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2월12일 ‘그날’ 아침,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 청룡부대는 꽝남성 디엔반현의 한적한 퐁니(인구 260명)․퐁넛(300명) 마을을 지난다. 한국군이 지나간 뒤 이 마을에서 74명의 민간인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대부분 노인과 어린아이, 여자들이었다.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었다.

‘그날’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현장은 미 해병 제3상륙전부대 연합작전중대 소속 본(J.Vaughn) 상병에 의해 20여장의 사진으로 기록됐다. 이 사진들은 미군 조사보고서에 첨부된 뒤, 군 당국에 의해 극비문서로 분류됐고 지난 2000년 6월, 32년 만에 기밀해제 됐다.

<한겨레21>은 이 사진들과 기밀 해제된 극비문서를 같은 해 11월 세계 최초로 보도,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전세계에 알렸다. 그 중심에 고경태 기자가 있었다.

이후에도 고경태 기자는 총 6회 퐁니․퐁넛 마을을 방문해 피해자들을 만나 ‘그날’을 기록해 나갔다. “가슴이 잘린 채 살아있는 여자”, “잿더미에 묻힌 마을 주민” 등 짧은 글로 표현된 본 상병 사진 속 주검들은 고경태 기자를 만나 이름을 되찾고, 가족을 찾고, 이야기가 됐다.

고경태 기자의 ‘그날’의 기록은 현재 서울시 종로구 아트링크에서 전시중이다. 전시회는 오는 10월1일까지 열리며 무료다.

기록전은 3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날 이전’, 희생자들의 일상의 기록과 본 상병이 기록한 ‘그날’,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의 모습과 증언이 담긴 ‘그날 이후’다.

▲ 1968년 2월12일,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일어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록을 담은 고경태 기록전 <한 마을 이야기- 퐁니·퐁넛>이 오는 10월1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아트링크에서 열린다. 고경태 기자가 9일 오프닝 행사에서 참석자들에게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 go발뉴스

고경태 기록전 ‘한 마을 이야기-퐁니‧퐁넛’을 기획한 서해성 교수는 “기록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록성은 어떤 어설픈 예술성보다 압도한다. 한마을을 집중 취재함으로써 전쟁의 작은 부분을 통해 전쟁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에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경태 기자는 베트남 꽝남성 우정연합회 부주석의 요청으로 작성된 꽝남성 주민들에게 2015년 2월 발간한 <1968년 2월12일-베트남 퐁니‧퐁넛 학살 그리고 세계>를 소개하는 글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생자가 적은 퐁니‧퐁넛 마을을 집중 취재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는 1999년 <한겨레21>편집팀에서 해외통신원 기사를 담당하던 시절 베트남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1968년 2월12일 베트남 퐁니·퐁넛 학살 그리고 세계>를 출간했고, 또 이번 기록전을 열면서는 <1968년 2월12>의 이란성 쌍둥이 격인 <1968-2016 한마을 이야기 퐁니‧퐁넛> 기록집을 함께 출간했다.

책을 내며 고 기자는 “최근 ‘국뽕(국가주의+히로뽕)’이란 말이 유행한다”며 “과도한 국가주의나 애국심에 취하면 정신이 병든다”고 현 세태를 꼬집었다.

그는 “정부는 국뽕을 권장하는 분위기다. 어쩌면 베트남전 파병 당시와 비슷하다”면서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이었고, 지금은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퐁니‧퐁넛에 관한 기록은 대한민국에 도취된 이들을 기분 나쁘게 한다”며 “‘국뽕 예방주사’로서 이 기록집의 작은 가치를 기대해본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