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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김영미 PD “미얀마에 관심 가져 주세요”[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김영미 <다큐 앤드 뉴스 코리아> 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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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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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21  17:51:05
수정 2021.07.21  18: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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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지 6개월이 되어간다. 쿠데타 초기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미얀마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제 점점 관심이 낮아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군부의 언론통제 미얀마에서 나오는 뉴스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쟁지역 전문 독립 PD로 잘 알려진 김영미 PD는 미얀마 소식을 알리기 위해 <다큐 앤드 뉴스 코리아>란 언론사를 설립했다.

어떻게 언론사를 설립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가 궁금해 지난 10일 <다큐 앤드 뉴스 코리아>의 김영미 대표 기자를 전화로 연결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영미 대표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김영미 <다큐 앤드 뉴스 코리아> 대표 기자 <사진=김영미 기자 제공>

“빗물 모여 한 양동이 되듯 10년간 민주주의 의식 엄청 높아져”

- 미얀마 상황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다큐 앤드 뉴스 코리아>라는 매체를 창간하셨잖아요. 그동안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독립 PD로 활동하셨는데 이젠 언론사 대표시잖아요. 어떻게 언론사 만드셨어요?

“4월부터 했어요. 원래 이 회사는 제가 방송사의 일을 프리랜서로 하다 보니까 필요해서 한 10년 전에 사업자 등록했던 거였는데 쓰진 않았어요. 그런데 4월 15일 제가 취재하고 있던 미얀마 몽유와라는 곳에서 ‘리틀 판다’로 불리는 웨이 모 나잉이라는 사람이 체포되었어요. 근데 판다가 움직이면 같이 다니면서 촬영하고 사진을 찍었던 두 포토그래퍼가 있었거든요. 그 친구들이 저한테 ‘만약에 한국 언론사에서 일한다면 죽이진 않을 거 같다. 그러니까 자기네들을 한국 언론사 소속이라고 얘기를 해 달라’라고 요청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실제 한국 언론사에서 일하는 거로 해 보면 어떻겠냐’라고 얘기하고 우리 회사 이름으로 기자증을 보내 주게 된 거예요. 그동안 양곤에 원래 있던 기자들이 있었거든요. 그 기자들과 건당으로 일을 하곤 했었는데 아예 우리 회사로 다 들어온 게 어떻겠냐라고 해서 저와 같이 일했던 기자들이 저희 회사에 와서 일을 하게 된 거예요.”

- 언론사 대표를 해보니 어때요?

“너무 바빠요. 진짜 금방금방 한 달이 지나가고 월급날 빨리 돌아오고 장비들도 왜 이렇게 빨리 고장 나고 장비도 카메라 노트북 등을 미얀마에서 사면 눈에 띌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거를 다른 방법으로 구입해요. 그렇게 한번 장비를 사려면 너무너무 힘들거든요. 돈도 한국보다 더 비싸요. 그리고 오토바이도 사야 되거든요. 우리는 차 타고 다니면서 취재하지만, 거기는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취재해야 빨리 도망갈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임감이 제일 힘든 거 같아요. 우리 직원들 다 안전하게 취재할 수 있게 제기 보장을 해 줘야 되는 거니까 그게 제일 힘든 거 같아요.”

- 미얀마에 물건 반입은 가능한가요?

“돈만 있으면 어둠의 경로로 가능하대요(웃음). 그래서 정말 필요한 거 이런 거는 준내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거거든요. 근데 사실 미얀마에서 이런 장비를 살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은데 대신 부탁을 하면 그분들이 알아서 물건은 조절해 갖고 오는데 대신 물건값이 비싼 거죠. 중간값이 붙어질 테니까요.”

- 12명의 미얀마 해직 기자가 활동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나 미얀마는 군부가 통신을 통제해서 연락하기 힘든 것으로 알거든요. 연락은 어떻게 하나요?

“미얀마에 쿠데타가 일어나고서 국내 인터넷 라인은 끊었고 VPN이란 다른 인터넷 우회 라인을 통해서 우리가 소통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현재 미얀마에서 볼 수 있는 TV 전화 이런 것들이 자유롭지도 않고 우리처럼 이렇게 선택의 여지가 많고 그렇지가 않아요. 그냥 VPN이라고 그걸 통해서 인터넷은 다 연결을 할 수 있어요. 사실 인터넷 통로를 열어 놓지 않으면 군부도 불편해서 못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정도의 라인 하나는 살려놓은 거라고 보여요.”

- PD님은 한국에 있어서 답답한 거도 있을 거 같아요.

