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영화는 아마도 가장 ‘빠른’ 미디어였을 것이다. 지금 영화는,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를 필름으로 찍고 편집해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는 형태는 어쩌면 가장 ‘느린’ 방식이 된 건지도 모른다. 뉴스가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온갖 이야기가 즉석에서 수정 보완되는 이 시대에, 영화는 이제 매번 언제나 ‘후일담’일 수도 있다. 다만 그 전하려는 바가 희미하나마 대중이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가능성과 닿을 때, 영화는 그야말로 그 기억 하나를 믿고 이야기를 풀어내 보는 것은 아닐까.

코엔 형제의 영화 <헤일, 시저!(Hail, Caesar!, 2016))>는 참 뻔뻔하다. 그래서 좋다. 이 뻔뻔함이 영화에 대한 농담 같은 신앙고백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다. 우선 세상 전체가 한 스튜디오 속으로 다 들어와 버린 것 같은 거창한 스토리텔링을 견뎌 줘야 한다. 다 진짜 같으면서 다 가짜 같은 이야기 방식도 인정해 줘야 한다. 다 연기 같은 (대단한)배우들의 (찌질한)엄숙함마저 웃기면서 애잔한 묘한 영화다. 1950년대 헐리웃 황금기를 엿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볼거리는 충분하다.

주인공은 항공사로부터 거액의 이직을 제안 받고 고민하는 영화제작자 에디 매닉스(조슈 브롤린 분). 영화제작은 난항을 거듭하고, 그는 거액연봉에 흔들린다. 그가 새벽마다 아주 경건한 얼굴로 어둠 속에 찾아가 고해성사를 바치는 고해소는,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의 간절함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나면 홀딱 깬다. 성당으로 향하는 길의 ‘조명’이며 고해실의 그림자와 고해 신부님의 옆얼굴, 각도 등에서 이거야말로 ‘세트’ 촬영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도마저 스튜디오 내 세트에서 해결한 그의 ‘영화 속 삶’을 이해하고 나면, 그야말로 이 뻔뻔함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게 간절했던 고해는 출근부를 대신한 그의 위트였을 수도 있다. 실루엣으로만 등장하는 신부님은 어쩌면 ‘발’만 등장하는 예수와 동급의 조연일 수도 있다. 부엌에서 그에게 밥을 차려주던 ‘아내’도 어쩌면 단역배우일지 모른다. 그의 아내는 너무나 제너럴 일렉트릭 가전제품 광고 속에 등장하는 ‘완벽한 주부’처럼 생겼더랬다. 그럴듯했던 이 ‘일상’ 같은 설정들은 다 매닉스가 (영화 만들다 피곤할 때)즐기는 여흥인지도 모른다. 아님 말고!

더 이상 진지할 수 없을 정도의 엄숙함을 전체 분위기에 깔고 있지만 영화는 ‘폼’을 잡을수록 웃기다. 그럼에도 그 대단한 영화 사랑만큼은 가볍지 않다. 오히려 더욱 깊어진다. 영화 밖에 모르는, 영화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들이 혹은 영화광들이 자신들을 위로하는 일종의 유희였다고 해도 말이다.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일까? 이제는 그리 빠르지도 강력하지도 않은 수단이 되어버린 영화를, 왜 어떤 이들은 그렇게도 못 놓을까? 무엇이 영화를 계속 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 사소하고도 거대한 거짓말들의 좌판 같은 ‘죄 많은’ 장르를 말이다. 그 필름 좀 남기겠다고 수많은 이들에게 할 짓 못할 짓 시켜가며 중노동에 서로 혹사당하는 이 복잡다단한 작업을 말이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철판 깔고 자신들의 영화 사랑을 거의 신에 대한 신앙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너무 진지해서 영화를 보는 동안은 심지어 살짝 ‘신앙심’에 동의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 ‘믿음’과 ‘헌신’과 사랑조차, 그 모든 고백조차 스튜디오 안의 세트에서 행한 일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못 말리는 환자들이다. 영화가 아니면 무엇으로도 그 삶을 변명할 수 없는 중독자들이다.

영화는 과연 집단의 꿈일까. 그 꿈은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나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일까. 한바탕 허풍 같은 이 영화는 1950년대 헐리웃을 보여주고는 그 세트장 너머의 허공에 엔딩 자막을 띄운다. 그리고 2016년에 이 영화를 보는 우리는 지금 그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에게 견고한 ‘세트장’은 있기나 한 것일까.

그럼에도, 영화는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다. 힘없는 자들에게 어쩌면 마지막 희망이다. 비록 느리게 배달되는 미약한 목소리에 불과할지라도, 사건 당시 현장에서 패배했던 이들이 그나마 손에 쥘 수 있는 끈이다. 아직은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것이 눈에 안 띄기에, 우리는 다시 카메라를 붙잡는다. 이 헛웃음 나는 이야기들을 다시 허공에 새긴다. 아직은 중단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 때, 어떤 식으로든 후세에게 닿아야 할 필연이 있다고 믿을 때 우리는 악착같이 이야기를 기록한다.

덧없음을 알지만 사랑한다. 이다지도 형편없어진 무기인 영화를, 그럼에도 끝내 꿈에 살고 꿈에 절어 이 한세상 건너가고 싶어 하는 동안은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영화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 돌려주면 된다. 영화가 아니라면 그럼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영화마저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남길 것인가? 이 속절없는 시대에 딱 어울리는 속절없는 사랑이야기다. 웃다 코끝이 찡해지게 하는 능청스러움까지 속수무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