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함께 꼽은 명절 성차별 1위, ‘여성만 하는 가사노동’>

어제(16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기사 제목입니다. 남녀가 함께 꼽은 명절 성차별 1위가 여성만 하는 가사노동이었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서울시 성평등 생활사전-추석특집’ 조사 결과를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기사가 전하는 핵심은 간단합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명절에 여성만 상차림 등 가사를 도맡는 현실”이 문제 있다는 겁니다. 이번 조사는 여성가족재단이 지난 4일부터 11일까지 온라인 캠페인에 참가한 시민 11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인데 응답자 중 남성도 336명(28.7%)이 포함됐습니다. 남성 43.5%가 여성들의 가사 전담을 가장 성차별적인 행위로 답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많은 언론이 보도한 ‘명절 성차별’ 비판 보도, 그러나 … 

관련 내용은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잠깐 제목만 한번 살펴볼까요? 

<“시댁→시가, 외할머니→할머니”…올 추석부터 명절 풍속 바뀔까> (국민일보)
<명절 최고의 성차별? “어미야, 상 차려라” “남자가 어딜 주방에”> (경향신문) 
<명절 성차별 1위는 ‘여자만 가사노동’…남녀 의견일치> (뉴스1) 
<남녀가 꼽은 명절 성차별 1위? ‘女만 하는 가사노동’…男 “분위기 개선 원해”> (동아일보) 
<“어미야, 상 차려라”… 명절 성차별 1위 ‘女 가사노동’> (세계일보) 
<남녀 의견 일치한 ‘명절 성차별’ 1위는?> (중앙일보) 

사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조사 결과는 최근 유엔개발계획(UNDP)의 조사 내용과는 ‘정반대’ 기사입니다. 유엔개발계획(UNDP)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189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성평등 수준이 세계 10위권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계 10위권의 성평등 국가’에서 △명절 때 여성만 가사노동을 하고 △성차별적인 언어나 행동을 여전히 듣고 있다면 ‘성평등 10위’라는 숫자에 ‘허수’가 많다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일상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남녀가 함께 꼽은 명절 성차별 1위가 여성만 하는 가사노동’이라는 언론 보도가 유의미한 이유입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일상에서의 ‘여성 편견과 억압’에 대해 언론 역시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명절 관련 보도에선 ‘남녀평등’ 시각… 그런데 일상에선 ‘반여성’ 보도? 

하지만 저는 요즘 이런 보도가 불편합니다. 명절을 전후로 등장하는 일종의 매뉴얼 같은 보도가 아닌가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평소 ‘남녀차별’이나 ‘여성인권’에 관심 없다가 명절을 전후로 많은 언론이 ‘명절증후군’ 같은 보도를 내보내는데 저는 ‘이번 조사’를 전하는 언론 역시 그런 보도의 일환이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자(17일) 한국일보는 24면에 <정유미 영화 주연 논란 덕에… ‘82년생 김지영’ 100만부 돌파 눈앞>이라는 기사를 실었는데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배우 정유미를 주인공으로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에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 △원작 소설이 이런 논란을 발판 삼아 100만부 판매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는 내용을 전했습니다. 

저는 <82년생 김지영> 영화화를 둘러싼 논란(?)으로 책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언론이 주목해야 하는 건 ‘영화화 반대’ 움직임이 온당한가 – 이 대목이라고 보는데 한국일보는 ‘논란으로 책 판매가 오히려 급증해서 100만부 돌파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 방점을 찍습니다. 

한국일보가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82년생 김지영’이 페미니즘 소설로 남녀 갈등을 부추긴다며 영화화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출연 결정한 정유미를 비난하는” 일부 남성들과 네티즌들의 행동이 온당한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걸그룹 레드벨벳 아이린이) 휴가 기간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했는데, 이게 일부 남성 팬들의 화를 돋웠다”는 표현이 기사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영화화를 반대하는 이유라든가 일부 남성 팬의 분노표출 방식에 대한 가치판단은 배제한 채 ‘하나의 반대의견으로 동등한 지위’를 획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왼쪽은 <82년생 김지영 l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은이) | 민음사 | 2016-10-14) 표지. 오른쪽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역에 캐스팅된 배우 정유미씨. <사진제공=뉴시스>

사회적 ‘논란’에 관한 언론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나 

오늘(17일) 경향신문 28면에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는 <‘논란’을 파는 보도 행태에 대한 경계>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82년생 김지영’과 관련된 ‘논란’을 보도하는 언론사들의 보도방식은 오히려 극단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데 기여한다. 관련 보도들은 정유미 배우의 캐스팅에 대해서 찬반 의견이 나뉘고 있다는 식으로 갈등에만 주목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반대의 이유이며, 또 그 반대를 표출하는 방식이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거나 혹은 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비난의 이유가 되는 기이한 현상의 의미를 따져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로 따지자면 오히려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일보를 비롯해 많은 언론은 ‘반대의 이유와 반대를 표출하는 방식’에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와 방식에 ‘반여성·반인권적 요소’가 있더라도 상당수 언론은 ‘온라인과 SNS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남성팬들의 화를 돋웠다’라는 식으로 보도합니다. 판단을 하고 비판해야 할 지점에서 언론이 논란의 영역으로 우회한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보기에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명절에 여성만 상차림을 맡는 현실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언론 역시 ‘남녀평등’을 주목하는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일상에선 ‘반여성적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반대 여론을 논란이 아니라 ‘반여성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라고 비판을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오늘자(17일) 조선일보 10면에 <요즘 대학가 최대 세력은 운동권 아닌 ‘女권’>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제목만 얼핏 보면 대학가에서 여성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식의 기사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사실상 정반대입니다. 

△동국대 축제 때 ‘페미니즘 부스’를 만들었는데 “페미니즘 행사를 왜 학생회비를 들여 진행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대학 게시판으로 번진 논란은 남녀 성(性) 대결 양상을 보였다 △최근 ‘여권(여성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페미니즘 세력이 학회·소모임부터 총학생회에 이르는 학생 조직을 장악하고 있다 △총학생회 선거 후보들은 앞다퉈 여권(女權)을 강화하는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남녀 모두 낸 학생회비를 여학생에게만 쓰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가 대략적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가 페미니즘을 주목하는 방식 

조선일보 해당 기사의 맨 마지막 문장은 “구성원 동의를 구하지 않고 독단하거나 남학생들과 연대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한계로 보인다. 학내 여러 문제가 남녀의 성 대결로만 치우칠 우려도 있다”는 한 대학교수의 발언으로 끝납니다. 저는 조선일보 이 기사를 “‘女권’이라 쓰고 ‘반女권’으로 읽는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앞서 언급한 김수아 교수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페미니스트 논란’이라는 말은 페미니스트여서 논란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이를 둘러싼 사회적 현상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제목 달기이기도 하다. 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를 논란으로 칭해버리면서 해당 주장의 의미를 축소하는 효과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저 역시 비슷한 생각입니다. 여전히 많은 언론이 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를 ‘페미니스트 논란’으로 보도합니다. 그리고 반여성·반인권적인 의사표출에 대해서도 ‘온라인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전합니다. 이런 식이면 어제(16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남녀가 함께 꼽은 명절 성차별 1위, ‘여성만 하는 가사노동’> 제목 역시 다음과 같이 수정하는 게 바람직할지도 모릅니다. 

<남녀가 함께 꼽은 명절 성차별 1위, ‘여성만 하는 가사노동’ 논란>

이런 식의 보도가 온당하다고 보는지요?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