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 노동개혁, 정규직-비정규직 연대 더 어렵게 할 듯

정규직도 불안정 노동자로 추락…노동시장 전반 불안정성 강화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노동개악 2대 행정지침 무효선언 및 국가인권위 진정' 양대노총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노동개악 2대 행정지침 무효선언 및 국가인권위 진정' 양대노총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정부의 노동시장 양대 지침은 노동자에게 이로운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2015년 9월 15일 현재의 노동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공동 인식 하에,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이 노사정 최종합의의 주요내용은 노사정 협력을 통한 청년고용 활성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사회안전망 확충,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동시장의 3대 현안인 통상임금 명확화, 근로시간 단축, 임금제도 개선이었다.

그러나 합의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노사정 각 주체 간에 개별 쟁점들에 대한 상당한 입장 차이가 있었다. 핵심 쟁점은 ① 일반해고의 가이드라인 마련, ②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③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연장, ④ 파견근로 대상 및 업종의 확대, ⑤ 정년연장과 함께 적용될 임금피크제 등이었다.

위의 쟁점들과 관련한 구체적 내용 확립과 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노동시장개혁 법안’이 국회로 넘어갔다. 법안은 현재 통과되지 않았지만, 정부는 지난 1월 22일 현저한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게 하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행정지침으로 '공정인사' 및 '취업규칙' 지침을 발표했다.

‘공정인사’ 지침은 일반해고의 요건으로 저성과가 규정된 것으로, 이 지침이 적용되면 성과평가를 근거로 해고가 이전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동안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비정규직에 대한 유연화가 이루어졌다면, 이번 일반해고에 대한 지침은 정규직에 대한 유연화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피크제와 같이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이번 정부지침에서는 취업규칙 내용의 변경에 대해 노조가 협의를 거부하고 동의하지 않는 경우 '사회통념상 합리성'에 따라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판단토록 했다. 이런 취업규칙 지침이 노조가 아예 없는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에게 말할 것도 없이 불리할 수 있지만, 일반해고 지침과 마찬가지로 정규직의 근로소득 불안정성에도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정부의 양대 지침은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 확대를 목적으로 하는데, 이는 근로자의 고용과 임금의 안정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이미 안정성(security)의 수준이 낮은 한국의 노동시장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특히 불안정노동자를 더욱 확대시킬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노동시장 규제완화와 유연안정성

유럽에서도 1980년대 말부터 계속되는 실업과 장기실업의 증가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탈규제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었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 요구되는 유연성의 확대와 더불어 적절한 수준의 사회보장(또는 사회적 임금) 제공에 대한 욕구도 증가하였다. 이런 배경 하에서 유연안정성(flexicurity)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유연안정성 개념은 고용주와 노동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으로,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정성(security)이 모순되지 않고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해,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하여 초래되는 고용관계의 불안정성을 사회보장 및 고용제도를 통하여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개념은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공식 정책아젠다로 채택되기 전인 1990년대부터 이미 네덜란드와 덴마크를 포함하여 다수의 유럽 국가에서 논의되고 정책에 반영되었다.

1993년 덴마크 사회민주당 정부에 의해 노동시장 개혁이 이루어질 때 사용된 ‘덴마크 유연안정성 모델’의 경우, 핵심적인 세 가지 요소로 유연한 노동시장, 관대한 실업급여, 그리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한 노동시장 재진입에 대한 강조가 있었다. 이 세 가지는 덴마크 노동시장정책의 ‘황금삼각형’이라고도 불리는데, 덴마크 모델에서는 고용의 유연화를 통해 노동시장에서의 이동성을 높이는 동시에 관대한 실업급여를 통해 해고자들의 소득을 보장하고, 기술향상 및 직업훈련에 대한 투자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재진입을 돕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유연안정성의 특징으로 비전형,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보장 수준을 정규직과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즉, ‘비전형,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정화’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확대하여 비전형 노동자도 훈련, 임금 보존, 보충연금을 받을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다시 말해, 유연화에 따른 규제완화로 해고된 정규직 근로자들의 소득이 불안정해지는 경우 관대한 실업급여를 통해 소득을 보장하고 동시에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실시하거나, 유연화와 함께 증가될 수 있는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같은 수준의 사회적 임금 또는 사회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비정규직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동시에 정규직과의 격차를 줄이는 방법의 유연안정화 정책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를 통해 드러난 우리나라 사회 안정망의 한계

그렇다면 한국 노동시장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한 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연구들을 통해 밝혀졌다. 이번 정부 지침을 통해 확대될 수 있는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정규직의 삶마저도 불안정의 나락으로 끌어내려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승윤과 김승섭(2015)의 연구는 나쁜 해고가 정규직의 삶을 얼마나 황폐화시키는 지를 잘 보여준다.

