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란 형식을 빌었지만, 이 글은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홍석현/메디치)에 대한 본격 서평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의 향후 행보를 제 나름대로 그려보는 일종의 ‘잡설’ 쪽에 가까울 듯 합니다. 

누군가 ‘홍석현 이사장이 정치에 나설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다’라고 답을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홍석현 이사장이 스스로 말하는 ‘공적인 가치’가 정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본격 행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홍 이사장이 자신의 ‘공적 가치’ 실현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 ‘시기’를 관망하고 있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 지난 7월13일 오전 서울 중구 순화동 월드컬처오픈에서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 주최로 한반도 패러다임 대전환: 통일에서 평화로를 주제로 진행된 2018년 연례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한반도 비핵화’ … 홍석현 이사장과 문재인 정부의 생각은 매우 비슷하다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라는 책을 잘 들여다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북핵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홍 이사장의 생각이 문재인 정부 기조와 상당 부분 흡사하다는 점입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호평과 향후 역할이 중요하다는 대목이 계속 언급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유의미하게 봤습니다. 사견이긴 합니다만 홍 이사장이 향후 ‘공적 가치’ 실현을 위한 행보를 본격화할 때 그 출발과 터전이 ‘보수 우파’ 쪽이 아니라 현재 집권 여당이 될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에서 밝힌 홍 이사장의 생각은 현재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우파’ 진영에선 실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적어도 대북문제와 관련해선 홍 이사장이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 ‘강경 보수세력’과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는 점을 이 책에서 분명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과 같은 홍 이사장의 ‘대북관’이 한국 내 강경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보수우파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JTBC ‘태블릿 보도’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문에 홍석현 이사장에 대한 ‘안티 분위기’가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2016년 1월의 4차 핵실험을 이유로 개성공단을 닫은 데 대해서는 꼭 그랬어야 하는지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돈이 없다고 북한이 핵개발을 안 하거나 못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천안함 폭침 때도 폐쇄하지 않았던 개성공단입니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대북제재를 완화할 뜻은 없지만 남북경협만은 예외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지요. 

이걸 다시 재개하려면 인도적 지원이든 뭐든 그만한 명분과 모멘텀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니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던 거예요. 생각할수록 아쉬운 일이죠. 당시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한다 해도 우리 내부적으로는 훨씬 더 신중한 절차가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닫을 때 닫더라도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회의라도 했어야 합니다. 그랬더라면 적어도 나중에 재개할 명분은 남길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 116페이지 ‘북한 지원이라는 딜레마,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에서 인용) 

▲ 문재인 대통령을 동행해 평양을 방문중인 특별사절단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외삼촌인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9월19일 오후 오찬이 열린 평양 옥류관에서 대동강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최태원 SK 회장.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 강조한 홍석현 이사장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한 부분도 또 다른 특징입니다. 이건 제가 설명을 드리는 것보다 책에 소개된 내용을 인용하는 게 훨씬 좋을 듯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은 김일성 주석 서거 직후였던 1994년에 있었어요. 당시 이른바 ‘조문 파동’이라 불린 ‘이부영 파동’이 있었는데 그때까지 중앙일보는 조선일보와 거의 비슷한 입장이었어요. 김영삼 정부를 마구 비판하면서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을 때였죠. 

그즈음 김대중 대통령이 지인을 통해 일산에서 조용히 만나자며 간곡한 요청을 해오셨어요. 대통령이 되시기 전이었고 영국에서 막 돌아오신 때였죠. 좀 의아한 마음으로 댁에 찾아갔더니 이희호 여사께서 손수 준비한 밥상을 안방에 차려놓으셨더군요. 그때 김대중 대통령께서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한참을 설명하고 설득도 하셨어요. 지식인이 사리 분별 없이 현실에 의거하지 않은 채 이념적으로 경도된 언론 논조를 갖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씀이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그때 제 마음이 크게 움직였거든요.”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 169페이지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 2009년 8월19일 김대중 전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회장이 분향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홍 이사장은 ‘이런 과정’을 거쳐 1995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신의 사고가 전향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이때부터 한반도와 북한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다는 고백도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좀 의외였습니다. 홍석현 이사장이 탈세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적이 있는데 그것이 1999년 9월30일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였습니다.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자 보광그룹 대주주였던 홍 이사장이 검찰에 출석할 때 중앙일보 기자들과 간부 40여명이 대검 청사 앞에서 외친 “홍 사장 힘내세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사건입니다. 

홍 이사장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서운했을 법도 한데 ‘그런 부분’에 대해선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에선 언급이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호평과 고마움’이 많이 묻어 납니다. 제가 인터뷰를 했다면 한번 물어봤을 법도 한데 아쉬운 대목입니다. 

분명한 것은 홍석현 이사장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큰 틀에서 지지하고 있으며 그 출발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점을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법륜 평화재단 이사장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추천 글을 쓴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