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씨가 다른 외부인]
-성주 밖에서 성주 말씨를 배우기로 작정하면서

나의 조국은 외부세력을 좋아한다. 80년대 파업현장에 가면 제3자개입 금지조항으로 처벌당했다. 노동자는 친구를 사귀면 안 되었다. 더구나 노동법을 아는 친구는.

나의 조국은 외부세력을 즐긴다. 자신이 면책해야 할 때마다 외부세력과 배후세력은 어디선가 등장해서 활개를 쳐야 한다. 외부세력은 늘 본의 아니게 위기에 처한 정권을 구하고 감옥으로 끌려 들어간다. 참으로 이상한 외부세력이다.

조선 시대에도 외부세력은 있었다. 길삼봉은 함경도에 살았고 경상도에 살았고 전라도에 살았고 제주 섬들 사이에도 살았다. 길삼봉은 잡히지 않았지만 길삼봉으로 죽은 이들은 숱하게 많았다. 일테면 정여립도 길삼봉 중 하나였다. 정통성이 약한 권력일수록 길삼봉은 자주 나타났다.

나의 조국이 볼 때, 그해 봄 촛불집회는 전형적인 배후세력이 한 일이어야 했다. 누군가 여중생들을 청계천 광장으로 가도록 해서 말을 시켰을 게다. ‘미친 소, 쥐박이, 너나 먹어.’ 아직까지 그 배후세력을 잡지 못한 건 그들이 길삼봉을 닮아 너무 은밀하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길삼봉은 오백 살도 더 먹은 셈이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집회에 나온 사람은 다수가 외부인이었다. 제주도 말도 모르는, 정녕 말씨가 다른 외부인들이었다. 그들은 제 돈으로 비행기 표를 사고 밥 사먹고 얻어맞고 수갑을 차고 감옥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의 조국이 보기에 이들은 누군가의 돈을 받거나 사주를 받아서 내려온 자들이었다. 필시 길삼봉 꼴이었다.

구구하게 말할 것 없다. 세월호에도 어김없이 외부세력은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에 슬퍼하는 것도 필시 말씨 다른 외부인들이다. 노란 리본을 찬, 당신처럼.

돌이켜보자니, 동학군도 다수가 외부세력이었다. 고부 군민도 아니면서 갑오년에 팔도에서 농민군들은 일어섰다. 그들은 말씨가 달랐다. 전라, 경상, 충청, 경기, 강원, 황해, 평안, 함경도까지.

3.1운동도 외부세력들이 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이완용은 언젠가 말했다. ‘일부 무지몰각한 자들이 배후에서 선동하고 역시 소문을 듣고 여러 지방에서 치안을 방해하는지라.’ 혹시, 혹시 독립운동도 외부세력이 한 일은 아닐까. 아니면, 독립운동 할 때는 표준어만 사용했던 것일까. 같은 사투리만 썼던 것일까.
궁금도 하다. 4.19혁명은 말씨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한 뜻이 되었을까.

부안 방폐장 거부 싸움에서 말씨가 다른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문제가 일어난 들판에서도 만났다. 말씨가 다른 외부인을. 밀양 송전탑 밑에서도, 또 보았다. 그러고 보니 중국에서도 밀양 말을 쓰던 김원봉은 의혈단원을 뽑을 때 말씨가 다른 사람은 빼기라도 했던 것일까.
말씨가 다른 이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때만 되면 출몰하는 것일까.

경상도 성주 집회를 두고 한 경찰이 역시나 말했다. 말씨가 다른 집회 참석자들!

38선은 38선 근처 말을 쓰는 사람들 몫이고, 강정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배우기는 그닥 쉽지 않은 제주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 몫이고, 사드 마사일 문제는 성주 사람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일까. 낙동강물도 군 단위로 끊어내고, 한강물은 시 단위로 끊어내고, 영산강물도 면 단위로 끊어내야 하는 것일까. 군 경계 따위 넘어서 흐르는 강물은 틀림없이 불순한 외부세력들이다. 그렇다면 공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민주주의 외부세력들은 확실히 외부세력을 혐오한다. 아니, 좋아한다. 말씨가 다른 외부인들을 지독히도 선호한다. 사드 미사일 문제를 성주 골짜기로 고립시키려면 말씨가 다른 사람을 어서 찾아내야 한다. 미사일이 아니라 말씨가 다른 게 문제다. 말씨가 다른, 수상한 외부인! 나의 조국의 경찰은 한국어 듣기 공부부터 다시 해야겠구나. 이런, 사드 미사일 주인이야말로 진짜 말씨가 다른 외부인들 아닌가.

암튼 위험하게도 이 글도 말씨가 다르구나.
그렇다. 나는 분명코 말씨가 다른 외부인이다.

* 참고 : 한국사에서 커다란 변화는 말씨가 다른 사람들이 한 뜻을 품었을 때만 일어났다.

▲ 지난 15일 오전 경북 성주군청 앞에서 어르신, 학생 등 주민들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사반대를 주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