“무지하게 답답하죠. 미얀마에 외신 취재가 전면금지 되고 또 내신도 지금 취재가 전면 금지된 상황이고 현재 미얀마에서 현지 취재가 된다고 하면 다 군부 편인 거예요. 그리고 CNN 한번 해 보겠다고 들어갔는데 너무나 많은 병사가 쫓아다녀서 정말 취재를 못 했다고 해요. 인터뷰하면 인터뷰 한 사람을 잡아가니까 누구를 인터뷰하겠어요. 그 뒤로부터 다른 언론사는 포기했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미얀마 취재를 한 7번 정도 갔었으니까 지금도 양곤에 가서 원래 하던 대로 당연히 취재하고 싶죠. 근데 입국 절차가 안 되는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이 원격으로 그들이 취재해 줘야 되죠. 제가 아이템이라든지 편집회의 같이 그 친구들이 취재를 하는 거죠. 이런 거 그전엔 저 혼자 카메라 가지고 뛰어다니면서 다 했던 일을 여러 사람 손발을 빌려야 되니까 굉장히 답답하기는 하죠. 근데 저희 지금 기자들이 보람을 느껴요.”

   
▲ 7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의 짜욱더다에서 학생들이 반 군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 현재 미얀마에서 기자는 물론 일반인도 카메라 못 가지고 다닌다던데 취재는 어떻게 하나요?

“저희 기자들이 양곤에서 취재하더라도 기자 신분으로 취재하지 않고 다른 직업으로 다 하고 있어요. 집도 다 옮기고요. 왜냐면 동네 사람들은 자기가 기자라는 거 아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사도 하고 그렇게 해요. 홈쇼핑 하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하고요. 홈쇼핑이 아니라 인터넷 SNS로 약간 티셔츠 같은 것도 파는 식으로 하면서 음지에서 많이 움직이죠. 물론 군부가 기자들은 다 색출해서 지금 70명 넘게 인세인 교도소에 잡혀 있고 그 친구들도 언제 잡혀갈지 모르죠.”

- 원래 PD님은 미얀마 문제에 관심이 있었어요?

“미얀마는 건국 이래 계속 군부 독재하던 나라였거든요. 독재도 여러 형태가 있는데 그 나라는 건국 이래 독재가 계속 진행되던 나라여서 제가 2000년대 그 시기에 되게 관심이 가서 취재를 갔던 곳이에요. 취재하러 가는 거리가 짧잖아요. 그래서 갔었던 거고요. 제가 처음 갔을 때는 ‘그럼 군인이 대통령 하지 누가 대통령 하냐’라고 저에게 말하기도 했어요. 그 이후에 샤프란 혁명을 취재하고 나서는 미얀마에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은 걸 보니까 무섭기도 하고 또 안 바뀔 거 같은 나라였거든요. 그래서 그 뒤로 좀 가기는 했는데 예전만큼 적극적으로 취재하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근데 샤프란 혁명이 일어난 지 불과 5년 만에 민주 정부가 이렇게 들어서는 걸 보고, 제가 굉장히 놀랐었요. 또 이 나라가 앞으로 민주주의 국가로 발돋움할 지 모르겠지만 기대가 됐던 나라였어요. 그래서 저는 더 안 와도 되는 줄 알았어요.”

- 그럼 예전 미얀마 상황과 지금을 비교하면 어때요?

“민주 정부가 들어 서기 전 미얀마는 엄청난 독재국가였죠. 취재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또 언론사에 대한 감시가 되게 많았어요. 당시 호주 출신 미얀마 언론사 편집장이 있었어요. 그 사람하고 왔다 갔다 하며 양곤에서 이야기하는데 말끝마다 ‘이 나라는 진짜 미친 나라고 정말 답이 안 나오는 나라’라고 저한테 투덜투덜했던 기억이 나요. 굉장히 취재하기가 힘들고 국민들조차도 ‘군인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 우리가 뭘 어쩌겠어요’란 얘기를 많이 해서 이 나라 국민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그런 쪽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거 같았어요. 보통 우리가 생각했을 땐 아웅산 수치 여사가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미얀마는 여전히 가난하고 인프라가 딸리고 여전히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로 온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빗물이 모여 한 양동이가 되듯이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10년 동안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의식이 엄청 높아진 모양이에요.

