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이 16일 오후 나루히토 일왕의 생일 축하연이 열리는 서울의 한 호텔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일왕 생일 기념행사가 1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가 처음으로 연주돼 논란이 일고 있다. 

우익 성향의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서울 한 호텔에서 나루히토 일왕의 생일(2월 23일) 축하연이 열렸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등이 참석했으며 한국 정부를 대표해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산케이신문은 이날 행사에서 최초로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가 연주됐다고 전하면서 그간은 한국의 반일 감정을 감안해 연주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출범한 윤석열 정권이 대일 관계 개선을 지향하고 일본 정부도 왜곡된 양국 관계를 벗어날 호기라고 판단했다”고 기미가요가 연주된 배경을 분석했다.

일본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산케이에 “대사관이 (주재국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자국의 국가 연주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 속에서 이번에 한국 국가와 함께 ‘기미가요’를 틀기로 했다”고 말했다. 

메이지(明治·1868∼1912) 시대부터 국가로 사용됐던 기미가요는 전범기(욱일승천기)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꼽힌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폐지됐으나 1999년 제정된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일본 국가로 법제화됐다. 

일본 극우단체 회원들이 군복을 차려입고 전범들의 위패를 놓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때 기미가요를 자주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인들을 일본의 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하루에 1번 이상 일장기 게양 뒤 기미가요를 부르게 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월계수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릴 때도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다.

▲ <이미지 출처= MBC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 : 마스터-X’ 화면 캡처>

기미가요에는 ‘임의 치세는 천 대(代)에, 팔천 대에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가사가 나온다. 

기미가요를 비판하는 이들은 가사의 ‘임’이 ‘일왕’을 의미하며 일왕의 치세가 영원히 이어지길 기원한다는 점에서 군국주의 국가로서의 일본을 상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미가요 첫 연주에 대해 국민의힘 이언주 전 의원은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국민을 배려해 안 하던 걸 굳이 지금 하는 이유는 뭐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 전 의원은 “강제징용 문제 등 한일 간 현안이 일본 측 노력으로 진전된 게 있거나 수출규제를 일본이 풀었거나 해서 화해의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아니지 않나?”라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이 전 의원은 “이 상황을 우리 국민이 과연 이해할까? ‘과유불급’”이라며 “윤석열 정권은 문재인 정권의 문제를 극복하는 건 좋은데 그에 집착한 나머지 극단적 반대로 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일본 대사관의 반응에 대해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17일 “‘그동안 배려해 왔다’고 설명했다”며 “‘그동안 배려해 왔는데 이제 굳이 그렇게까지..’ 그런 뜻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탁 전 비서관은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상대국에서 외교 행사를 할 때 웬만하면 거주하는 국가나 국민을 자극하거나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 일본이 그동안은 배려해 왔는데 돌아가는 것을 보니까 이렇게까지(배려할 필요가 있나)”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탁 전 비서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총리와 국빈 만찬을 할 수 있을 텐데 기미가요에 손을 올릴 것인가가 새로운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간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 행사에서 상대국 국가가 연주될 때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 논란이 돼 왔다. 대통령실은 “상대국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의전상 결례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