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댓글부대> 쓴 소설가 장강명
◎ 장강명 작가 : 1975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연세대 공대를 나와 건설회사를 다니다가 그만 두고 동아일보에 입사해서 11년동안 기자로 일했습니다.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열광금지, 에바도르>로 수림문학상을 받으셨고,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싱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셨습니다. 장편소설 <호모 도미난스><한국이 싫어서>를 쓰셨고, 소설집 <뤼미에르 피플>을 내셨습니다.
◆ 정윤희 : 책 띠지에 쓰신 말이 ‘제가 쓴 소설 중 가장 빠르고 가장 독합니다.’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 장강명 : 실제로 소설이 댓글에 대한 이야기라 제목이 <댓글부대>인데요, 상을 받을 때에는 처음 원고 제목은 <2세대 댓글부대>였습니다. 소설 시작도 그 동안의 정부기관이 했던 댓글 공작 작업은 1세대라 치고 이제부터 2세대를 시작한다하는 식으로 시작하죠. 출판사에서 제목으로 두 단어 보다는 한 단어가 그리고 조금 강렬하게 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그래서 배팅을 해봤습니다. 기존 제목보다 지금의 제목이 좋습니다. 기억하기도 쉽고 말하기도 쉽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소설이라고 할 때 문학적 아우라가 나는 제목은 아니고, 소설제목이 이래도 되나 싶죠. 하지만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는 제목이 내용과 동떨어지지 않고 내용을 에두르는 것 없이 직설적으로 하니 내용과 어울리는 것 같고.
◆ 곽현화 :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으셨다고 하는데 소설을 쓴 계기는?
◇ 장강명 : 제가 2012년에 동아일보 다니고 있을 땐데, 단편소설을 하나 썼었습니다. 단편집 <뤼미에르 피플>에 실려 있는데, <삶어녀 죽이기>라는 제목의 단편이었고요. 거기서 인터넷 여론조작을 하는 업체의 이야기를 썼었습니다. 그때 거기에 팀-알렙이 나오고 삼궁, 찻탓캇, 01査10 등 등장인물이 나와서 인터넷 여론조작을 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 단편 소설을 쓰면서 인터넷 여론조작이라는 그런 소재가 재미있었고, 이걸 누가 좀 사악한 상상력을 좀 동원하면 여론이 쉽게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그 정도였는데 그해 말에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이 터졌고, 대선 전에. 저는 처음에 그걸 믿지 않았습니다. 대선 전까지 뭐 처음에 여직원 감금 사태로 시작을 해가지고, 한쪽에서 이게 국정원 직원이고 댓글을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이 옳은지 아닌지를 그 상황에서는 알 수 없었잖아요. 그리고 저의 감각으로는 설마 그런 짓까지 하겠느냐 이런 느낌이었고, 경찰 발표도 아닌 걸로 났었죠.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만. 그런데 그 다음에 시간이 지나고 나니 맞는 거였잖아요.
그래서 제가 진짜 많이 놀랐고, 사실 뭐 댓글 조작하는데 큰 돈이 드는 것 아닐 텐데. 이게 다 인건비일텐데. 누가 작정하고 나쁜 목적으로 하면은 이것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쓰자. 예전에 썼던 단편소설에서 썼던 등장인물을 가져왔죠. 어둠의 조직이 그들을 찾아가서 진보 커뮤니티를 파괴하고,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는 제안을 하는 것이 소설의 시작이죠. 소설에서는 그 배후에 있는 어떤 한 인물이 ‘남산의 노인’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내가 만약 그런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원할까. 이런 생각을 그 사람 입장에서 감정이입을 하려고 노력했고, 내가 그런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사악한 상상을 해볼까 했는데, 책 띠지 뒤편에도 썼습니다.
◆ 정 :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쓰는 동안 줄곧 파탄의 상태로 나를 몰았다. 나는 평상시에는 마음이 꽤 안정된 사람인데, <댓글부대>를 쓰면서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받은 충격을 그대로 글에 옮기고 싶었다. 그런 독기 없이 이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장강명 : 제가 쓰면서 알았습니다. 이 소설이 살려면 엄청 독하고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되어야 이 이야기가 살 것이고, 그러려면 정말 악랄한 상상을 해야 할 것이다. 좀 악랄한 상상을 많이 하자. 근데 이게 지금부터 나쁜 상상해야지 한다고 잘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마릴린 맨슨이라는 미국의 락그룹이 있는데 팬인데, 새 앨범이 올해 초에 나왔는데, 새 앨범 나오기 전에 싱글 컷이라고 음원만 몇 곡 나오지 않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락 뮤지션의 새 노래가 세 곡이 나오고, 그 중 두곡이 되게 빠른 곡이었는데…. 공격적인 노래들입니다. 그걸 소설 쓰는 내내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독기를 충전하기 위해서요.(웃음)
한 곡이 3분짜리인데, 10분에 한 번씩 반복적인 음악을 계속 들었고. 실제로 원고 마칠 때쯤 좀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너무 안 좋은 일들과 부도덕한 인간들을 묘사를 해야 하니깐 약간 그전에는 그런 걸 몰랐는데, 배우들이 나쁜 역할을 하고 나서 마음이 힘들었다는 그 기분을 조금 알겠더라고요.
