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37] 조정래 <귀향> 감독
1943년 일본군 위안부에 끝려간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이 개봉 12일만에 관객수 260만명을 넘으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귀향>은 개봉 5일전만 하더라도 상영관을 50개도 잡지 못해 애를 태웠다. 그러나 시민의 요청으로 개봉관이 확보되고 입소문을 타서 관객수가 증가했다. <귀향>의 메가폰을 잡은 조정래 감독은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해 지난 7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조 감독을 만났다. 다음은 조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개봉 자체가 기적, 두세번 본다는 분들 너무 감사하다”
- 영화 <귀향>의 관객 수가 250만 명을 돌파했어요. 개봉 며칠 전만 하더라도 상영관을 50개도 확보 못 할 정도로 어려웠지만, 개봉 10일 만에 200만 명을 돌파해서 더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맞아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끼고 너무나 많은 국민이 영화를 관람해 주시기 때문에 그분들이 만들어주신 기적이죠. 감사하단 말밖에 드릴 게 없는 것 같아요.”
- 관객이 많은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제 생각엔 국민 여러분께서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에 대한 생각과 마음들이 모여서 영화를 보시게 한 게 아닌가 해요. 또 어떤 분들은 한번 보는 게 아니라 두 번이나 세 번 본다고 들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 것들이 아마 이 영화를 통해서 좀 더 몰랐던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오는 여러 가지 마음들이 빠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개봉 전에 상영관을 못 잡았을 때 심정이 궁금해요. 14년 걸려 만들었는데 많이 안 보시면 아쉬울 것 같은데.
“저는 주변 분들이나 배급사에 개봉관이 적어도 그것마저 감사하다고 했어요. 왜냐면 개봉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잖아요. 왜냐면 아무도 투자를 안 했고 심지어 많이 고생했던 사람조차도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도 기적이었기 때문에 개봉관이 몇 개가 되든 잡혔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죠. 그러나 국민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주신 것뿐만 아니라 개봉관을 열어 달라고 해서 열리는 것도 국민이 해주신 거니까 저희가 한 건 없어요.”
- <귀향>은 알려진 대로 1943년 일본에 끌려간 위안부 얘기입니다.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 할머님의 그림을 보시고 충격받아서 그걸 모티브로 삼아 제작하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그건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인데 저는 그 그림을 통해서 많은 소녀가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어 충격이었죠. 그래서 비록 종교를 떠나 영혼으로나마 이분들을 고향으로 모셔와야겠다는 일념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소녀의 영혼, 나비로 표현…영혼으로나마 모셔오고 싶었다”
- 영화에서 그 장면이 나오던데.
“네. 그걸 영화로 재현했어요. 굉장히 힘든 경험이었어요. 많은 스텝과 배우들이 그 장면 찍을 때 많이 우는 등 힘들어했죠. 또 보통 영화 하기 전에 고사 지내는데 그 장면 찍을 때 고사를 또 지냈어요.”
- 어느 정도였어요?
“많은 스텝이 울며 찍었어요. 너무 리얼하고 죄송스러웠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 촬영하는 데에 신기하게도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어요.”
- 영화에도 나비가 나왔던 것 같은데 연출이 아니었나요?
“불태울 때 나온 나비는 찍기는 했지만, 영화엔 안 나오죠. 그러나 마지막에 나비를 통해 고향에 돌아오는 장면은 의도한 것이고 소녀의 영혼을 나비로 표현했어요. 그 나비가 아이들의 영혼을 의미한다는 모시나비거든요. 그것을 통해 고향으로 온다는 게 강력한 저의 의지였죠.”
- 14년 걸렸잖아요. 그 시간은 짧지 않은데 중간에 포기하고 싶진 않았나요?
“포기가 안 되는 작품이었어요. 이 자체가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은 영화인데 할머니들은 70년 넘게 고통받고 계시고 봉사하시는 분들도 25년 넘게 봉사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것에 비하면 전 아무것도 아닌 거죠. 중간중간 힘들어도 포기 자체가 안되는 프로젝트가 <귀향>이었어요.”
- 14년 걸린 이유 중 하나가 제작비였잖아요. 크라우드 펀딩으로 7만5천 명이 참여했죠. 아마 대부분은 소액이라서 더 의미가 클 것 같아요?
“맞아요. 만들지 못할 뻔한 영화를 7만5천 명의 후원금을 가지고 영화가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분들의 힘이 아니었다면 절대 만들 수 없는 영화였고 전 세계 최초로 많은 분의 힘을 모아 만들어서 그분들이 대단하신 거죠.”
“초등학생들 나비 그림과 편지, 고사리 같은 돈 모아 참여”
- 사연도 많을 것 같은데 몇 가지 소개 부탁 드려요.