이승윤과 김승섭(2015)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와 미끄럼틀 한국사회’ 연구는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해고자들의 6년간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해고 직전까지는 제조업 중심의 대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종사하였던 내부노동자가 외부노동시장으로 추락하는 과정을 분석한 연구이다. 이 조사에서는 이중노동시장에서 해고된 내부자의 미끄럼틀 타기식 지위 변화를 통해 내부노동자와 외부노동자 간의 큰 격차를 분석하고 또한 미끄럼틀 타기식 추락의 원인으로 구체적으로 한국의 적극적 노동시장과 고용보험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이 조사에서는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 된 실직자 중 6년이 지난 2015년까지 쌍용자동차에 복직하지 못한 187명 중 116명의 응답이 분석되었는데, 정리해고 된 노동자들은 해고 직후 즉각적으로 소득이 급격히 감소하고, 6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연 소득 2,000만원 미만의 대상자가 약 70%를 차지하였다. 또한 직업의 형태는 무직자를 제외하면 아웃소싱, 일용직, 영세자영업 등으로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었으며, 생계형 보조일자리에서 일을 하거나 배우자가 새롭게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비율도 증가하였다.

사회보험 측면에서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미납 역시 해고 직후 상당한 비율로 발생하였고, 그 다음 해에도 추가적으로 미납자들이 발생하여 지속적으로 이들의 경제적 안정도가 낮거나 낮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한국사회에서는 해고는 즉각적으로 시장소득 및 사회적 임금의 감소를 가져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실업급여를 포함한 고용보험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한 결과, 구직급여 및 직업훈련 등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이들 고숙련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데 별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오히려 상당수가 지인이나 가족 등 사적 관계를 통해 일자리를 찾았거나 직업훈련 등의 시간이 오히려 소득감소에 기여한다고 대답하여, 고용보험 및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효과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현 정부의 노동개혁: 불안정 노동시장의 확대 가능성

오랜 노력 끝에 다행히 지난 2015년 12월 30일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희망퇴직자, 유관업체 전직자의 단계적 복직을 뼈대로 하는 노·노·사 3자 간 합의안이 의결되었다. 특별히 이번 교섭 과정에서 쌍용차 노조 쪽 교섭위원들이 ‘비정규직 문제가 최우선 과제’라는 원칙을 내세웠는데, 사내하청 비정규직 6명이 우선적으로 복직되었다.

한국의 이중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소득, 고용불안정성 및 사회적 임금의 격차를 감안하면 위의 합의 내용은 정규직와 비정규직의 연대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조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여전히 대기업의 정규직으로 종사하던 노동자가 정리해고 직후 이중노동시장의 외부자로 추락한 후 6년이 지난 시점까지 외부노동시장에 지속적으로 머물러있다는 것은 한번 해고로 인해 외부노동시장으로 퇴출된 노동자가 내부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사회에서 노동시장 내부자와 외부자간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며, 앞으로 확대될 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정성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더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한국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포함한 고용보험 정책이 이중노동시장 문제의 해소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한국 이중노동시장에서 내부자와 외부자간의 간극이 크고, 해고가 즉각적으로 외부노동시장으로의 미끄럼틀 타기식 추락을 의미한다면,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고용보험의 재취업 및 소득안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의 일방적 유연성 확대는 비정규직 뿐 아니라 정규직조차도 불안정한 노동자로 추락시킴으로써 한국 노동시장 전반의 불안정성을 강화시킬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이중노동시장의 구조 내에서 외부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는 심각한 문제인데,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및 고용보험 등의 사회보장 수준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는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화 방향은 외부노동시장이 확대되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

※ 이 글은 (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동시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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