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자의 붓으로, 약한 자의 눈으로 산 한 생>

선생은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내내 헐벗은 자, 배고픈 자, 무거운 짐을 진 자, 쓸쓸한 자, 그늘진 동네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고통이 있는 곳에 늘 선생이 있었다. 선생은 한 생을 힘없는 자의 붓이고 약한 자의 눈이고자 했다. 

집회 현장에서는 높은 데를 찾아 올라가 사진 찍는 게 미안하다고 했다. 함께 소리치고 내달려야 하는데 사진기라는 연장을 든 탓에 구경꾼 노릇만 한다는 거였다. 

그 거리에서, 또 광장에서 일순 마주치기라도 하면 집안 일에 찾아온 손님 대하듯 늘상 고맙다고 인사했고, 어쩌다 찾아 뵈면 기꺼워하면서 묵은 벗으로 맞이했다. 

언젠가 고등학생 시절 <난쏘공(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을 때 영상을 재생해주는 VTR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묻자 선생은 희미하게 웃었다. 
“70년대 초반인데 벌써 우리 집안에 그런 부자가 있었어요.” 
선생은 이래 저래 형편이 궁색하지 않았던 것을 내내 죄스러워했다. 부富라는 건 다 누군가에게 빼앗아 온 것이라면서 뼈를 갉아내기라도 하듯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곤 했다. 

조세희 선생은 한 개 거울이었다. 그늘진 곳에서는 빛을 지켜도 밝은 곳에서는 정작 숨어서 무엇 하나 섭섭해 하지 않아 했다. 인간 거울로 그는 세상을 기록했고 어디서나 스스로를 비춰보는 성찰하는 존재였다. 

▲ 서해성 작가

소싯적부터 먼 데 있을 때는 그리워했고, 더러 가깝게 차라도 나누는 날이면 그림자라도 배우고자 했다. 사양과 겸손은 선생의 숨결과도 같았다. 

문자로 다할 수 없는 온도가 선생에게는 있었다. 땅도 하늘도 얼어붙는 성탄일에 그가 떠났다. 거기서 당신의 벗이자 당신인 난장이와 만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