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죽인 아버지에게 ‘사형이 선고되도록 도와달라’는 딸의 청원에 26일 현재 13만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으로 응답했다.

세 자매의 엄마 이모(47)씨는 지난 22일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이날 오전 7시16분께 목격자의 신고로 구조대원이 현장에 즉각 출동했지만 이 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경찰은 사건 발생 현장 인근 CCTV를 분석해 이 씨가 이날 오전 4시45분께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했다. 이 씨를 죽인 사람은 그의 전 남편 김모(49)씨다. 김 씨는 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법원에 출석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의 변호인은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네’라고 답했고, 김 씨가 범행을 “많이 뉘우치고 있다”고 했다.

▲ 강서 주차장 전 부인 살인사건 피의자 김 모(49)씨가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하지만 김 씨의 딸이자 숨진 이 씨의 세 딸들은 생각이 다르다. CCTV 속 범인을 보고 ‘이거 우리 아버지입니다’라고 지목한 둘째딸은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설마 가발까지 준비를 해서 범행을 저질렀을 줄이야.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숨진 이 씨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수시로 폭력을 당해왔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든가 말대꾸를 했다든가. 저희에게 지속적으로 해 왔던 말이 있어요. 개도 맞으면 말을 듣는다. 또 짐승도 맞으면 말을 듣는다. 너희는 맞아도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짐승보다 못한 XX다. 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말을 해 왔었어요.”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중에서

김 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이혼 과정에서 쌓인 감정 문제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딸은 “서로 감정이 쌓여서 이혼을 하게 된 건 아니”라며 “아빠의 일방적인 폭행 때문에 엄마가 당하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범행 이전에도 김 씨는 일가족을 지속적으로 협박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4년 전 2015년 2월 달에 갑자기 아빠가 저희 가족, 이모들에게 전화를 해서 좋은 구경을 시켜줄 테니, 내가 좋은 거 보여줄 테니 집으로 모여라. 가족들을 집으로 다 불렀어요. 아빠가 엄마를 데리고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엄마가 이미 폭행을 당했던 상태였어요. 눈도 못 뜰 정도로 피멍투성이었어요. 또 얼굴뿐만이 아니고 그냥 모든 곳이, 흰 색깔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바지가 검게 물들 정도로.”

현재 김 씨는 구속된 상태다. 그러나 딸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다.

“지금 아빠가 구속된 상태잖아요. 그런데도 저는 지금 좀 많이 두려워요. 집 밖에 나갈 때 문을 열 때도 많이 두려워요. 문 앞에 누가 서 있을까 봐. 그리고 밖에 돌아다닐 때도 두렵고 지나가는 사람 얼굴을 먼저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이날 김현정 앵커는 피해자 가족의 인터뷰를 전하면서 “우리가 지금 이 사건에 더욱 주목하는 이유는 끔찍한 살인 사건의 발단이 가정 폭력이라는 사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앵커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아니냐, 자기들이 알아서 할 집안일 아니냐, 남의 가정사에 우리가 왜?”라는 사회 인식을 지적하고는 “가정폭력 역시 엄연한, 어쩌면 더 심각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사회가 인식해야 한다. 경찰도 (이 부분을) 인식해야 하는데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가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번 살인사건은 가정폭력의 비극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상대방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제대로 할 수 없고, 신고를 해도 가정폭력사범의 1%도 안 되는 사람들만 구속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최 대변인은 가정폭력의 근본 원인을 “우리사회가 가정폭력은 단순히 ‘집안싸움’으로만 치부하며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은 것에 있다”고 짚고는, “해마다 가정폭력 건수가 증가하고, 피해자들의 죽음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더 이상 국가가 이를 방치하고 안이하게 대처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가정폭력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체계적인 신변 보호 매뉴얼 등 실효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아울러 “국회 또한 여전히 입법부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가정폭력방지법을 조속히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