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문이 있고 건봉사가 있다. 

다 불에 타고도 혼자 남은 건봉사 들머리 
팔작지붕 불이문 아래서 들었다. 
동해바다 푸른 물결과 백두대간 맑은 바람이 만나 
옷깃 섞으면서 노는 소리를.  

만해가 뿌린 새벽 단풍이 겨우내 경을 읽다가 
이른 봄에 꽃으로 돌아온다는 얕은 황토 언덕에서 보았다. 
걸어서 넘어온 굽이굽이 진부령이 
먼지 툭툭 털고 들어서는 새벽길을.   

바다가 산으로 가려다가 만나는 문 
올라도 삼천리 내려도 삼천리
산이 물로 내려가려다 들르는 문 하나 
기어이 외날로 기다리고 있었다.
 
남과 북은 둘이 아니라고 전해주려고 
서 있다는 문만 있는 문 
서로 다르지 않다는 불이 不二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는 
불이문이 옛 싸움터 한가운데 서 있었다.  

▲ 서해성 작가

네 얼굴에서 제 얼굴을 보고 있는 
문 아래를 지나는 
까마득한 옛 사투리 같은 
칠십년 묵은 염불소리인가. 

불이문이 있고 겨우 저기 휴전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