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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리 마을 청년 셋이 월남에 갔다가 둘이 돌아왔다. 가난한 농투사니 자식으로 태어난 청년들은 어차피 가는 군대인데 돈이라도 몇 푼 벌어오겠다면서 철선을 타고 바다 멀리 떠났다. 그 길을 모두가 나서서 말렸고, 아무도 더 말리지를 못했다. 전장터라서 염려했고, 굶고 있는 식구들이 있었으므로 어찌하지 못했다.
셋 중 고학으로 대학에 다니다가 월남에 간 청년은 귀국 보름을 남기고 회식 자리에서 폭탄이 터져 죽었다. 한 줌 재로 돌아온 아들 죽음을 그 홀어머니는 죽는 날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돌아온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어찌 어찌하여 마을을 떠나서 소식이 없었다.
고향에 남은 월남 성님 남천 아재는 귀국 박스를 풀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진귀한 구경과 맛을 노나주었다. 거기까지였다. 남천 아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헛소리와 본 적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억센 분기로 동네를 온통 공포에 떨게 하는 일을 거듭하다가 잠시 좋아졌나 싶으면 이내 상한 모습을 보였다. 남천 아재는 월남에서 벌어온 돈을 병원비로 다 써버린 뒤 소 엉덩짝 만큼 있던 땅마저 팔아먹고 나서 집구석에 처박혀 검게 앓았다.
소싯적 나는 그를 통해 월남을 처음 만났고, 그의 말을 들으면서 깜란 베이, 나트랑 따위 베트남을 옆마을처럼 여기게 되었고, 이윽고 제 발로 비엣남에 찾아갔다. 그는 늘 그 길에 동행해주었다.
죽은 사람이 보인다면서 날마다 끔찍히도 괴로워하던 남천 아재는 자신을 끝내 용서하지 못했던 것일까. 발가벗고 대숲에 앉아 식칼을 품은 채 떨던 모습이 어제 본 듯 생생하다. 귀국 몇 년 뒤 아재는 스스로 삶을 거두어들였다. 그의 이름으로 향을 사서 비엣남 절에 비손 올릴 때 비가 내렸다. 필시 월남 향은 한국 향보다 연기가 길었다.
이 시는 그를 위한 늦은 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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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으로 본문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제공=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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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 아재>
월남 갔다 와서
1백8가구가 사는 동네 사람 모두에게
씨레이션을 돌리고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귀국박스를 열어 따로 따로 처음 커피맛을 전해준
첫 번째로 해외에 다녀온 근동 명물.
저녁이면
모깃불 근처에 모여서 듣던
베트콩, 코쟁이, 콩까이
월남 이야기로
모두를 장글로 이끌던 이야기꾼.
묵은 초가 이엉보다 가난이 높은 더께로 쌓여 있던
남녘 먼 동네 어덕 비탈 아래
월남에 피를 판 덕에 논밭 몇 마지기 살 수 있다면서
꺼칠한 수염을 까닭 모르게 쓸쓸히 쓸어보던
지지리도 지지리도 지붕 낮은 집 장남.
툇마루 왼쪽 골방에 들어가
사흘이고 나흘이고 들어앉아
총 든 병사들이 자랑스레 내달리고 있는 병영 잡지 ’자유의 벗’을 넘겨보고
또 넘겨보더니
문득 눈 희겁게 뜨고 밥도 먹질 않던 참전용사.
아재, 미음 한 숟갈만 떠잡숴보셔.
이상하게도 내가 청하면 시늉이라도 하던
어린 아이 같던
가슴팍 두껍고 단단한 청년.
어디서 물이 든 것일까.
눈 밑이 검어지더니
길길이 뛰고 울고 웃고
마루 밑에 기어들어갔다가 어느 새 시커먼 광에서
부르르 떨고 있던 파월 장병.
비 내리는 날이면
벌거벗고 시누대밭에 들어가
식칼을 품고 학교 파해서 돌아오는 나더러 어서 숨으라던
선한 눈빛, 성난 눈초리.
정신이 멀쩡히 돌아왔다면서
다시금 내게 월남 이야기해주던 성님,
키 땅딸막하면서도 큰 남천 아재.
베트남에 갔을 적에 나는 왜
월남 사람들에게 남천 아재 이야기를 하면서 울었을까.
남복이네 큰 성님 남천 아재.
막내동생 남복이가 세숫대야에 물을 떠다주면
낯은 씻지 않고 한정없이 물만 바라보고 있던 성님.
언제나
그 캄캄한 얼굴을 씻겨줄 수가 있을까.
아재는 맨발로
지금 어느 비 내리는 대밭을 혼자 지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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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 작가
※ 이 글은 한베평화재단(http://www.kovietpeace.org/)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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