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바라던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를 끝내 받지 못하신 채 세상을 떠나셨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하상숙 할머니가 28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SNS 상에는 슬픔이 담긴 애도의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현재 국내에 생존해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서른 여섯 분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오전 9시 10분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께서 운명하셨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정대협은 “1928년생으로 올해 90세가 되신 할머니는 충남 서산 출생으로 공장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944년 17세 되던 해에 중국 무한지역으로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을 받으셨다”며 “해방 이후 고향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전쟁의 고통과 함께 해방후 60여년을 중국 땅에서 사시다가 지난 2002년에서야 고향으로 돌아오실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지난 2000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서 증인 참석을 하셨고, 2002년 영구 귀국 후 수요시위와 일본 집회 등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하셨다”고 밝혔다.

또한 “그것도 잠시, 다시 중국 무한 가족 곁으로 돌아가셨고 그 곳에서 따님과 함께 지내시다가 병환을 얻어 지난해 4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병원생활을 하셨다”며 “최근에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으나, 패혈증으로 인해 오늘 오전 결국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지 못하시고 생을 달리 하셨다”고 전했다. 

윤미향 정대협 공동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우리곁에는 36분 생존자가 계신다. 할머니들의 시간이 이렇게 짧아지고 있다”며 “마음을 모아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윤 대표는 또다른 글에서 “어제도 내 사랑하는 한 분 할머니 생각하며 눈물 흘렸는데 오늘도 참 눈물이 이래저래 난다. 우리네 삶이 참 서럽다”며 “이렇게 질기게도 싸웠건만 그렇게 훌훌 가볍게 만들어드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자꾸 든다”고 슬픈 마음을 토로했다.

윤 대표뿐만이 아니었다. SNS상에는 하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애통해하는 글들이 계속 이어졌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시리즈를 만들었던 변영주 감독은 페이스북을 통해 “하상숙 할머니는 ‘낮은 목소리’ 1편에 나온 중국 무한에서 살고있는 위안부 피해 생존자였다”고 회상했다.

변 감독은 “한국어를 잊지 않으셨고 정정하셨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에 적극적이셨다. 통역과 현지 코디네이터의 역할까지 담당하셨던 할머니”라며 “이제 ‘낮은 목소리’ 3부작에 함께 하셨던 할머니 중 김복동, 이용수 할머니만이 계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밝혔다. 안신권 나눔의집 대표도 SNS를 통해 하 할머니의 명복을 빌었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서 증인으로 참석하시는 등 해결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오셨던 할머니는 끝내 정의로운 해결도, 평화로운 세상의 실현도 보시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한 일본인 네티즌은 페이스북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한글과 함께 일본어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가 돌아가셨다(日本軍「慰安婦」被害者 ハ・サンスクハルモニ死去)’는 글을 남겼다. 이 외에도 “한 마리의 나비로 날아오르소서” “그 곳에서 편안하세요” “그 곳에서 영면하소서” “꼭 가슴으로 기억할께요” 등의 글들이 SNS상에 올라왔다.

정춘숙 “반드시 12.28 합의 바로잡아야”…정현백 장관 “비통한 마음”

정치권에서도 하 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또 다시 슬프고 아타까운 소식을 접했다”며 “지난해 귀국 후 병원에 계셨었는데 끝내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하고 가시게 되어 더욱 가슴이 미어진다”고 밝혔다. 남 의원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를 하루빨리 해결하기 위해 뛰고 또 뛰겠다”며 “하늘나라에서 꽃길만 걸으시길 기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같은 당의 정춘숙 의원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반드시 12.28 합의의 문제를 밝혀내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신 하상숙 할머님께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하루빨리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양순필 국민의당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그토록 애타게 그리던 고국 땅을 영혼으로나마 자유롭게 누리고 다니시길 기원한다”며 애도의 메시지를 띄었다.

양 부대변인은 “이제 정부에 등록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 생존해 계신 분은 36분밖에 남지 않았다. 할머니들이 바라는 것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통한 명예 회복 오직 이것뿐”이라며 “일본 정부와 아베 총리가 더 늦기 전에 위안부 피해자들 앞에 진심으로 사죄하기를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를 향해서는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해 잘못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백지화하고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협정을 체결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올 들어 벌써 네 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을 떠나보내게 돼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는 심경을 나타냈다.

정 장관은 “여성가족부는 고 하상숙 할머니를 포함한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회복을 위해 기념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조사‧연구 및 교육 등을 전담할 수 있는 연구소 설립에 역점을 두겠다”고 다짐했다. 여성가족부는 “정 장관은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조문할 예정”이라며 “여성가족부가 장례비용을 지원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