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는]

나도 그대의 하늘인 적이 있겠지요
비 그치고 먼 데 산이 마당까지 내려온 날
멀어서 가까운 게 하늘 뿐이겠는지요
그대도 나의 하늘인 적이 있겠지요
가슴 시리게 푸르른 날은 
어디를 까마득히 돌아서 오늘 하늘로 오시는지요 
푸른 공단 한 자락으로
삼천리를 두르고 가을달을 길러내는
폭풍우 지나간 저 높은 세월 어디쯤 
나도 그대의 하늘인 적이 있겠지요
시월마다 쪽빛 허공을 잘라내 옷해입는 하늘 강산
그 푸르른 맨발로 찬이슬 밟고 가서 지리산 인왕산 기슭을 내리는
그대도 나의 하늘인 적이 있겠지요
다시 비 그치고 산빛 가깝거든
하마면 그대여
시월 한 모퉁이에서 흰 옷 입고 시린 청색으로 
서로 섞이면 
어느 청산이든 방금 쓸어낸 마당 깊이 들어오기도 하겠지요

* 하늘을 우러러 살아 있다고 외치고 싶은 날이다.
언제 우리가 하늘이었던가.
푸르른 날들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어느 가을날에 귀한 길손인 양 저 하늘을 밟고 마당 깊이 들어설 수 있을 것인가.
한복 단정히 입은 백남기 어른의 바쁜 발목이 보인다.
마음 마당을 쓸고 하늘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