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어디선가 꽃망울이 쉼 없이 피어오르고 흐드러지게 생명력을 뽐내는 중이다. 또 봄이다. 봄날 수학여행을 떠났던 꽃 같은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게 된 이후 두 번째의 봄이다. 그 봄 세월호에 탔던 승객과 승무원 중 304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 4월 16일 이후, 봄도 꽃도 슬픔 없이 맞이하기 어렵게 된 우리들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지독한 슬픔 속에서 뭐라도 조금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꿔 놓기는 한 것일까?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들었던 구호 중의 하나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는 말이었다. 옳은 말이다. 실은 대다수의 시민들이 이 참사의 비참함과 잔인함에 제정신을 차릴 수조차 없을 때, ‘국가’의 녹을 먹으며 일하는 ‘공인’들의 입에서 반복적으로 관용구처럼 쏟아져 나왔던 말이기도 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은 힘차게 대단히 확신에 찬 얼굴로 이 말을 언론을 통해 거침없이 내쏟곤 했다. 마치 자신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을 확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달라졌을까? 2년여가 지났지만 그 배는 여전히 그 깊은 바다 속에 그대로 가라앉아 있다. 9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은 ‘유가족’이 되고 싶은 게 소원이라며 아직도 팽목항을 못 떠나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세 번째로 공식 개봉되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다. <업사이드 다운>(프로젝트 투게더 제작, 시네마 달 배급)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아버지 네 사람과 사회 각계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영화다. 재미교포로 미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김동빈 감독은 사건 당일의 충격에 경악했다. “전원 구조됐다는 보도를 온라인으로 보다가 불과 몇 분 사이 오보로 정정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이 수장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셈”이었다며,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다 한국으로 와 <업사이드 다운>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영화 속 네 아빠들은 아이가 있던 ‘천국’과 아이가 사라진 뒤의 ‘지옥’을 오가는 각자의 소회를 말한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아이 생각에 말을 잇지 못하며. 카메라는 이 아빠들이 속에 묻어둔 얘기를 어렵사리 꺼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준다. 자식이란 얼마나 애절한 것인가. 그래도 아이 생각에 집중하며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때, 그 아빠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아이가 곁에 있는 것처럼, ‘금요일’이면 웃으며 돌아올 아이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할 때처럼.

아이는 아빠의 가슴 속에서 현재형이었다. 돌아오지 않아 이제 더는 자라지도 않게 된 아이들은 영원히 그러하다. 17년 남짓의 그 짧은 삶들은 통째로 현재가 되었다. 모진 악몽 같았던 2년여를 지나는 동안, ‘이제 그만하라’는 말들에 너무도 상처받아 몸과 마음이 다 찢겨졌지만 그래도 이 부모들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버텼다. 아빠들의 소원은 그저 아이를 품에 한번만 안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나가고 있다. 불행을 딛고 놀랍도록 성숙해진 그 부모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로 이 불행을 끝내고 싶다고. 우리가 움직이는 만큼만 세상이 변할 것이기에,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이 올 때까지 여생을 다 바치겠다고. 그것이 떠난 자식들과 남겨진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위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말이다.

인명 구조는 최우선은커녕 아예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던 ‘골든타임’의 대처 매뉴얼들. 참사보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조차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언론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며칠간에 걸쳐 바다에 생매장 되는 과정을 생중계로 두 눈 뜨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속수무책으로 잔인했던 4월 그리고 그 이후. 영화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매달린다. 왜 그 큰 배가 그렇게 빨리 침몰했는가? 왜 참사 앞에서 한국 언론은 그렇게 이상한 보도 태도를 보였는가? 왜 이 모든 이상한 일들에 대해 우리는 이토록 무감각한가?

참사 보도 과정과 수습 과정을 보며 상식이 뒤집어지는 충격을 느낀 김동빈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를 사색하게 한다. 우리 사회 곳곳은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으며 수많은 참사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상식과 가치 등등 모든 것이 마치 침몰한 세월호의 모습처럼 ‘뒤집힌’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영화 속에는 해양학자, 변호사, 언론인, 심리학자, 교사, 작가 등 수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성찰적이다. 왜 이런 세상이 되어버린 것인가에 대해 침착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질문을 던지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답을 구한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드러난 한국사회의 병폐를 하나하나 짚으며 우리 사회 전체를 통찰한다. 결국 침몰한 것은 세월호라는 배 한 척이 아니라 우리 사회 ‘양심의 침몰’이었기 때문이다. 끈질기게 ‘진실의 인양’을 지켜보는 것이 지금 우리 모두의 의무임을 일깨운다. 65분짜리 이 ‘잔잔한’ 다큐는 말한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금부터라도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고통 받는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상처를 더욱 곪아 들어가게 할 뿐이라고. 4월 14일 개봉이다. 부디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