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성 작가(성공회대 교수)

[그대가 없어도]
- 대통령 실질적 유고를 맞은 어느 첫 아침에(10.26)

그대가 없어도 
출근 지하철은 아직 정시에 도착하고 있고
간밤에 아무도 라면을 사재기하지 않았다. 
회사 앞 밥값은 그대로였고.

그대가 없어도
만물상회 할머니는 작년 오늘 아침처럼 똑 같이 일찍부터 졸고 있었다. 
휴대전화 판매소 아가씨는 컵라면으로 가난한 아침을 유달리 맛있게 먹었고
국물 흘린 셔츠를 간단히 비벼내서 깨끗이 손본 뒤
그대가 없어도
학교 가는 아이들은 가가거겨거리고.

그대가 없어도
엉터리 신고에 여전히 소방차는 골목을 내달려 들어왔다.
싸이렌 소리에 사람들은 달리 놀라거나 하질 않았다.
그 동안 이미 너무 자주 위험했으므로 
적어도 지금보다 나쁠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그대가 없어도
시냇물은 흘러내렸고
단풍은 설악산 아래로 남하중이었다. 
미세먼지 뒤로 거짓말처럼 아침 해가 떴고.

그대가 없어도
조국은 생각보다 안전하였다.
그대가 없는데도
미안하게시리 일상은 평온하였다.
광화문 네거리에서는 큰 데모가 났다는데
유리창 한 장 깨지질 않았다.

그대가 없어도
가구점 아저씨는 망치로 걸상을 고쳤고
장의사 목수는 괜시리 흥얼거리면서 새로 관을 짰다.
사바사바 쿵사바 날만 새면 내 것이다.

그대가 없는데도.
그대가 없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