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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가마니에 묶인 것을 잡아당기다 말고 문득 옆을 돌아보고 있다. 흰 무명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었는데 이마가 넓고 납작하게 둥근 얼굴에 일순 시선을 돌리고 있는 오른쪽 눈자위가 희다. 모종의 불안과 경계심이 교차하고 있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다. 신작로 옆 들판은 두어 마지기를 베어냈다. 방금 전 거기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던 것일까.
채 돌이 되지 않은 젖먹이를 강보로 들쳐맨 여인은 무언가 훔치려다 들키기라도 한 낯빛이다. 엉덩이는 뒤로 밀려나 있고 흰 고무신을 꿴 두 발은 뒷걸음질로 신작로로 올라서려고 버티고 있다. 매무새가 단단해 보이는 두 손은 가마니로 싼 것을 잡아서 막 끌어내고 있는 참이다. 여인은 거적대기 세 개 중 가운데 것을 골라내 막 빼냈다. 아이를 업은 여인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이지만 반드시 그걸 해내야만 하는 처지가 분명하다. 등 저편으로는 중씰한 사내 하나가 서 있다. 사내의 옆과 앞에도 가마니로 감거나 묶으려던 것들이 보인다. 가마니는 옆을 터서 이불과 요처럼 겹쳐 무언가를 감싸고 새끼줄로 윗부분과 허리를 한 번씩 묶은 걸로 봐서 타작한 나락을 넣은 건 아니다. 거기 들어 있는 건 무엇일까. 잠시 눈길을 돌리자니 다만 익은 들판 뒤로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능선이 마을 뒤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
여인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누군가는 보이질 않는다. 그는 사진 밖에 있다. 틀림없는 건 그 여인이 68년째 멈칫한 시선으로 남도 가을 들판 어귀에 엉거주춤 서 있다는 사실이다. 저 여인의 긴장된 시선을 이제라도 내려놓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여인은, 그날,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오늘 우리는 거기서 과연 자유로울까.
사진을 찍은 이는 Carl Mydans(1907~2004), 장소는 여수 혹은 순천, 찍은 날짜는 1948년 10월19일 이후 어느 날. 사진과 기사가 실린 건 미국 사진잡지 LIFE(15 November 1948) ‘Revolt in Korea’.
* 사진에는 죽은 이도, 총든 이도 보이질 않는다. 시신이 널브러져 있거나 쫓기는 이 하나 없다. 그해 여수와 순천을 기록하고 있는 사진 중에서 가장 '비非'여순적인 사진이다. 나는 여기서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들과 오래도록 만나왔다. 이 사진에는 어떤 휴지休止도 없다. '그 후' 산 자가 맞닥뜨려야 하는 게 무엇인지 저 여인의 눈빛은 이 순간에도 선명히 말해주고 있다. 분단과 학살은 저 눈빛에 여태껏 단 하루도 평안을 주지 못해왔다. 어떤 비극도 혼자 비극적인 법은 없다.
저 들판에서 마저 벼를 베던 사람들은 무슨 말을 주고 받았을까. 가을밤에 벼 베는 낫질 소리를 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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