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세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가 지닌 26일 개봉했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트루맛쇼>, <MB의 추억>, <쿼바디스>를 연출한 김재환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해 7월부터 올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기까지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모습이 담겼다. 

흔히 친박하면 태극기 부대나 과격함을 떠올린다. 그러나 <미스 프레지던트>에 나오는 박 전 대통령 지지자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영화 제작기 뒷이야기 궁금해 지난 영화 개봉 하루 전날인 25일 서울 망원역 근처 커피숍에서 김재환 감독을 만났다. 다음은 김재환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사진제공=김재환 감독>

“연세 있는 분들은 많이들 운다…젊은 관객은 둘로 나뉘어”

-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개봉을 하루 앞두었잖아요. 감독님의 4번째 작품이지만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

“개봉을 앞두곤 늘 두 가지 마음이 있어요. 관객들이 이 영화를 좋아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반, 또 조용히 개봉했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반이에요.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는 게 좀 특이한데 지금까지 마음 편하게 개봉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나 내용 증명 안 받아보고 개봉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이번에는 다르지 않나요. 외압이 없잖아요?

“권력으로부터의 외압은 전혀 없죠. 그런데 사회적 분위기가 주는 압박은 더 강해진 것 같아요. 한쪽이어야 하는 데 가운데에서 소통과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양쪽에서 돌이 날아와요. 당신은 어느 편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밥 먹을 때 보수 농부가 생산한 쌀인지 진보 농부가 생산한 쌀인지 따지고 먹나요? 밥만 맛있으면 잘들 드시잖아요.” 

- 개봉관은 얼마나 잡으셨어요?

“개봉 첫날 77개예요. 제가 지금까지 개봉한 영화가 작게는 4개에서 보통 10개 정도였거든요. 제가 개봉관 숫자가 많아서 당황할 줄은 몰랐죠(웃음). 아침 일찍 혹은 밤늦게 하루 한두 번 상영하더라도 전국에 골고루 상영관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입니다.” 

- 이유는 뭘까요?

“극장도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예전에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면 극장은 알아서 몸을 사리고 최소 단위로 열어 줬는데 이제 그런 분위기는 없는 것 같아요.” 

- 영화제나 시사회를 통해 관객을 만났는데 반응은 어떻던가요?

“연세가 있는 분들은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우는 분들이 많아요. 당신들의 시대를 떠나보내는 눈물이겠죠. 젊은 관객들은 둘로 나뉘어요. 같은 하늘 아래 저렇게 다른 세상을 사는 분들이 있다니 하며 비판하는 분도 있고,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스틸컷 <사진출처=인디플러그>

- 개봉일을 10월 26일로 잡으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419, 5.16처럼 모두가 아는 중요한 날이죠. 박정희 세대를 다루는 영화가 10월 26일만큼 잘 맞는 개봉일이 있나요?” 

- 이 영화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박사모를 취재한 것이죠. 어떻게 이걸 제작하게 됐어요?

“작년 7월부터 올 3월 탄핵심판 선고 때까지 촬영했어요. 5년 전 전주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중에 5년마다 한 번씩 현직 대통령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개봉하면 재밌겠다고 얘길 한 적이 있거든요. 저는 그때 말한 걸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영화관에 있던 관객들은 아무도 기억 못 하시겠죠(웃음).” 

- 정상적이라면 지금 박근혜 정권 막바지일 텐데 가능할 거로 생각하셨어요?

“이명박 대통령일 때도 현직일 때 <MB의 추억>을 개봉했어요. 전국 개봉관 4개라는 쓴맛을 봤죠. 5년 전에도 그랬지만 현직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뤄 현직일 때 개봉 하는 게 콘셉트이에요.” 

- 영어 제목이 ‘miss-president'가 아니라 ‘mis-president'예요. 나쁜 대통령이란 뜻이에요. 다른 단어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mis를 썼어요.

“Myth, Mis-, miss 모두 한글로는 ‘미스’라고 표기되죠.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위해 영어 제목을 정해야 했어요. ‘미스’는 박정희 신화(Myth)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주인공들이 박근혜 탄핵(Mis-)을 겪으며 무너져 내리는데, 아직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그리워한다(miss)는 뜻이에요. 외신 기자에게 설명했더니 영어 제목은 외국인의 관점에서 보라고 하더군요. 외국인이 <미스 프레지던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딱 하나, 한국 대통령의 탄핵을 다뤘기 때문이라고 거예요. 바로 수긍하고 Mis-President로 결정했습니다. 외국인도 아니고 영어 자막 버전으로 영화 보실 것도 아닌데 영어 제목을 빌미로 보이콧 선동하는 건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스틸컷 <사진출처=인디플러그>

“박사모, ‘탄핵 할아버지’가 와도 신실한 믿음은 변하지 않을 듯”

- 박사모 회원 3명을 인터뷰했잖아요. 이들을 선정한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미스 프레지던트>에는 하드코어 박사모 회원부터 동네 선한 이웃 같은 분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어르신들이 나옵니다. 특히 주인공 세 분은 과격함과는 거리가 먼, 착하고 순한 분들입니다. 태극기 집회 참가한 분들 중엔 우리 주인공과 같은 순박한 분들이 많습니다. 박정희, 육영수란 존재를 유별나게 사랑하는 평범한 이웃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 인터뷰 섭외가 어렵지 않았어요?

