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서 온 원로 역사학자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사진은 지난 2018년에 열린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리종혁(왼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제공=뉴시스>

학도의용군이었다. 대학생이었다. 다시 군인이었다. 남산 중정지하실, 남영동대공분실, 서대문형무소를 들락거린 교수였다. 그때마다 분단과 마주쳤다. 만났다. 

분단 역사학의 새벽이었다. 여명이었다. 삼팔선 휴전선 사이에 잃어버린 망실된 역사에서 제 길을 찾아준 나침반이었다. 역사의 나침반은 쇠가 아니라 줏대 있는 붓이라는 걸 한 평생 흐트러짐 없이 쓰고 싸우면서 나아갔다. 

역사학자라는 이름이 이 세상 맨 선두에 서 있다는 걸 글과 삶으로 몸소 입증한 길라잡이였다. 식민사학을 부수는 망치 같은 역사학자였다. 한반도 봉건 끝에서 근대의 씨앗을 찾아냈고, 중세에서 근현대로 잇는 경로로 구해낸 개척자였다. 내내 분단을 넘고자 하는 역사학의 척후였다. 

역사가 현재에 생동하는 숨결이란 걸, 거대한 대중의 노래라는 걸, 겨레붙이의 합창이라는 걸 빠짐없이 기록했다. 망각과 왜곡을 찢어내버리는 살아있는 책 속에 불이 들어 있었다. 불의 역사학자. 강만길, 그가 있었고 역사는 더 이상 암기과목일 수 없었다. 

모든 분단시대 역사 기술은 강만길 이후에 새 길을 따라 갈 수 있었다. 그가 길이었다. 분단 체제 역사학의 스승이었다. 어떤 시대의 격정 속에서도 늘 물 맑게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