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낯선 손님>

환송식이 끝나고 태극기와 현수막 물결치는 부산항 제3부두에 대기하고 있던 미군 수송선에 올라탄 병사들이 수건을 흔들면 뭍이 뒤로 물러났다. 파월장병을 실어 나른 배는 만호MSTS Mann, 모양이 거의 흡사한 쌍둥이 수송선 업소호USNS Upshur와 가이거USNS Geiger호 등이었다. 

이들이 거쳐온 경로는 거의 같았다. 논산훈련소 신병교육이 끝나면 화천군 오음리에서 파월 교육을 받은 뒤 춘천역에서 임시특급열차 편으로 청량리역에 도착한다. 여기서는 하차가 거의 불가능한 채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부모와 차창으로 손만 잡아보는 면회를 끝내고 곧 다시 기차로 부산까지 이동한다. 객차 출입구 앞뒤에는 헌병이 서 있었다. 

춘천에서는 강원도 지사와 꽃다발을 전해주는 남녀학생 대표와 교모를 쓴 학생들, 부산에서도 부산시장과 학생들이 나와서 환송을 했다. 사병의 경우 월남에서 1년 근무를 끝내고 귀환하는 경로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고 들 때 병사들의 경유, 도착지는 부산항이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은 연대기에서는 분절적이지만 생애사에서는 대부분 단절이 없다. 6.25를 소년으로 겪은 청년들이 참전한 게 월남전이었다. 한국전쟁과 일제의 아시아침략전쟁(‘대동아전쟁’) 또한 생애사에서는 단절이 있을 수 없다. 그 세 개의 전쟁에서 꼭지점이 부산항이다. 세 전쟁에서 전장으로 떠나보내는 광경 또한 기본적인 차이는 없다. 행진곡 가락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노랫말은 바뀌어 있었다. 일장기가 나부끼던 항구에서는 태극기가 휘날렸다. 

북위 15.5도선에 위치한 베트남 꽝남성에서 부산까지는 직선거리 3,000km다. 부산항에서 월남까지 출정 여정은 대략 여드레에서 열흘이었다. 그 베트남에서 부산까지 비엣남이 다시 찾아오는데 50년이 걸렸다. 손님의 이름은 퐁니•퐁넛이다. 

-2017년 11월 27일

▲ 고경태 기록전 <한 마을 이야기- 퐁니·퐁넛> 오프닝 행사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연출한 서해성 작가와 고경태 기자가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월남, 베트남, 비엣남>

고경태 기록전 <한 마을 이야기 -퐁니·퐁넛>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산다미아노 카페.

퐁니·퐁넛은 퐁니와 퐁넛으로 실은 두 마을이다. 두 마을은 전쟁과 학살의 기억으로는 한 마을이다. 전쟁은 한 마을에 어떻게 나타났을까. 

한 마을에는 응우옌티탄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살았다. 한 응우옌티탄은 ‘그날’ 죽었고 다른 응우옌티탄은 가까스로 살아나왔다.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 1968년 그날, 한국군이 거기 있었다. 카메라를 든 미군 병사도 그 마을 부근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 전시는 두 마을로 한 마을 이야기이자, 두 사람으로 한 사람 이야기다. 
두 사람으로서 한 사람인 응우옌티탄에게  전쟁은 어떤 얼굴이었을까. 
기록자 고경태는 18년째 그 질문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인에게 응우옌티탄의 나라는 세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월남, 베트남, 비엣남이다. 

나는 
월남을 알고 있는 것일까. 
베트남을 알고 있는 것일까. 
비엣남을 알고 있는 것일까. 

전시 주최는 한베평화재단이다. 

-2017년 9월 18일

▲ 고경태 기록전 <한 마을 이야기- 퐁니·퐁넛>은 오는 12월 10일까지 부산카톨릭센터 1층 마음밭 갤러리에서 열린다.

<야유나무, 한 그루 살아있는 향불>
-고경태 기록전 <한 마을이야기 -퐁니·퐁넛>

불의 기억으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한국 말로 월남 광남성, 월남말로 비엣남 꽝남 Quang Nam성 디엔반Dien Ban현 퐁니 Phong Nhi·풍넛 Phong Nhat 들판. 역사 지리적 위치로 볼 때 그 나무는 한국인이 부르는 세 가지 이름 월남, 베트남, 비엣남 사이에 서 있다. 월남이 일찍부터 불러온 이름이자 보통 쓰는 한자 이름이라면, 베트남은 발음 오류를 익숙하게 정당화면서 한국인만이 사용해온 호칭이고, 비엣남은 비엣남을 비엣남 자체로 보고자 하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퐁니·퐁넛 마을 사람 중 높이 십오 미터 남짓하고 큰 가지 열 몇 개를 산발하여 펼치고 있는 이 나무가 몇 살이나 먹었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없다. 어떤 노파는 백년은 넘었다고도 하고 어떤 중씰한 사내는 60년도에 심었다고 제법 엄정하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그해 2월에도 이 나무는 거기 서 있었다. 

나무는 독특한 생김새나 특별한 수종 또한 아니다. 비엣남 어딜 가든지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으로 치자면 당산나무 쯤 될 터이다. 푸른 벼가 자라고 있는 비엣남 들판을 건너다보면 으레 만나게 되는 가지와 이파리 무성한 한 그루 열대 나무일 뿐이다. 

나무이름은 야유나무다. 야유나무 옆에는 마을 사당이 있고 거기에는 돌 비석이 하나 서 있다. 빗돌에는 여러 사람들 이름을 새겨 놓았다. 모두 퐁니와 퐁넛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이다. 거기 이름이 박혀 있는 이들 대부분은 한 날 한 시에 세상을 떠났다. 해질 무렵이면 야유나무는 거기까기 가지를 뻗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퐁니 마을은 260명이 살고 있는 작은 동네였다. 
퐁넛 마을은 300명이 살고 있는 작은 동네였다. 
그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968년 2월12일 아침밥을 먹은 뒤, 한국군 청룡부대가 머물다 지나갔고 마을 사람들은 쓰러졌다. 74명이 죽었고 17명이 그 구렁텅이에서 살아나왔다. 유방이 잘린 소녀는 이튿날 죽었다. 그날 오후 미군이 마을에 들어왔고 누군가 사진을 찍었다. 야유나무 아래 비석은 그렇게 들어섰다. 

죽은 자들이 그리우면 마을 사람들은 야유나무 아래로 갔다. 그날 칼에 찔렸다가 살아남은 몸이 아파도 야유나무 그늘 밑으로 가 쉬었다. 바람이 불어오고 야유나무 나뭇잎이 흔들리면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 돌아와 부르는 소리로 여겼다. 야유나무는 그늘 큰 어머니였고, 악기였고, 퐁니 퐁넛의 기억 저장소였고, 추모비였고, 한 그루 살아있는 향불이었다.

이 전시는 그 나무 아래서 쓰러지고 울고, 또 그걸 기억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첫 촬영자인 미 해병 제3상륙전부대 소속 본(J.Vaughn) 상병. 그가 48년 전인 1968년, 스무 장의 사진에 붙인 설명문은 모호했다. 기록자 고경태는 그 사진설명문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현장에 갔다. 이름 없던 주검들이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부활했다. 한 문장에 불과했던 사진설명문에 이야기의 살이 붙었다. 시간을 건너뛰어 본 상병과 고경태가 만난 퐁니·퐁넛 사람들을 소개한다.

-2016년 9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