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누적된 사법부와 양형 기준에 대한 불신도 국민 공분 부채질
“짧은 시간이지만 분명히 범행 계획이 수립이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갈등관계가 형성됐을 때 자기 집으로 범행동구를 가지러 간다. 돌아와서 실제적인 공격을 먼저 했다. 범행도구를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자기의식과 책임이 분명히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 경찰청 범죄행동분석팀장이었던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김성수의 심리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김성수의 심신미약 판정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23일 방송된 MBC <100분 토론> ‘PC방 살인사건과 심신미약’편을 통해서다.
또 전문가들은 현 사법부의 심신미약 관련 판결이 국민들의 현 법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 판사 출신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심신미약 상실을 주장하는 사건의 20% 가까운 경우가 (재판에서) 받아들여진다”며 “무려 수십년 전의 우리 사회상태를 반영한 법조항인데, 일선 재판에서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역시 “정신감정 요청 건수가 95년도와 비교했을 때 3배 정도 증가했다”며 “‘나는 심신미약이다’라고 주장하는 피고인들이 급증했다. 도피성 수요를 일부 변호사들이 재판 전략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우울증=심신미약’과는 거리가 멀지만
“(심신미약이) 과연 얼마만큼 사건과 관계가 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피해망상이 있고 환청이 있다 하더라도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누가 나를 죽인다는 피해망상에 휩싸여 살기 위해 정당방위로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 정당방위나 무죄가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판단 능력만으로 (판결을) 할 순 없다.
(심신미약은) 불쌍해서 그 사람을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치료감호의 원래 취지가 재범을 예방하는 것이다. 치료감호는 치료를 받지 않으면 재범할 가능성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전 법무부 치료감호소 일반 정신과장이었던 조성남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심신미약 판결의 취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김성수의 경우에도 그가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전력이 공개되면서 심신미약과 관련한 논란을 키운 경우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실제 법원이나 관계 기관에서는 이 심신미약과 관련한 판결이나 감형 인정은 실제로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2014년에서 2016년까지 1심에서 인정된 심신장애 215건을 분석을 했습니다. 장애 유형별로 보면, 가장 많은 것은 조현병으로 101건, 47%였습니다. 그 다음이 알콜 사용장애로 32건, 15%였습니다. 반면 우울증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총 8건, 전체의 3.7%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관련, 지난 22일 방송된 JTBC <뉴스룸>은 ‘팩트체크’를 통해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자료를 제시했다. 위와 같이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낸 보고서에 따르면, 김성수처럼 우울증이 심신장애로 판결의 양형 조건으로 받아들여진 경우는 극소수였다.
반면 심신장애 전체로 보면 결과는 조금 달랐다. 이혜랑 대구지방법원 판사와 최이문 경찰대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법정에서 피고인의 심신장애가 쟁점이 된 사건은 총 1597건으로, 이 중 1심 재판부가 심신장애로 인정한 경우는 305건이었다. 약 19%로, 5건 중 1건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법원 판례를 볼 때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라고 해도 범행 당시 정상적인 사물변별 능력과 행위통제 능력이 있었다면 심신장애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취지가 확고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판례를 보면 법원이 정신질환 자체보다 범행 당시와 전후 상황의 맥락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공분할 수밖에 없다, 왜?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 이런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합니까. 나쁜 마음먹으면 우울증 약 처방받고 함부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심신미약의 이유로 감형되거나 집행유예가 될 수 있으니까요.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처벌하면 안될까요? 세상이 무서워도 너무 무섭습니다.”
‘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이란 제목의 청와대 청원 주요 내용이다. 이 청원은 24일까지 참여인원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24일 오후 1시 현재 1,0 42,759명) 전문가들의 의견과 달리, 이러한 국민들의 열띤 반응의 이면엔 바로 아래와 같은 배경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과거 음주 범죄의 경우 법원이 너무나 쉽게 심신미약을 인정해 처벌을 가볍게 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걱정한다. 최근 판례 경향을 보면 그런 경우에도 엄중히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은 형벌이 크게 낮아질 가능성은 없다.”
변호사 출신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설명했다. 금 의원은 또 “심신 상실이나 심신 미약이 인정되려면 환각이나 환청이 들려 자기가 하는 일이 뭔지 잘 모르는 경우다. 예를 들어 사람을 물건으로 보고 때렸다거나 행동 조절이 안 될 때 인정 된다”라며 “우울증 약을 먹은 정도로는 심신미약이나 심신 상실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이렇게 전문가들 대다수가 “우울증은 심신미약, 심신 상실”과 거리가 멀다고 단언한다. 그럼에도 여론은 피의자의 음주 범죄나 조현병과 같은 정신병 전력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경우에 주목하고 있다. 조두순 사건이나 강남역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100분 토론>에 출연한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처럼 “심신미약란 양형 인자(요소)가 ‘언터쳐블’이 되고 있다”며 “국민들이 공분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100만 명을 넘긴 관련 청와대 청원 역시 이러한 주장과 배경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음주 범죄를 포함해 실제 양형 요소에 적용된 심실 미약(정신박약, 신경쇠약, 히스테리, 노쇠, 알콜중독, 경증의 정신병질 등) 요소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이 극에 달한 것이다.
또 하나, 그간 누적된 사법부와 양형 기준에 대한 불신 역시 PC방 살인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부채질한 것으로 보인다. 알코올 중독이라서, 조현병이라서 정상참작이 됐던 사건들에 대한 경각심 못지않게 사법농단 사태와 같이 법원 스스로가 신뢰를 무너뜨린 판결과 양형기준이 국민들의 불신을 키운 것이다.
피의자 김성수는 이제 공주 치료감호소에서 본격적인 정신 감정을 받게 됐다. 안타깝게 숨진 피해자의 목숨을 위해서라도, 이번 논란이 국민들의 법 감정과 부합하는 법원과 사법부의 진지한 숙고로 이어지길 바란다. 국민들은 더 이상 조두순과 같은 ‘감형’ 사례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성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