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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의 사람] 마리아 칼라스,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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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 작가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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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3  11:24:48
수정 2017.11.13  11: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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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하나가 지는 건 
산 하나가 통째로 붉은 적이 있다는 뜻이다. 
-<이 가을에>에서

   
▲ '오페라의 여신' 마리아 칼라스(1923~1977) <사진제공=뉴시스>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마지막 연주는 1974년 10월8일 서울 이화여대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후쿠오카, 도쿄, 오사카, 히로시마, 그리고 삿포로에서 끝났다. 그날은 11월 11일이었다. 영문은 알 길 없지만 어쨌든 그의 최후 공연 여정은 극동이었다. 한국은 유신 철권통치시대 한 중심을 지나고 있었다.

가수로서 그가 이룩해낸 위대한 지점은 거의 1백년 전에 부르고 만 도니제티, 벨리니Vincenzo Bellini 등의 벨칸토 오페라를 그의 목소리로 현재화한 일이었다. 가히 bell(아름다운)+canto(노래)였다. 노래 역시 역사의 맥락 위에 서야 한다는 걸 마리아 칼라스의 성취는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떤 예술도 단지 기술이나 기교만은 결코 아니다. 감각적 지성, 지성적 감각의 혼융이 없는 작업은 겉만 화려한 수사이거나 역사 밖으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이화대학 강당에서 마리아 칼라스는 6곡을 연주했는데 앵콜곡으로는 Puccini의 오페라 <Gianni Schicchi 쟌니 스키키>에서 ‘O mio babbino caro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불렀다. Schicchi의 딸 라우레타Lauretta는 피렌체 보석거리 포르타 로사Porta Rossa에 가서 반지를 사지 못한다면(리누치오와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면) 베키오 다리 Ponte Vecchio(Old Bridge) 아래 강물로 뛰어들겠다고 노래한다. 포로타 로사에서 베키오 다리는 걸어서 고작 5분 거리다. 베키오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부서지지 않은 피렌체의 유일한 다리이기도 하지만 또한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로 재건축되어 있어서 설령 부서진다 해도 아주 부서지는 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노래는 망치와 폭탄 따위로는 파괴되지 않는다.

마리아는 고도 근시에 키 174cm, 한때 몸무게 95kg에 이르는 거구였다. 그의 겉모습을 바꾸게 한 건 오드리 햅번의 영화였다. 그는 모성 결핍이 심했고 이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친정과 연을 끊고 살았다. 그의 생애를 내내 지배한 건 노래, 그리고 결핍이었다. 그는 늘 날카로웠고 연애에 미숙했다. 28살 더 먹은 남자와 혼인하여 살다가 선박왕 오나시스의 유혹에 넘어가서 남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동안 그 사내는 다른 여자(재클린 케네디)에게로 가버렸다. 마리아 칼라스는 무대에서는 그의 모국인 그리스 여신이었지만 삶에서는 제대로 된 반지를 끝내 끼워보지 못했다. 비유하자면 벤치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운명이었다고나 할까. 오나시스를 통해 겪은 실연은 그의 목소리를 앗아가고 명줄까지 재촉했다.

청년시절 그 여인의 노래와 운명을 기리면서 포르타 로사Porta Rossa에서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여름이었고 다리가 걸려 있는 Fiume Arno 아르노강물은 한낱 꾸정했다. 그의 삶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회억컨대 1977년 학생잡지 학생중앙에 실린 사망 관련 특집기사였다. 그의 목소리가 딴에 조금 귀에 익게 된 건 시립도서관 옆에 붙어 있는 왜색 건물을 개조한 음악 감상실이었다. 여전히도 그의 목소리는 붉은 벽돌 사이사이에 물감처럼 묻어 있다.

이화대학 연주회에는 가보지 못했다. 아직 너무 어렸고 마리아 칼라스가 누구인지도 미처 알지 못했다. 다만 오늘은 단풍 좋은 그 학교 긴 층계를 올라 대학강당과 본관 앞을 무심히도 지나가보려 한다. 작년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진 이 학교 학생들의 목소리가 최고 권력을 해체하는 발화점이 된 것도 기억하고자 하는 뜻이다. 거기에 나그네의 낙엽 하나를 더한다.

   
▲ 지난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정에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떨어지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단풍이 붉다는 건 
생 하나가 온통 뜨거운 적이 있다는 뜻이다. 
<이 가을에>에서

* 11일 산책 계획은 몸살로 실행되지 못했다. 단풍이 지기 전에는 꼭 가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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