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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 12월15일 기준으로 영화 <검은 사제들>은 542만 관객을 돌파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재로 성공한 첫 영화라고 한다. 퇴마나 구마는 물론이고 악령이 출몰하는 한국영화들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여태 별로였다. 오컬트나 공포물의 장르적 특성이 우리나라에선 안 통한다고까지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니 개봉 전 <검은 사제들>의 성공을 점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아마 ‘성공 기원’ 수준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원래 11월은 극장가에 최악의 비수기라고 한다. 그런데 소위 대박이 났다. 그것도 신인 장재현 감독의 첫 장편영화가, 개봉 첫 주부터 1위를 독점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보고 싶었던 영화를 ‘적기에’ 극장에서 만났다는 뜻이다. 결과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검은 사제들>은 잘 만들어진 대중상업영화다. 종교나 교리는 배경일 뿐이다. 재미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 우리 사는 세상이 읽힌다. 불안하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암담하며, 맹목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 어쩌면 비통한 우리의 오늘이 장르 영화를 소비하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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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출처=영화 '검은사제들' 공식홈페이지> |
주인공 김 신부(김윤석 분)는 소녀 영신(박소담 분)의 몸에 씐 악령을 꺼내주려 한다. 그러나 교회의 공식 입장은 김 신부를 돕지 않는 쪽으로 정해진다. 물론 ‘공식적’으로만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김 신부를 도울 ‘보조 사제’의 자리는 계속 바뀌고 끊어지며 난항을 겪다가, 12번째로 최준호(강동원 분)에게까지 제안이 들어온다. 그는 이제 막 부제서품을 받은 ‘애송이’다. 소녀는 뇌사상태로 누워있다. 김 신부에 대한 수군거림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정리된다. “돌아가. 가서 말해. 여긴 아무것도 없어. 저기 저 미친놈 하나만 있다고!” 일견 타당해 보이는 설명 아닌가. 하지만 최 부제가 받은 진짜 임무는 김 신부를 감시하는 것이기도 해서 어쨌든 동행에 나선다.
그러나 최 부제는 구마의식을 통해 자신의 가장 아픈 순간과 직면하게 된다. 영신을 구하기는커녕 그 자신이 악령에게 먹혀버릴 것만 같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에 떠는 ‘아이’가 외친다. “도망가! 니가 잘하는 거잖아!”
도망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악령이 그렇게 5천년을 살아왔듯이 “그냥 숨어 있을 뿐. 존재를 들키지 않고.”와 다른 게 무엇일까. 벽 뒤 구석에, 어린 남매의 환영은 언제나 그랬듯 사고 당시의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다. 자라지도 치유되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끝없이 도망하던 중에는 미처 몰랐다. 자기가 신발도 챙겨 신지 못한 신세로 쫓겨 다녔을 뿐이라는 것을. 끝없이 ‘도망 중’이던 최 부제가 관객에게 주는 깨달음은 크다. 사랑했으나 지키지 못한 이에 대한 죄의식, 그것은 차마 잊히는 것이 아니다.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다시 구해내는 경험만이 그 슬픈 악몽의 무게를 덜어줄 것이다. ‘잊으라’는 말은 그래서 발붙일 데가 없는 유령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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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출처=영화 '검은사제들' 공식홈페이지> |
이제 우리는 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죄 없는 자의 희생’에 대해 깊은 죄의식이 있다. ‘죄 없는 어린 생명들’의 희생은 아직 진상파악에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세월을 살고야 말았다. 사람의 탈을 쓴 자를 보는 게 어떤 것인지도 소름끼치게 느꼈다. 굳이 ‘악령’을 극장에서 보지 않아도 무섭고 숨이 막혀 미칠 것 같은 날들도 견뎠다.
우리는 그때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그 어떤 해원(解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목 놓아 울어보기도 전에 ‘잊으라’는 강압적인 명령들이 돌아왔다. 우는 건, 처벌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1년 반이 흘렀다.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서럽고 무섭게 말이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실상 제일 중요한 요소는 ‘가톨릭’이다. 한국 천주교라는 배경이 어설프게 들어왔다가는 ‘미장센’이 전혀 살지 않을 영화였다. 영화의 분위기며 느낌,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물론이고 습성이나 사소한 버릇 혹은 농담 한마디까지 모조리 한국 천주교의 틀 안에서 만들어져야 했다. 정말 쉽지 않을 일이었다. 한국 가톨릭의 지금 현재의 리얼리티를 얻어내는 게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제작 전부터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었다. 감독은 모태 개신교 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오히려 신자가 아니기에 이런 발상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디테일에 사활이 달린 작품이었다. ‘모태 가톨릭 신자’들이 봤을 때 전혀 튀는 부분이 없어야 하는 영화였다.
놀랍게도 <검은 사제들>은 그 어려운 과제에 성공했다. 엔딩 자막을 굳이 보지 않아도 한국 천주교의 사제와 수도자들은 물론이고 얼마나 많은 관계자들의 도움이 있었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신기했다. 마치 영화 속 김 신부와 최 부제가 함께 영화를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게 자연스럽다. 그만큼 캐릭터들은 생생하고, 디테일은 꼼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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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출처=영화 '검은사제들' 공식홈페이지> |
영화 속 사제들은 가장 사제다운 방식으로 말한다. 가톨릭은 가장 대중적인 종교이며, 미신과 맞서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변모해온 종교라고. ‘보편’을 뜻하는 가톨릭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곧 대중성이었다. 가톨릭을 살아남게 한 것이 대중성이라면, 대중성을 놓치는 순간 가톨릭은 위기에 처할 것이다. 영화 속의 ‘구마의식’은 곧 ‘구원’에 대한 절박한 기도였다. 하지만 구원의 신비는 신에게서가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에서 오는 것이었다. 보편적 인류애와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의 회복. ‘소녀’를 구하려는 그 온갖 시도와 몸부림은 진정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자는, 어떻게든 구하려고 뛰어들었다. 구하든 구하지 못하든, 최선을 다했다. 어찌 그 자리를 떠날 수 있겠는가. 사제들이 보여준 구마 행위를 한 마디로 하면, 사랑이라는 이름의 합리성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협해오는 악령을 누를 유일한 힘이었다. 그게 기도였다. 한 인간이 고통 받는 다른 인간을 위해 발밑으로 엄습해오는 공포를 이겨낼 때만 찾아오는 신비였다. 나중에야 알게 되는 소녀 영신의 진정한 힘도, 사랑이었다. 그 가녀린 팔로 사력을 다해 영신이 해낸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 순간 관객들은 “제발”을 힘껏 응원하게 된다. 가녀린 존재들이 그렇게 온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세상. 누가 세상을 미몽과 어둠으로부터 지켜왔는지를 <검은 사제들>은 나직이 일러준다. 우리는 혼자가 아닐 때 강해진다, 믿을 수 없을 만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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