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붙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숨을 쉰다는 것이 곧 살아 있음을 뜻할까? 언제나 매번 그럴까? 때로 이것이 도저히 직결되지 않는 문제에 봉착할 때, 인간은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두렵지만, 이 질문은 이제 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미첼 프랑코 감독의 영화 <크로닉(Chronic, 2015)>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68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이 작품을 보고나면 한동안 헤어날 수 없는 질문에 사로잡힌다.

그저 ‘존엄사’ 혹은 ‘안락사’라는 단어가 주는 선에서의 문제의식이 아니다. 살아 있음의 감각에 대한 보다 궁극적인 질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문제를 던지듯 제시하고 충격적으로 막을 내려버리고 만다. 질문은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인 중증, 만성 질환이라는 것도 따지고 들어가면 ‘지속’에 관한 그리고 시간에 관련된 문제다. 시간이라는 문제가 복잡하게 질병을 통해 삶의 중대한 문제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생명이 숨에서부터 오는 것이라면, 타인의 숨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거나 더 나아가 통제를 시도한다는 것은 이미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일까. 죽음이 목전에 있는 듯한 환자에게 이 끊어지지 않는 숨이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 수도 있다. 중증의 만성 환자를 지켜본 이들이라면 그게 어떤 것인지 적어도 느낌은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를 ‘실제로’ 살아있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의학적 생존’과 사법적 처벌의 문제 그리고 윤리적 판단까지 겹치면 기실 이것은 가장 피하고 싶은 뇌관이 된다.

영화 <크로닉>의 주인공 데이비드(팀 로스 분)는 ‘때’를 아는 사람이다.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말기 환자들을 간병하는 게 직업인 그는, 시간을 구성하고 채우는 일에서 남들과는 다른 길을 택한다. 그의 ‘돌봄’은 그래서 굉장히 독특하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아들의 죽음 이후 그는 더더욱 확고하게 하나로 이어진 시간대를 살고 있었던 사람이다. 시작과 끝이 있는. 자신과 인연이 닿은 사람과 사물의 ‘사이’를 느끼고 연결 지어주며 현재를 지탱하던 사람이다. 바쁘게만 살다가 ‘환자’가 된 이후 세상으로부터 탈락된 ‘점’이 되고만 자신의 벗들에게 그는 제대로 된 휴식을 찾아준다. 그의 사색적인 면은 환자를 마치 제 피붙이처럼 자신의 삶 속에 안고 가는 데서부터 만남을 출발시킨다. 그래서 ‘타인화’가 가능했다.

데이비드는 인생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다. 가볍게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의 인생은 선이다. 특히 아들의 죽음 이후, 오직 앞으로만 뻗은 직선이 되었다. 한병철의 책 『시간의 향기』에 따르면 “본래 가속화란 방향성 있는 궤도를 전제하는 것(p. 26)”이다.

‘가속화’가 심해질 경우, 그 애초의 방향성을 향한 충돌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나름의 이해 아닌 이해를 해보려는 시도 또한, ‘점’으로만 살아가는 대다수의 ‘깨알’ 인생들에게는 상상력 밖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점’으로 살지 않았고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방향성을 가진 사람에게 인생은 그 모든 순간이 이어진 선이다.

이 영화에 비하면 다른 수많은 죽음과 이별에 대한 영화들은 따뜻할 정도다. 안락사 혹은 존엄사 문제에 대한 웬만한 다른 영화들이 낭만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아무런 물기도 주저함도 없는 화면들의 배열. 주인공 데이비드는 내내 표정이 없다. 사람이 표정이 없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차례로 보여주는 전시장 같았다.

표정이 없는 사람이란, 흔히 생각하듯 딱딱하게 굳은 무서운 얼굴을 가진 이가 아니었다. 표정이 없다는 것은 그저 맛을 못 느끼는 미맹처럼, 삶의 모든 감각에 대해서 구분이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런 이도 가끔은 기분이 좋아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가족을 만날 때는 다정하고 친절하다. 좋아하는 이와 같이 있을 때면 기뻐할 줄도 안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혼자 있을 때, 표정 없는 사람의 태도는 진정한 본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혼자 머무는 집은 마치 유품 정리인이라도 방금 다녀간 듯이 깔끔하다. 정갈함을 넘어서는 정돈이다. 아무것도 흔적이랄 게 없다. 그가 혼자서 뭔가를 먹는 장면은 영화 내내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환자들이라도 곁에 있을 때, 뭘 먹기도 하고 말도 하고 잠도 자는 것 같다. 어쩌면 그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인 듯하다. 산다고 한들 죽었다고 한들 이 ‘미맹’ 상황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심하게 앓다가 간 아들에게 주사기를 꼽았을 때, 그는 이미 아들의 무덤 곁에 함께 누웠던 것일까.

과연 안락사 혹은 존엄사의 문제가 ‘사랑’을 입혀 어떻게 치장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듯하다. <크로닉>은 단호하게 말한다. 나 아닌 다른 이의 죽음에 개입할 때는, 제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한다. 어쩌다 ‘운’이나 혹은 ‘명’이 다하지 못해, 그 사건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는 있다. 그러나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어떤 이의 ‘숨’에 직접적으로 개입했을 때는, 본인도 그만한 각오를 해야 했다. 각오에는 책임이 따른다.

새삼 현대사회의 무수한 ‘죽음 처리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직업으로써 그런 일을 내내 해야 하는 사람들. 영과 육에 대해 깊이 개입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은 진정으로 살아있는 자들일 수 있는 것인가. 막막하다. 그럼에도 달리 다른 방도가 있을지 아득하다. 그렇게 어떤 직업군에 이런 일을 통째로 위임해 두고, 아래층에서는 연일 파티를 열거나 무심히 제 일상만 챙기던 영화 속 환자 가족들처럼 우리들은 그저 흩어진 점으로 부유한다. 파편화란 그처럼 집요하고 광범위하게 시스템화 돼 있다.

한병철은『시간의 향기』서론에서 말한다. “세계의 결핍은 반시간적 현상이다. 그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작은 육체로 쪼그라들며, 그 작은 육체를 건강하게 지키려고 악착같이 애쓰게 된다. 그것 밖에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육체의 건강이 세계와 신을 대신한다. 죽음을 넘어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오늘의 인간은 그토록 죽기 힘들어하는 것이다. 인간은 나이만 먹을 뿐 늙지는 않는다.” (p. 16)

데이비드는 시간을 ‘성숙’시킨 것일까. 자신의 시간의 향을 다 맡은 것일까. 시간과 방향성을 찾는 일은 다시 관객 개개인의 과제로 남겨진다. 인간으로 돌아와 사색한다는 것, 이토록 엄중한 무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