 있으려나. 비록 우리를 살게 하는 것 또한 환상일지라도, 그 눈물자국마저 환상일지라도,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살아간다.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존재와 실제로 부딪치며 숨 쉬는 일로부터 확인된다는 것을 믿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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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치기 2016-09-06 08:40:16

    어두운곳에서의 빛 한줄기는..
    희망이 되어 줍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한줄기 빛은..
    또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 이기도 합니다.
    지금 대한빈국의 빛 한줄기는 무엇일까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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