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없는 정치, ‘찌라시’가 된 언론, 교육없는 학교…아이들 뭘 보고 자랄까”
하루하루 살아 있다는 게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런 세상에 살면서 무력한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17일 새벽 서울 서초구의 한 주점 화장실에서 살해된 직장인 A씨. 광주 어등산 등산로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흉기를 휘둘러 김모(48)씨가 숨지고. 지난 3월, 서울 성동구의 한 횟집 앞에서 이 횟집 주인인 김씨는 택시를 기다리다 갑자기 봉변을 당하기도 하고. 자식을 가르쳐 달라고 맡긴 선생님을 성폭행한 학부모에 이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도덕성이 어쩌고, ‘묻지마 범죄’의 유형이 어쩌고 하면서 잘도 분석한다. 그러다 사회의 지탄이 무서워 곳곳에 CCTV나 몇 대 설치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묻지마 범죄’뿐만 그런가? 숨 쉴 공기, 마실 물, 식당에서 먹는 음식, 시장에서 파는 식자재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가? 심지어 아이들이 사용하는 학용품이니 학교급식에 납품되는 먹거리까지 안심할 수 있는가? 정부나 경찰 당국에 묻고 싶다. 정말 이런 모든 문제, 모든 사건이 개인의 도덕성만의 문제인가?
정치를 한다는 사람이나 교육을 하는 학자나 교육자는 자살자가 생기면 통계나 내고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위클래스나 만들고 청년실업이나 노숙자문제, 노인빈곤문제가 생기면 개인의 능력 탓이나 하고.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나 강력범죄 그리고 ‘묻지마 범죄’ 와 같은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구조적인 모순의 결과다. 원인은 덮어놓고 현상만 치료하겠다고 강변하는 정부를 보면 정말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를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교육이 무너졌다. 언론도 실종되고 정치는 방향감각을 잃고 있다. 이런 세상에 ‘묻지마 범죄’가 나타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자본의 논리,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가해자, 범법자만 탓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지난 8일,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서 발생한 여교사 성폭행 사건도 그렇다. 자식을 가르치는 여교사에게 술을 먹이고 집단 성폭행한 동네 사람도 인면수심의 파렴치지만 그게 어디 어떻게 술을 마신 교사, 가해자만의 문제인가?
교사승진제도가 만든 모순이 젊은 교사들을 섬지방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현실을 방치한 교육당국은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섬에 사는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경력 있는 교사가 아닌 신규교사 아니면 승진점수 채우려는 교사에게만 배우게 해야 하는가? 진부한 얘기지만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환경이 교육이라는 것은 교육자가 아니어도 다 아는 얘기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는가?
눈만 뜨면 만나는 성적 지상주의,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교육은 없고 남에게 이겨야 살아남는다며 아이들을 살벌한 경쟁지상주의, 학벌주의에 내몰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 원칙 없는 정치, 찌라시가 된 언론, 교육 없는 학교, 삭막한 사회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며 자라겠는가? 나는 아니야, 선생들 잘못이야. 다른 아이들은 다 잘도 견디는데.. 세상이 그런 세상인데.. 이렇게 책임전가나 하고 책임회피만 하면 끝나는 문제인가? 공기도 물도 먹거리도 병들어 가고 있는데 우리 자식만, 내 제자만 안전할 수 있는가? 고고하게 길러낼 수 있는가? 이 땅에 어른으로 사는 게 부끄럽고 미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