“만약 작년 10월 정국이 소용돌이칠 때부터 그분들을 만났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언론에 대한 경계가 심했거든요. 저는 7월부터 그분들을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촬영이 가능했습니다.” 

- 영화를 보면 박정희, 육영수 부부는 하나의 종교 같다는 느낌이던데.

“종교적인 느낌이 있지요. 박정희, 육영수 부부를 사랑하는 분들은 신실한 믿음을 가진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탄핵이 아니라 탄핵 할아버지가 와도 신실한 믿음은 변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믿음에 대한 영화기도 합니다.”
 
- 동의가 안 되니 더 어렵지 않나요?

“이 영화 안에서 저는 박정희라는 존재가 얼마나 영웅적인지 아니면 얼마나 악마적인지를 증명하는 데는 관심이 없어요. 각자에게 각인된 강렬한 이미지가 있어요. 그건 합의를 봐서 중간 지점을 찾기 어렵죠. 그래서 늘 싸우는 거고. 작년 말 촛불과 태극기처럼, 가운데 선을 그어놓고 저쪽엔 괴물이 산다면서 서로 비난하고 욕하고 싸우며 살 순 없잖아요.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다가가려는 노력, 그걸 먼저 하는 게 현명한 거예요.” 

-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다들 너무 날카로워요. 영화 포스터를 보고 한 관객이 ‘왜 영애 박근혜의 한복을 노란색으로 채색했냐? 세월호를 상징한 것 아니냐’라고 그러시더군요. 그건 노란색이 아니라 빛바랜 금색이거든요. 사람들이 <미스 프레지던트>엔 정말 예민하게 반응하네요.

한 가지 긍정적이라면 양쪽 다 묘한 균열이 있어요. 보수적인 분들도 빨갱이 감독이 만든 것이니 보이콧하자고 하는 분들도 있고, 대화를 시도하는 영화다 보고 판단하자는 분들도 있죠. 진보적인 분들도 영화에 대한 반응이 확연히 나뉘어요. 그동안 대부분의 정치 소재 영화는 양 진영으로 나뉘어서 한쪽은 완전 지지 한쪽은 완전 거부죠. 그런데 <미스프레지던트>는 양쪽에서 다 지지와 거부가 나뉜다는 게 맘에 듭니다.” 

▲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스틸컷 <사진출처=인디플러그>

“무서워하지 말고 편하게 보러 오세요…유연해야 진짜 극복”

- 중점은 어디에 두셨어요?

“중점을 다 뒀어요(웃음). 영화 보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정말 다양한 관점과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건 제가 해석의 여지를 활짝 열어둔 이유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각자 인생에서 삶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한 분 한 분에게 영화가 다르게 다가온다면 좋은 거 같아요.”

- 이전 작품에서는 가상과 현실을 오갔는데 <미스 프레지던트>에서는 가상이 없는데.

“그렇게 보였나요? 가상과 현실을 열심히 오갔는데...(웃음) 누군가에겐 현실이 누군가에겐 가상일 수도 있지요. 뒤집힌 게 바로 본 것일 수도 있고, 바로 선 게 뒤집힌 것일 수도 있죠.”

-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메시지요? 그건 직접 찾으셔야죠(웃음). 집 근처 영화관에 가셔서 감독은 왜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 양쪽에서 욕먹는 상황을 자초했을까 함께 고민해주세요. 예매는 사랑입니다.” 

- 관심 있게 볼 포인트가 있나요?

“없어요(웃음).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보러오세요.”

- 일각에서는 감독의 의도가 어찌 됐건 이 영화로 보수층이 결집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데.

“그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미스 프레지던트>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요. 결집을 하려도 뭘 봐야 결집을 하죠(웃음). 정작 보수단체에서는 빨갱이 감독이 만든 보수 파괴영화라고 우려하는데, 진보적인 분들은 이 영화로 보수가 결집하는 거 아니냐고 우려하다니...(웃음). 다들 왜 이러는 걸까요. 모두가 우려하는 상황이네요.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뭔가를 진짜 극복하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유연해야 할 것 같아요. 영화는 그냥 영화입니다.”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이거 하나는 확실합니다. <GO발뉴스> 독자들에게 <미스 프레지던트>는 가장 필요한 영화예요. 생각이 많아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