◆ 정윤희 : 읽다보면 굉장히 지적인 소설이다. 바이럴 마케팅, SNS, 프레임, 트롤 등. 소설가로서 인터넷, SNS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장강명 : 소설가로서라기 보다 그냥 시민이라는 한 사람으로서 얘기하고 싶다. 제가 사실 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좀 모랄까 중도 보수에 해당하는 사람이고요, 저는 인터넷 여론을 우호적으로, 호의적으로 보지 않고 대체로 회의적으로 봅니다. 이런 것 같습니다. 지금 인터넷 환경이라는 게 우리도 모르는 10년 20년 사이에 생긴 거고. 누가 말을 하면은 아무나 쉽게 말을 할 수 있고, 옛날이면 마을 단위로 넘어가지 않을 말이 금방 불과 몇 분 사이에 쉽게 전파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처음 생겼고, 세계적으로 한국이 IT 강국이고, 인프라가 잘 깔렸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사례도 없습니다. 이런 비유를 들고 싶은데요, 모든 사람이 걸어다니는 길이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자동차를 준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근데 사실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교통의 전부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고, 차선이 있고, 신호등이 있어야 합니다. 차선이나 신호등이 없는 도로에 차가 있으면 누구나 교차로에서 빵빵거리고, 싸우고, 교통사고 나고 이렇습니다.
어떤 인터넷 여론에 맞는 규칙이나 사회적 합의, 이런 것이 지금은 없는 상태 같습니다. 이걸 우리가 처음 인터넷이 열렸을 때 사람들이 거기에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모든 사람이 미디어가 되는 사회. 그래서 거대 권력에 맞서고, 더 인터넷으로 자유로운 토론이 되어 민주주의에 기여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인터넷 초기에 있었는데 제 생각에는 그게 그렇게 건강하게 구현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차선과 도로교통법과 신호등이 없다면 오히려 옛날에 걸어 다니는 것보다 못 한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지금 우리가 좀 그런 것에 빠져 있지 않나 우려를 합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세모자 사건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기만을 했고, 거기에 사람들이 넘어 갔고,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겼습니다. 제가 회사에 다닐 때 어떤 선배가 보이스피싱에 대해서 되게 크게 비판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 선배 주장은 보이스피싱이 그냥 단순한 사기가 아니다. 이거는 우리 공동체가 가져야 하는 신뢰를 전반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이제 우체국이나 경찰, 은행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믿지 않고, 모르는 사람에게 걸어오는 전화를 불신하게 되었다는 것이 보이스피싱이 불러일으킨 어두운 면이라는 겁니다.
◆ 정윤희 : 이 소설은 9장으로 진행된다. 1장 선전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매일 매시간 민중의 맥박 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떻게 맥박이 뛰는지 듣는 것이다. 2장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3장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4장 피에 굶주리고 복수에 목마른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 5장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국민들에게 낙관적 전망을 심어줘야 한다. 6장 선전은 창조와 생산적 상상력에 관련된 문제이다. 7장 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8장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 9장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괴벨스 어록을 따론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쓸 생각을 했나?
◇ 장강명 : 대중에게 무엇이든 확 알려지고 나면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특히 요즘에는. 괴벨스 어록을 메모해 두었다가 그걸 챕터 제목으로 쓰면서 다른 어울리는 말들을 찾아 봤어요. 출처를 알아보려고 찾아 봤는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괴벨스가 한 말들이 확인이 잘 안되더라고요(웃음)
◆ 정윤희 : 36쪽에 보면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이라는 말이 나온다. 소설가로서 사실과 진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 장강명 : 의미심장한 이야기 같습니다. 소설이라는 게 거짓말인데, 허구로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뜻 생각이 나는 것은 제가 기자였을 때 기자의 자세는 정 반대입니다.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서 사실을 바꾸면 절대 안 되고, 나의 신념이라든가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사실을 중심으로 하도록 교육을 받았고요. 무조건 팩트가 중요했습니다. 기자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자가 자꾸 진실을 추구하려고 할 때, 진실을 추구 한다는 말은 할 때는 위험한 것 같고, 사실 추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기계적이고, 영혼이 없는 저널리즘이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저도 후배들에게 팩트를 강조했습니다. 이제는 소설가가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소설가는 진실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진실은 사실과는 달리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사실에 여러 가지 진실이 섞일 수 있고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웃음)
◆ 정윤희 : 저는<댓글부대>가 주는 의미는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진실이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닌 것.’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 장강명 : 전반적으로 우리가 넓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되게 우리가 위험한 환경에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 똑똑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정윤희 : 페북 보면 독서를 많이 하시더라. 최근 읽었던 책 중에서 기억나는 책은?
◇ 장강명 : 최근에 <오베라는 남자>를 읽었습니다. 한국 소설 중에서는 <잠실동 사람들>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잠실의 어느 주상복합 건물에 사는 사람들과 주변 인물들의 군상을 다룬 책인데, 좀 더 많이 독자를 만나도 좋을 책입니다.
◆ 곽현화 : <댓글부대>라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 그리고 빨간책에 나오신 소감은?
◇ 장강명 : <댓글부대>를 쓰면서 몇 가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인터넷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정보들이 그렇게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누가 조작하기로 마음 먹으면 쉽게 조작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이 조작이 되게 성공을 하는 이유가 사실 사람들의 어떤 정의감이라든가 의협심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굉장히 폭력적인 행위 중에 하나가 굉장히 좋은 의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많더라고요. 이 사람을 단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벌어지는 일이 많은데, 우리가 이렇게 속기 쉬운 세상이고, 더구나 옳은 일을 인터넷 안에서 실현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집단적으로 행동을 할 때 그게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 정윤희 : 오늘은 제주4.3평화문학상을 받은 장강명 작가님의 여섯 번째 신작 장편소설 <댓글부대>를 가지고 이야기 나눠 봤습니다. 지금까지 오늘의 빨간책 시간이었습니다.
※ 이 글은 월간 출판저널과 동시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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