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KBS 공동보조, ‘정‧언 위상’ 동반 추락 부추겨
청와대가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트위터 홍보에 나서 빈축을 산 것은 KBS1이 〈뉴스1〉을 통해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이 영화에 대한 과도한 홍보성 리포트들을 쏟아낸 이후 벌어졌다.
청와대는 21일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최근 국민들이 많이 관람한 영화 중 하나인 ‘인천상륙작전’! 박근혜 대통령도 영화관을 찾아 시민과 함께 관람했는데요. 영상으로 만나보시죠!”라며 극장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함께 올렸다. 이후 청와대가 정부 SNS 계정을 통해 상업영화를 홍보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뉴스타파 8월 21일〉.
한편 KBS1 <뉴스1〉은 지난 7월과 8월 두 달간 이 영화 내용과 출연진, 해외 개봉과 북한 반응등 공중파 메인뉴스가 영화와 관련해 다룰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을 보도했고, 심지어 홍보성 기사를 거부한 기자를 징계에 회부하는 등 국민이 내는 수신료를 받아가는 공영방송의 품격을 자해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됐다〈오마이뉴스 8월 17일〉.
‘인천상륙작전’에 열을 올리는 청와대와 KBS의 모습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의 언론 통제라는 비판이 제기된 사건을 연상시킨다.
박 대통령이나 KBS 경영진은 이정현 전 수석의 언론 통제 논란에 대해 ‘웬 소동이냐’는 태도를 보인데 이어 '인천상륙작전'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하나’라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정현 전 수석은 최근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아 당 대표에 당선되고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새누리당의 ‘괴벨스’ 이정현 의원은 당대표의 자격이 있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통렬히 비판했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영방송 사장의 인사권을 지닌 청와대 홍보수석이 보도국장에게 보도와 관련한 직접적인 주문을 통보한 것에 대해 현직 기자 10명 가운데 8명은 언론통제로 인식해 청와대나 새누리당이 내놓은 ‘청와대의 통상적 업무수행’과 크게 대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기자협회가 창립 52주년을 맞아 지난 5~10일 기자 300명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정현-김시곤 녹취록의 본질’을 묻는 질문에 청와대의 언론 통제라는 응답이 76%였고, 홍보수석의 통상적 업무 12.3%, 개인의 일탈 6%, 모르겠다 5.7%라는 결과가 나왔다〈언론노보 8월 17일〉.
‘인천상륙작전’을 박 대통령이 사드, 민정수석 등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 속에서 관람한 뒤 청와대가 이 영화 홍보에 앞장선 것은 박 대통령의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 ‘건국절’ 발언을 한 것과 무관한 것 같지 않아 떨떠름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연이어 건국절 발언을 내놓아 국헌 문란이라는 논란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건국절’은 대한민국 정부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명기한 헌법을 외면하면서 일제 치하의 독립운동을 무화시키고 친일세력들의 역사적 기여를 강조하려는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알려 져왔다.
‘인천상륙작전’하면 떠오르는 더글러스 맥아더 당시 태평양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은 한국의 친일파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역할을 한 인물이다.
맥아더는 1945년 9월, 미군이 한반도에 입성했을 때 발표한 포고령 제1호를 통해 미군이 직접 한반도를 통치하는 미군정을 선포, 일제의 행정, 경찰, 군 조직에서 근무했던 한국인을 복귀시켜 미군정의 하부 조직으로 이용해 친일파가 득세할 수 있는 결정적 여건을 제공했다. 포고령은 건국준비위원회는 물론, 심지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도 불인정하여 한국인의 자주적 통치활동을 부정했다.
1945년 광복 직후 부일세력으로 심판받을 날만 기다리던 친일파들은 맥아더 포고령에 따라 해방 정국에서 국내 최대의 실권 집단으로 부상했다. 독립 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인식과 함께 민족정기 회복이 저지되는 사회 지배 구조가 포고령에 의해 만들어진 셈이다.
한편 이승만은 1948년 5·10선거 이후 구성된 제헌국회에서 국회의장에 선출되고,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는 과정에서 국내 최대의 정치 세력이 된 친일파를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이승만은 집권 1년 뒤,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사회적 요구가 높았던 1949년 6월 친일파를 조사 처벌하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위원장 김상덕)가 당시 중부 경찰서의 친일경찰 등이 습격해 강제 해산시킨 것을 방관했다.
맥아더에 이은 이승만의 친일세력에 대한 비이성적 조치로 일제 강압 하에서 자행된 반민족 행위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좌절되고 이승만 정권 이래 오늘날까지 친일파나 그 후손들이 득세하는 세월이 이어진다. 일제하에서 독립군을 토벌한 군대의 장교였던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반민족 행위자들이 독립인사로 둔갑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건국절’ 주장을 앞세우는 쪽에서는 이승만 국부론을 앞세우고 있으나 그가 자행한 영구집권 획책, 한국전쟁 과정에서의 민간인 학살. 조봉암 사법살인, 국가보안법의 제정과 악용을 상기하면 그 타당성을 인정키 어렵다.
그는 정부수립 4개월만인 1948년 12월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데 악용했던 치안유지법을 기반으로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한다는 명목으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장치를 만들면서 반공을 정치 무기로 휘두르는 수구세력의 영구적 집권기반을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악명을 떨치는 국보법은 친일파 청산을 가로막으면서 한국을 사상의 자유가 통제되는 가두리 양식장과 같은 갇힌 사회로 만들고 한반도 미래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등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이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선을 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이유의 하나로 국보법에 의한 사회적 역동성의 상실을 지적할 수 있다.
국보법은 유엔, 앰네스티 등 국제 사회로부터 기본권을 침해하는 악법으로 개폐 권고가 줄을 잇고 있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최근까지 수구세력이 각종 선거 등에서 용공, 친북, 종북 등의 비판 논리를 생산하는 근거로 악용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불통과 무능의 비판 속에 일제 성노예였던 위안부 문제, 동북아 신냉전을 부활시킬 것으로 우려되는 사드 배치 결정 등에 앞장서면서 ‘건국절’을 언급하고, ‘인천상륙작전’ 홍보 등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주목된다. 그것은 친일 미 청산의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동조, 대북 공세 강화라는 목표를 향한 것이란 논란을 부추긴다.
오늘날 우리 현실은 박 대통령이 외치던 통일대박 대신 남북간에는 전쟁 일보 직전의 위태로운 상황이 일상화되는 공포스런 정치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영방송인 KBS 상층부조차 언론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한심한 모습을 반복하면서 정치와 언론 위상을 동반 추락시킨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한다. 매우 개탄스런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