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성 작가

‘싸가지 없게 싸워라!’
‘싸가지 없게 놀아라!’
‘싸가지 없게 저항하라!’

이 역사적 국면 앞에서 청년세대들의 문제는 정치와 경제, 생활에서 두루 분노는 광범위 한데 승리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른바 민주화운동세대가 사회문제에서 자주 앞장서 올 수 있었던 까닭은 간명하다. 이들은 6월시민항쟁을 통해 전두환 체제를 사실상 무너뜨린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세대가 지난, 요컨대 87년 체제 30년을 맞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대의 출현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 87년세대는 자기 경험에 입각해서 얼핏 비정형적으로 보이는 시민 대중의 주체화를 막거나 꺾어서는 안 된다. 민주화운동 세대가 새로운 세대인 것처럼 새 사회 건설의 주체는 단호히 말하지만 새로운 세대 출현 없이는 불가능하다. 회억컨대 민주화운동의 즐거움 중 뺄 수 없었던 건 모든 걸 건너뛰어 ‘제왕’과 맞짱을 뜨는 일이었다. 그것은 문학적 비유를 하자면 ‘회초리만 때리는 나쁜 의붓 아버지’(군사독재)를 내쫓는 일이기도 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민주화세대는 사태와 상황을 장악한 채 대중의 자발성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형태 안에 담아내려고 애썼다. 그 결과 이는 당시 나타났던 창조적인 국면을 퇴행시켰다. 새 현상을 익숙하긴 하지만 옛 그릇에 넣으려고 했다는 뜻이다. 역사 이래로 시위 현장에서 나온 구호 중 뺄 수 없는 압권은 그때 출현했다. 인터넷 언어의 흔적이 강한 이 말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중간고사 기간에 청계광장에 나온 여중생들은 처절하게 폐부를 찌르는 언어를 창조해냈다. ‘(미친 소)쥐박이, 너나 먹어.’ 모든 걸 생략해버린 이 짧은 언어는 듣는 이들에게 거역할 수 없게 하는 통쾌함을 주되 권력의 성격을 가볍게 제압하면서 본질을 관통하고 있었다. 87년 구호인 호헌철폐 독재타도와는 분명히 결이 다른 언어였다. 곧이어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이어지는 들머리에서 경찰이 차가운 물대포를 쏘자 현장에서 시위대학생들 사이에서 즉각 터져 나온 언어는 경찰조차 웃음에 이끌려나오게끔 하는 능력을 보였다. 그 명문은 단 세 글자였다. ‘온수 쏴!’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는 정확하게 광화문 네거리 중심(이는 한반도의 중심이다)에 책상을 끌고 와서 리포트를 쓰고 있던 학생이다.

이러한 일련의 저항 행태야말로 과거 세대에서 볼 수 없던 해방적 발상이자 광장 문화 행위이다. 대중 스스로 즐거움을 창조해내던 순간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이들이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국가 창조의 주역이어야만 한다. 이 저항 언어와 해방 행위를 생산해낸 주체들은 어디로 갔는가. 집회가 장기화되고 있던 어느 순간 이윽고 이들은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이들이 주도하고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광장없이 새로운 세상은 도래하지 않는다. 모든 저항은 창조적일 때만 새로운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언어 없이 새로운 세상은 없다.

▲ “아! 나의 조국” Ⓒ 고명진 기자

저 빛나는 4.19도 중고등학생이 창조했고, 6월시민항쟁 중심은 스물 갓 넘긴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권력은 물론 시위현장에서 아버지와 꼰대 세대를 전면 꺾어버리고 주역이 되었다. 이제 청년세대들이 승리의 기억을 창조해낼 시기다. 승리에 관한 기억의 축적이 바로 미래다. 미래란 내일 오는 게 아니라 청년세대의 기억과 근육으로 오늘 여기에 형성되는 것이다.

판에 박힌 지침과 지도는 걷어치워라. 이것 또한 자유 창조를 해내는데 ‘스펙’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광장을 빚어내는 데는 스펙 따위는 필요 없다. 자유에는 스펙이 없다. 비정형과 비지도성은 이 세대의 특성이지 비난 받을 지점이 전혀 아니다. 오더를 내지 말라. 이들의 자유로운 태도가 미래를 창조해낼 것이다. 청년들이 자유하게 두라. 어떻게 싸울 것인가. 묻지 마라. 나를 내버려둬. 지도하는 모든 지도를 금지한다. 나를 해방시키지마. 내가 알아서 할게. Don’t liberate me! I’ll take care of that.(프랑스 68혁명 낙서) 분노만으로 세상은 창조되지 않는다. 싸가지 없게 싸워라. 싸가지 없게 놀아라. 싸가지 없게 저항하라. 즐거움과 창조는 거기서 용솟음친다.

▲ <출처=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편지투로 쓰다가 주제의 명확성을 위해 바꾸었지만 의도를 살리기 위해 ‘편지’라는 말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