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에 대한 1심 판결에 문화예술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적폐청산과 문화민주주의를 위한 문화예술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28일 성명을 내고 “법원이 김기춘의 권력남용에 대해서 ‘권한을 남용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고작 징역 3년을 선고하는데 그친 것은 블랙리스트로 피해 받은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법 감정과 심각하게 충돌한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법원이 스스로 인정했듯 블랙리스트는 은밀하고 집요한 방식으로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면서 “그렇다면 법원은 그들의 죄악을 단죄할 실정법이 부족한 형편에서 현행법이 허용하는 한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장관도 모르게 블랙리스트가 실행됐다’는 1심 법원의 판결이 엄격한 심리를 거쳐 신중하게 채택된 증거에 의거하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한편, 1만 명에 달하는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을 분노하게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며 아울러 “앞으로 열리게 될 2심 법원은 이들에 대한 혐의를 더욱 엄격하게 밝힐 것”을 촉구했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1심 선고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그런가하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연극인들은 사법부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고 비판하며, 직접 위원회를 구성해 민‧형사 고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서울연극협회는 27일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까지의 모든 상황을 ‘박근혜 정부, 서울연극탄압사건’이라 규정하고 그 시발점이 됐던 2014년 ‘서울연극제 대관탈락사태’부터 철저한 법리적 해석을 통해 조목조목 규명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현직 서울연극협회 임원,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 사태 피해자, 전문 법조인 등으로 구성된 ‘박근혜 정권, 서울 연극 탄압 피해 배상 대책 위원회’(가칭)를 발족하고, 민형사상 고발을 통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뉴시스>에 따르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된 김미도 서울과기대 교수는 “진상조사위를 통해 조윤선, 김소영 등의 혐의를 철저히 입증하겠다”며 “감사원 보고서 등에서 조윤선 재임기간 중 블랙리스트 실행이 확실히 드러난 만큼 특검은 항고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는 “김기춘 전 실장의 직권 남용 행위에 대한 형량 ‘징역 3년’은 이례적 중형으로 볼 수 있다”며 “보통 징역 1~2년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SNS를 통해 “관점의 차이”라며 “법원이 엄하게 헌법위배까지 들어 꾸짖으면서 일갈한 것에 비하면 선고 형량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요란하게 시작했지만 결과는 매우 사소하다는 의미)”이라고 논평했다.

추미애 대표도 2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기춘 스스로가 사약을 마시고 끝내고 싶다고 할 정도로 중대한 범죄를 법원이 이토록 가볍게 처리하는 이유를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추 대표는 “국민의 법 감정을 외면한 법원의 이 같은 결정은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아주 동떨어진 천양현격(天壤懸隔)의 판결”이라며 “국민 대부분은 그 어떤 관용도 베풀 생각이 없음을 법원은 똑똑히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