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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서해성] 광주학살의 또 다른 내력
서해성 작가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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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5.27  15:08:42
수정 2023.05.27  15: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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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살을 자행한 지휘관들은 월남전에 갔다 온 장교들이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 대개 영관급이었던 이들이 장군이 되어 12.12 쿠데타를 일으켰고 광주에서 학살을 감행했다. 그들은 월남에서 비무장 민간인을 살해하듯이 동족을 학살했다. 광주는 전라도에 있는 월남이었던 셈이다. 학살 좌표 중 하나는 이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신군부 핵심 세력인 전두환(백마부대 제29연대장), 노태우(맹호사단 재구대대), 정호용(제9사단 대대장), 박희도(노태우 후임 맹호사단 대대장), 박준병(주월한국군사령부 민사심리처 요원), 최세창, 최웅, 장세동, 이학봉, 차규헌, 유학성, 황영시 등은 베트남전에서 전투 경험을 익힌 군인들이었다. 

광주학살에 사용한 개인화기는 M7 대검을 착검한 소총 M16A1이었고, 기관총은 M60(7.62mm 탄약)을 주로 사용하되 최대 사거리 6,800m에 이르는 캘리버CAL50 M2 중기관총(12.7mm 탄환)도 동원했다. 군인들이 시민을 향해 발사한 실탄은 5.56mm 탄환 49만 7,962발, 기관총 1만 759발, 권총 2,754발, 수류탄 194발, 근거리에서 사용하는 휴대용 대전차화기 M72 LAW(1회용 대전차로켓탄 66㎜) 50발, 코브라 헬기에서 쏘는 20㎜ M61 Vulcan cannon 벌컨 기관포탄(국과수는 적어도 5군데 탄착점에서 벌컨포 사용 흔적을 확인했다), TNT 폭약 1천200㎏ 등 51만 2,626발이었다. 진압군은 적어도 11가지 이상 무기를 사용했다. UH-1h(1955년 개발), AH-1J(코브라. 1965년 개발) 헬기는 공수부대와 제20사단을 공중 지원했다. 이 자료들은 대부분 신군부 핵심권력기구이자 국민 감시와 통제, 고문을 포함한 압살을 일상으로 수행했던 보안사가 작성한 문서에서 나왔다. 

여러 무기들은 널리 알다시피 베트남전쟁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숲을 덮고 있는 소나무와 거리에서 느티나무를 야자수로 바꾸고 거리 간판 글자를 달리한다면 광주와 베트남을 구분하기 쉽지만은 않았을 양태였다. 월남전과 광주학살은 거의 붙어 있었다. 월남전 종전 5년 뒤에 광주학살이 있었다.

한국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는 육사 선배들과 자신들을 6.25참전과 월남참전으로 구별 짓고자 했다. 6.25 참전에는 과거이자 낡은 전쟁 같은 인상을, 월남전 참전에는 현대전 의미를 부여했다. 하나회 핵심 구성원들 중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근대사는 학살로 문을 열었다. 그 학살의 좌표는 갑오년(1894) 우금티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의병 토벌과 학살, 항일독립군 소탕과 동조자인 동족 학살, 제주를 포함한 한국전쟁에서 광범한 학살, 월남에서 민간인 학살, 광주 학살로 ‘전통’을 이어왔다. 일본군 아래서 관군은 동학농민군을, 그들이 일본군에 편입되어 의병과 독립군을, 다음 세대가 한국전쟁에서 학살을, 그걸 보고 성장한 세대가 월남 학살을, 거기서 영관 급으로 활동했던 장교들이 별을 단 장성이 되어서 벌인 게 광주 학살이다. 

그해 겨울 초입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던 공주 주미산 능선 우금 고개 학살은 유라시아에서 처음 일어난 집단학살이었다. 의병과 항일독립군 또한 마찬가지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봉오동 청산리 승첩 과정과 그 이후 일본군은 독립항쟁 기지를 파괴하기 위한 광범한 살상을 자행했다.(경신참변, 1920) 조선인 마을이 있던 만주는 두만강 너머에 있는 우금티였고, 제주와 여순은 한국 땅에 있는 만주였다. 노근리 사람들은 충청도 어디를 떠돌고 있는 ‘인디언’들이었다. 퐁니·퐁넛은 베트남에 있는 노근리 또는 제주였고, 광주는 전라도에 있는 베트남이었다. 이 악의 순환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학살 주체의 유전자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조선 정부에게서 작전 지휘권을 강탈한 일본군은 공주 우금티에서 일제 후비보병대 지휘 아래 조선 관군이 대량학살을 실행토록 했다. 한국 군대에 스민 이 뒤틀린 근육은 바뀐 적이 없이 80년 광주까지 거듭되었다. 놀랍게도 광주에서 발사된 벌컨 기관포 원형은 우금티에서 하루 1만여명 동학농민군을 쓸어버린 주력 화기인 개틀링 기관총이었다. 학살 이후 학살을 성찰하지 않으면 학살은 학살을 오마주한다. 

   
▲ 서해성 작가

이 끈질긴 학살 역사를 끝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이를 기억하는 일이다. 기억과 기록이야말로 역사에서 해낼 수 있는 가장 큰 징벌이다. 

오늘은 광주학살 마지막 날인 5월27일이다.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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