그게 느껴지는 게 샤프란 혁명 때는 시위는 스님들이나 양곤 대학생 등 엘리트들만 했어요. 그때 제가 다른 사람들한테 당신들은 시위 안 하냐고 했더니 그건 높은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라고 그렇게 얘기했었거든요. 근데 이번에 쿠데타가 일어나고 양곤 만달레이 같은 대도시는 좀 조용할 수 있어요. 근데 지방은 달라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저항 시위에 참여하고 있고 재봉틀 하는 노동자들은 그 앞에서 이렇게 피켓을 들고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고 농민들은 논바닥 현장에 모여서 시위하는 사진들이 계속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플라잉 사령관이 전 국민을 다 죽이기 전에는 저항 시위를 꺾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기사 바이라인에 기자 이름이 안 나간다고 하던데 기자들은 뭐라고 하나요?

“그게 저희 회사에서 제일 슬픈 일이에요. 우리는 서로 자기들끼리도 잘 몰라요. 그리고 우리끼리는 다 이름을 닉네임으로 해요. 때문에 저는 그 친구들 실명도 다 몰라요. 워낙 어려운 데다가 전 외우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바이라인이 그렇게 나와요. 그럼 되게 슬퍼하는 거예요. 왜냐면 이들도 나름 쿠데타 나기 전에는 미얀마 유력지에서 일하던 사람이거든요. 물론 실명이 나가게 되면 자기들 신분이 탄로 나니까 할 수가 없다는 걸 다 이해해요. 근데 본인 바이라인으로 쓰지 못하는 것을 너무너무 슬퍼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좋은 날이 오면 우리가 기획 기사를 제공했던 매체에 내가 다 쫓아다니면서 실명으로 바꿔 줄 테니 그때까지만 참으라고 얘기해요.”

- 기자가 잡히는 경우도 있었나요?

“있었죠. 지금 촬영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야외에서 할 때는 핸드폰 등으로 촬영하거든요. 근데 그거 촬영하다가 군인들이 들이닥쳐서 한번 잡혀간 적이 있는데 하루 만에 풀려났어요. 기자인 척 안 하고 우리 잡혀갈 때를 대비한 매뉴얼을 계속 연습해요. 군인들이 어떤 질문을 할 거다,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 거니라며 계속 연습을 해요. 그리고 밖에서 촬영할 때는 망보는 사람들까지 고용해서 쓰거든요. 기자들 안전 때문에요. 근데 그날은 망보는 사람과 우리 기자들과 서로 사인이 안 맞았어요. 그래서 쉽게 그게 뚫려버린 거죠. 군인이 오는 걸 보고 우리 기자들이 빨리 도망을 갔어야 되는데 도망갈 타이밍을 놓친 거예요. 그러나 그 친구가 시키는 대로 도망가면서 핸드폰을 버렸어요.”

“군부, 방역 방치…코로나 더 퍼지길 바란다고 미얀마 시민들 생각”

- 고문 같은 건 안 받는다고 하나요?

“잡혀갈 때 되게 많이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때리는지. 우리가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고 이런 것이 되게 긴 시간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잡혀갈 때 너무 많이 맞았어요. 그래서 우리 변호사가 갔을 때는 때리지 말아 달라고 그랬더니 금품을 요구했어요. 안 때릴 테니 돈 달라고 그랬어요.”

   
▲ 지난 6월3일 미얀마 양곤에서 열린 플래시몹에 참여한 쿠데타 반대 시위대가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문제는 재정일 텐데 재정적인 부분은 어떻게 하세요?

“지금까진 제가 가지고 있었던 돈과 책 인세, 강의 이런 걸 총동원했어요. 우리 언론사에도 기사나 사진을 게재하는데 그 원고료로 우리 기자들 월급을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제가 벌 수 있는 최대한을 벌어서 충당하고 있어요. 근데 제 주변에 저를 아는 지인들도 많이 도와줬어요.”

- 그러나 그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닌가요?

“근데 국민들한테 후원금을 받게 되면 국민의 알 권리는 당연한 권린데 거기에 돈까지 내라 그러면 좀 억울하실 것 같은 거죠. 그래서 후원금 받는 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되는 상황이죠. 미얀마에서 저랑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기자들이 많아졌고 또 수배당한 기자들이 저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러면 도피자금을 제가 대야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규모가 점점 커지니까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미얀마 직원들이 후원금을 받는 문제를 계속 얘기하거든요. 그래서 조만간 후원계좌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어요.”

- 미얀마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미얀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관심이에요. 지금 미얀마 뉴스가 점점 안 나오잖아요. 왜 그러냐 하면 기자들이 다 잡아가서예요. 나머진 다 수배자고요. 또 그거 빼고 나면 땡전 뉴스 같은 미얀마 군부 편에 서 있는 기자들이 만든 뉴스에요. 그러니까 요즘 뉴스가 나올 확률이 굉장히 적죠. 저희 회사 기자들만이 유일하게 취재 활동을 할 수 있는 정도인데 우리가 몇 명 안 되잖아요. 그러니 기사가 나올 수 있는 횟수가 줄어드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이 미얀마가 이제 조용해졌나 보다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아니에요.