“너무 많은 분이지만 그중에 초등학교 한 학급에서 나비 그림을 그리는 등 고사리 같은 돈을 모아서 6만 원 정도 냈어요. 아이들의 편지가 제작사 사무실에 붙어 있는데 늘 힘들 때면 그걸 보면서 힘을 받고 너무 감사하죠. 그런 분들이 너무 대부분이에요. 7만5천 명이니 얼마나 많겠어요? 그리고 자기 이름도 밝히지 않고 돈을 쾌척하신 분들에겐 이 자리를 통해서 감사드리고 싶어요.”
- 감독, 제작, 각본까지 다 하셨던데 진행하시며 무엇이 가장 힘들었어요?
“제가 힘든 건 괜찮은데 저와 함께 한 수많은 사람과 스텝 중에 가장 핵심적으로 뛰던 사람들 몸이 아픈 등 힘들어했었어요. 예를 들어 임성철 PD 같은 경우는 영화에 너무 노력하다 보니 쿠시병이라는 희귀질환을 앓아서 지금도 투병 중이에요.
제 와이프 같은 경우는 영화 의상 소품에 관련해서 일하고 개불노리개도 직접 만들었는데 영화 촬영할 때 영양실조가 와서 그 이후 지금까지 몸이 회복 안 되고 있어요. 저는 그렇다 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너무 많이 고생했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 영화에서 일제시대와 현대를 오가는데 의도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 의도는 위안부 피해는 과거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의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죠. 즉 현재 위안부 아픔을 가진 여성이 과거 당시 나이들의 소녀와 함께 만나서 안아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계속 위안부 피해 여성에게만큼은 같이 노력해 나가고 할머니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 최선을 다한다는 다짐을 담으려는 것이에요.”
- 영화는 배우 캐스팅이 중요하잖아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영화는 배우 구하기가 굉장히 힘든 영화였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하신 분들이 많아요.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오디션에 너무 많이 오셨고 선출되었을 땐 ‘굳이 배우가 아니라 스텝이라도 하겠다’는 분들이 많아서 신기했죠.
손숙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배우가 재능 기부에 가까운 출연을 해주셨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대단하죠. 또 재일교포 분들은 두말할 것 없이 어떻게 보면 당신들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비로 영화에 참여하시는 등 이 모든 것이 기적이죠.”
“일본보다 더 우익같은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영화 봐달라”
- 배우 손숙 씨는 노 개런티로 출연하셨던데.
“선생님은 천 원 한 장 받지 않고 영화에 참여해 주셨고 처음부터 선생님이 제안하셨기 때문에 너무 대단하시죠. 어느 누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어요? 너무 감사하죠. 그리고 선생님이 영화에 너무 열심히 해주셨고 그 덕분에 나이 어린 신인배우들이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인데도 이 영화를 반대한 사람이 있다던데.
“네. 기자님 보시기에도 그런 사람들 있지 않나요? 누굴 특별히 지칭하지는 않지만,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해 잘 모르고 실체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쟁이 나면 사람은 죽는다’는 사람도 많았고 일본 우익보다 더 우익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국민이 이 문제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많이 봐주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 반대한 분들도 영화를 봐주시길 바라죠.”
- 할머님들과 같이 보며 울었다던데.
“네. 할머님들에게 제일 먼저 보여드렸는데 보시며 많이 우셨고 고맙다는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이 영화를 통해 할머님들께서도 많이 공감을 해주셔서 감사하고 많이 우셔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 보람도 있었겠어요?
“물론이죠. 그러나 굉장히 슬펐어요. 왜냐면 2002년 봉사할 때 계셨던 할머님들은 거의 돌아가셨거든요.”
- 봉사는 어떻게 가시게 되셨나요?
“제가 판소리 고수를 하기 때문에 나눔의 집 갈 때는 음악인으로 할머니들께 소리도 가르쳐 드리고 판소리 공연도 하는 등 음악 봉사자로 갔죠. 할머님들 위로해 드리러 갔다 도리어 저희가 위로를 받은 거죠.”
- 지난 연말 한일 장관의 위안부 합의로 할머님들과 국민이 분노했는데 어떠셨어요?
“할머님들 입장과 저는 함께하는데 할머님들은 ‘우리는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일본의 정확한 책임과 사죄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요. 제 뜻도 같아요. 할머님들과 끝까지 일본이 제대로 사죄하는 날까지 움직이겠습니다.”
“타지에서 돌아가신 분들 애도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함께 맞이해달라”
- 관객들이 꼭 느끼길 바라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이 영화가 단순히 고통과 슬픔을 전시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 영화를 통해 할머님들 아픔에 공감하고 타지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애도하고 그분들을 봉화에서 마지막 오는 장면을 같이 그분들을 맞이해 주는 게 먼저가 아닌가 생각해요. 분노나 슬픔도 중요하겠지만 제일 먼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애도 그리고 그분들에 대한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저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영화 <귀향>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이 44분이 살아 계신데 이 할머님들이 너무 연로하시지만, 끝까지 관심 가져주셔서 할머님들과 함께 이 문제가 진정으로 해결될 때까지 <GO발뉴스> 독자분들도 함께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