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출처='티비 읽기'블로그

바둑은 정말 어렵다. 정말 많은 수가 존재하는데, 문제는 수순(돌을 놓는 순서)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오게 된다. 바둑이란 결국 집이 많은 쪽이 이기게 되는 게임인데, 그 결과를 위해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바둑을 두는 사람의 성향과 기력에 따라서 그 싸움의 양상은 크게 전투 바둑과 집 바둑으로 나눌 수 있다. 보통의 아마추어들은 전투바둑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래서 가장 자주 나오는 훈수들이 ‘아생연후살타’라는 격언이다. 상대보다 수가 높다고 하더라도 무리하게 잡으러 가다가 오히려 자신이 죽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바둑인 탓이다.

그렇게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것이 바둑인데, 묘한 것이 바둑돌이 살기 위해서는 최소 두 집이 필요하다. 한 집만 냈다면 그 돌은 죽은 것이다. 투자한 돌이 얼마나 많은지는 상관없다. 최소 두 집 이상을 내야 완생이 된다. <미생>이라는 것은 그 두 집이 아직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둑에서 두 집은 의외로 간단하다. 귀를 이용하면 아주 적은 돌로도 두 집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바둑돌을 다 써도 그 두 집을 만들지 못해 대마불사라는 격언도 무색하게 대패를 하기도 한다. 그 완생을 위한 두 집. 그 이야기가 바로 <미생>이다.

▲ 이미지출처='티비 읽기'블로그

<미생>은 스물여섯의 장그래가 낙하산 아닌 낙하산으로 치열한 무역상사에서 두 집을 내고 완생하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웹툰을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어릴 적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오로지 바둑만 팠던 장그래에게 회사 그것도 치열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무역상사에 적응하기란 절대 불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드라마에서도 나오지만 회사 일이라는 것은 혼자 하면서도 함께 해야 하는 묘한 모순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둑은 혼자 하는 싸움이다.

1회에 비해서 2회는 다소 싱거웠다. 그나마 장그래와 오과장의 갈등과 화해(?)가 아주 빨리 전개됐다는 것이 다음을 위해서 긴요했지만 오과장이 장그래에게 마음을 여는 단서가 조금 약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빽 하나 믿고 에스컬레이터 타는 세상. 나는 아직 그런 세상 지지하지 않어”라고 장그래에 대해서 오해했던 오과장이 타 부서 인턴의 실수도 장그래가 욕을 먹은 것 때문에 곧바로 “우리 애”로 인정하는 것은 좀 어색한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집에 돌아온 장그래는 오과장이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친 그 “우리 애” 부분이 마치 사랑을 얻은 것처럼 기쁘고 행복해서 잠을 설칠 지경이다. 과정에는 분명 부족함이 있었지만 장그래의 잠 못 이루는 밤은 기쁘게 받아드릴 수 있었다. 이제 천덕꾸러기에서 벗어나 좀 더 본격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첫 단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바둑에 빗댄다면 여기까지는 단지 포석에 불과하다. 포석이란 텅 빈 바둑판에 바둑을 두기 시작하는 단계로 주로 네 귀퉁이에 위치한 화점 주변을 먼저 둔다. 흑돌과 백돌이 가장 먼 거리를 둔 채 세력을 겨루는 단계로 아직은 <미생>, 완생을 논할 수준이 아니다.

▲ 이미지출처='티비 읽기'블로그

사실 필자의 기력은 넉넉하게 평가해서 동네바둑 12급 정도다. 틈틈이 바둑 티비를 보고, 바둑에 관련된 만화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거기서 좀처럼 기력이 늘지 않은 채 그대로다. 그래서 직장인 드라마이면서 내면적으로 바둑 드라마인 <미생>을 바둑으로 해석하기란 어렵고 또한 섣부른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웹툰과 달리 드라마 <미생>에는 왠지 바둑에 대한 접목이 너무 부족해서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바둑의 예를 들게 됐다. 그래서 한 마디만 더 바둑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바둑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위기십결이라는 것을 외워야 한다.

위기십결이란 바둑의 십계명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둑을 두는 이가 흔히 빠질 수 있는 실수를 줄이기 위한 마음 자세를 정한 글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로 인생의 십계명으로 삼아도 좋을 글이기도 하다. 서두에 말한 ‘아생연후살타’라는 말도 사실은 위기십결의 ‘공피고아(攻彼顧我)’를 쉽게 풀이한 말이다.

어쨌든 이 위기십결 위에서 <미생> 2회를 보자면 ‘동수상응’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마를 할 때에 여러 방면이 서로 연관되고, 호응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개인에서 집단으로 이행해야 하는 장그래의 인생 행마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지나칠 정도로 오과장의 취중진담을 반복하고 그 끝에 장그래가 마침내 미소짓게 한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 같다.

(☞국민리포터 ‘탁발’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