지금 미얀마가 우기인데 우기에는 항상 말라리아가 창궐했었어요. 그래서 병원이라든지 의료진들이 굉장히 다급한 상황인데 지금 시민 불복종운동으로 의사, 간호사들이 다 파업 중이거든요. 그러니까 말라리아도 엄청나고 무엇보다 코로나가 대폭발이에요. 지금 미얀마는 전 국민이 백신을 못 받는 나라예요. 미얀마 군부가 백신을 수입해서 국민들에게 코로나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요. 그러니까 다른 국제 사회에서 그러면 안 된다며 백신 도네이션을 한다고 사서 보내면 양곤 공항에 그대로 있어요. 이것도 냉장시설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나 비 맞고 있대요. 그러니까 코로나에서 완전히 손 놓은 나라죠. 오히려 코로나가 더 퍼지길 바랄지도 모른다고 미얀마 사람들은 얘기해요.”

- 왜요?

“총으로 죽이지 않아도 코로나로 죽으면 자기들이 처리 안 해도 되고 코로나가 대폭발하면 시위도 안 할 거 아니냐 그래서 코로나가 더 많이 퍼지도록 군부는 아마 지금 바라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 <다큐 앤드 뉴스 코리아> 인터넷으로 볼 수가 있나요?

“저희는 한국에 플랫폼이나 매체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다른 매체에 쉽게 말해서 외주 형태로 들어가서 기사를 올리거나 아니면 영상을 제공하거나 그런 식으로 하거든요. 그래서 최근에 한 작업은 주간경향의 기획 기사를 했고요. 그 전엔 한겨레신문에서도 했고 또 KBS <시사기획 창>에도 했고 <PD수첩>에도 했어요. 그런 식으로 그 파트를 맡아서 하는 거예요. 그리고 저희가 지금 다큐멘터리도 기획하고 촬영을 하는 중이거든요. 다큐멘터리로 완성되는 데는 올겨울 정도까지 진행이 돼야 될 것 같아요. 저희 자체 플랫폼이 없으니까 한국의 언론사와 런칭해서 한국 언론사의 플랫폼에 게재하는 거죠.”

- 앞으로 계획은 뭐예요?

“우리 미얀마 기자들을 조금 더 고용하고 수배당한 기자들까지 제가 월급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수배를 당했더라도 어딘가에서 기사만 보내면 되니까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또 조금 더 고용해서 그분들이 취재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기자를 확충할 예정이에요. 사실 처음에는 한국에 사무실도 없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사무실도 만들었고 또 우리 회사 직원들도 생겼거든요. 제가 다큐멘터리를 정부지원사업에 넣은 적이 있는데 그게 돼서 이제 스크립터와 조연출 인건비가 나온 거예요. 그래서 갑자기 회사가 이렇게 굴러가고 있는 중이에요. 계획을 안 해도 제가 생각한 거보다 더 많이 뭐가 생기고 그러더라고요.”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독자들한테 제가 당부 드리고 싶은 건 미얀마가 조용하다고 조용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언론에 더 보도를 요구하시면 돼요. 그게 국민의 알 권리예요. 그래서 독자분들도 <GO발뉴스>에 그런 거를 요구를 계속하셔서 <GO발뉴스>가 더 많은 뉴스를 만들어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해야죠. 그 시작을 시민들이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국민들은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생각해요. 그 마음 그대로 우리 미얀마에 있는 시민들과도 같은 연대를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또 우리나라 언론사 기자들도 미얀마 기자들과 연대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영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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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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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5 19:40:47

    후원이 조심스럽다 하셨는데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하고 싶네요.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반드시 승리하길 기도합니다.신고 | 삭제

    • 너무나 먼 민주주의 2021-07-22 02:08:19

      말이 곧 법인 군사독재나
      민주화 후 소수 법률가들의 뇌피셜이 곧 법인 사법독재나...
      같은 독재 카르텔 통치하에 있는건 마찬가지란 걸 이번에 또 한번 깨달았는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진짜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미얀마 국민들이
      알 권리를 제공해주시길 바랍니다..신고 | 삭제

      • ★ 강남 룸싸롱 발랑이 쥴리 2021-07-21 20: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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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혈진압 굿 이이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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