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희문 밖에 비가 내린다. 
홑저고리에 맨발, 머리 산발한 빗줄기가 
쇠초롱에 황초 꽂고 
숨죽인 무술년 밤을 따라 걷는다. 
두런두런 말소리
창생蒼生들은 진흙 묻힌 채 어디까지 오다가 
이 문 밖에서 비가 되는가. 
높이 날고 멀리 뛰라는 
고비원주高飛遠走 고비원주
주문이라도 외는 듯 사나운 비가 종이우산을 두드리는 
광희문 밖 
술 한 잔 청수淸水 한 사발도 없이 
빈 무덤 떠나가는가. 

해월海月 선생을 등에 지고 
등불 한 점 없는 밤을 도와 광나루로 가야 하는 길
캄캄한 하늘 향해 고개 드니 
몸은 숨고 뜻은 드러내라고 
뇌성이 치고 
마파람은 찢긴 옷깃 붙잡고 아우성이다. 
칠성판을 짱짱하게 묶어라, 
감발 둘러쳐라.
토란잎에 구르는 빗방울처럼 굵은 눈물 떨어져 
길은 마냥 질척이는구나.  
동학수괴최시형 東學魁首崔時亨 일곱 글자 새긴 말뚝만
빈 무덤 앞을 지키고 있는 
광희문 밖. 
창생蒼生이니 푸르른 생명 아니더냐. 
가문 세상 살리고자 내딛는 자리마다 빗발 꼿꼿이 심으면서 
마지막 길을 간다. 
부서진 몸을 싼 
성근 광목 한 필 올올이 풀어내 빈 무덤 흰 비는 퍼붓는다. 

▲ 1909년 광희문 묘지사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이미지 제공=서해성 작가> *1898년 6월2일 양력 7월20일 무술戊戌년 기미己未월 갑신甲申일  무덤을 파고 일을 거들 사람 둘을 데리고 해월 선생의 제자 두 명은 쇠초롱에 황초 다섯 개, 우산, 해월을 싸서 옮길 베 한 필을 가지고 광희문에 도착했다고 전한다.  광희문 밖 묘지에 관도 없이 못 쓰는 요 한 장에 감겨 묻힌 해월 선생을 제자들은 다급히 수습하여 비 내리는 그날 밤에 광나루에서 송파로 건너갔다.  *여고비원주汝高飛遠走(너는 높이 날고 멀리 뛰라)는 수운 최제우가 해월 최시형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창생蒼生은 백성을 포함한 뭇 사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