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신조 일본 총리 ©SBS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9일 미국 워싱턴DC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우리는 앞서 전쟁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가슴에 담고 걸어왔다”며 “우리의 행위가 아시아 국가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 대한 진심어린 사과는 이번에도 없었다.

이날 아베 총리는 “일본국과 일본 국민을 대표해 지난 전쟁에서 숨진 모든 미국인 여러분들의 영혼에 머리 숙여 절하고 싶다”고 밝혔다. 미국에 최대한 예의를 갖춰 애도하면서 일본의 과거 침략으로 희생당한 이웃나라 국민에 대한 애도는 좀처럼 없었다.

또 자신이 제2차 세계 대전 기념관을 방문한 점을 강조하며 미·일 과거사 청산에 나섰다. 그는 “진주만(공습), 바탄·코레히도(죽음의 행진), 산호해(해전) 등 기념관에 새겨진 전투가 마음에 교차했고, 숨진 미국 젊은이의 잃어버린 미래와 꿈을 생각했다”며 “깊은 뉘우침으로 얼마 동안 묵념 속에 그곳에 서 있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전후 미국의 지원도 거론하며 “미·일 화해는 역사의 기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70년 전 일본은 잿더미였지만 미국 시민들이 매달 아이들을 위한 우유와 따뜻한 스웨터, 2036마리의 염소도 보내줬다”며 “전후 세계의 평화와 안전은 미국의 리더십이 없었다며 불가능했다”라고 말했다. 또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책인 ‘리밸런싱(rebalancing·재구조화)’ 에 적극적인 지지를 거듭 표명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직접적 사과나 언급은 없었다. 대신 “무력분쟁에서는 항상 여성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았다”며 “우리 시대에서는 여성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는 세상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미래 화법’을 구사했다. 이는 위안부 피해자를 ‘인신매매’의 희생자로 규정하면서 여성의 인권을 강조하는 종전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앞서 28일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베총리는 “인신 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로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었던 점을 생각하면 깊은 고통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수차례 표명한 독일과 정반대의 행보를 고집스럽게 고수했다.

한편 이날 연설장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있었다. 휠체어에 불편한 몸을 의지한 이 할머니는 허탈한 표정으로 아베 총리의 연설을 지켜봤다. 할머니는 미 하원의 군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한 마이크 혼다 의원의 초청으로 이날 아베 총리의 연설을 방청했다.

혼다 의원은 아베 총리 연설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도 민주국가로서의 성숙함을 보이고 실수에 대해 사과해야 아시아 주변국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통틀어 100명도 남지 않았고 그 마저 줄고 있다. 시간이 중요하다. 이들은 정의를 누리고 사과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