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파업을 벌인 노조에 대해 수십억대의 손해배상 가압류가 잇따르자,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관련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데 공감을 나타내며 이를 공론화하기 위한 공식 사회적 기구를 출범키로 했다.

24일 오후 7시쯤 한홍구 평화박물관 상임이사,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신승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등은 서울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에서 손배가압류 없는 세상을 위한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준비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는 공동제안자로 민주당 전순옥 의원, 조국 서울대 교수, 서해성 성공회대 교수, 민변의 권영국 변호사 등도 참석했다.

▲ 24일 오후 7시 평화박물관. 손배․가압류 없는 세상을 위한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첫 준비모임 ⓒ ‘go발뉴스’

한홍구 상임이사는 “쌍용차 노동자에 손배 액수가 47억 원이 떨어진 것을 보고 정신이 들었다”며 “파업 며칠하고 노동행위 제공을 거부했다고 그런 천문학적인 액수가 산정된 것을 보고 노동이 위대하고 값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늘날 손배‧가압류는 자본을 통한 옥죄기로 노동자들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악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는 사측의 손배‧가압류와 노조말살 정책에 항의하다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같은 해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 씨도 같은 이유로 지프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다 크레인 위에서 홀로 목을 맸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 법원은 한진중공업 노조에게 사측에 59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말에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90억,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 파업을 벌인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회사와 경찰에 47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철도공사는 2006년도에 노조가 4일 동안 벌인 총파업에 70억 원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했다. 2009년 파업에 대해서도 1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청구해 현재 재판 중이며, 지난 연말 민영화 반대 파업에도 77억원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해 논 상태다. 현재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총 액수가 무려 1135억원에 이른다.

▲ 24일 오후 7시 평화박물관. 손배․가압류 없는 세상을 위한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첫 준비모임 ⓒ ‘go발뉴스’

이날 준비모임에 참석한 한상균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은 “손배가압류는 금전의 문제가 아니고 한 인간의 영혼을 올가미에 가둬 버리는 치명적인 악법으로 작동하고 있다”면서 “(손잡고가) 우리 사회가 같이 어울려 살기 위해 가장 기초적인 질서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서해성 교수는 “손배‧가압류는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통을 연대한다는 개념으로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운동의 기조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잡고 싶은 손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날 회의에 참가한 공동제안자 등은 손배‧가압류 문제가 20대 국회의 1호 법안이 돼야 할 만큼 시급한 문제라는 데 공감했다. 조국 교수는 “2016년 총선 전까지 공동공약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국회 앞에서 매일 요구하는 게 필요하다”며 법 제도 개선과 관련 “법을 바꿔야 하는데 형법이나 민법을 바꾸는 게 만만치 않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한홍구 상임이사는 “언론들이 ‘손잡고’를 취재원으로서가 아닌 함께 손잡고 참여하는 동반자로 생각했으면 한다”며 “노동자에게 지워진 멍에를 벗기는 작업에 함께 참여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잡아주지 못한 배달호의 손, 김주익의 손을 이제는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주자”고 덧붙였다.

‘손잡고’는 100인의 제안자로 시작해 뜻에 동의하는 개인과 단체들로 규모를 점차 확대해 다음 달 초 기구 결성을 발표할 예정이다. 손배·가압류 실태조사를 하고 2월 초부터는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사회적 모금 활동 등을 펼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