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명물이 된 마릴린 먼로 동상이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팜스프링스에 서 있는 모습. 2014.3.1 <사진제공=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인터넷판/뉴시스>

마릴린 먼로 동상이 소양강에 들어섰다고 한다. 먼로는 1954년 2월 인제, 대구, 동두천, 서울, 포항 등지에서 공연을 했다. 정확하게는 그곳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쇼우’를 했다. 한국전쟁은 끝났지만 귀향하지 못한 미군 병사들은 자기 나라에서 날아온 금발 처녀를 광적으로 반겼다. 먼로는 실은 갓 혼인한 새색시였다. 그 공연을 본 한국인은 고작해야 통역병들과 슈샤이니보이와 하우스보이들뿐이었다. 한국인들이 먼로의 공연을 널리 기억하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왔다기보다 한국에 있는 미국 땅에서 공연했다.

소양강 먼로 동상은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환풍구 바람 탓에 하얀 원피스를 붙잡고 있는 결코 쩔쩔매는 것만으로는 보이질 않는 묘한 대목(이를 흔히 명장면이라고들 해왔다)을 청동으로 빚은 것이다. 이는 전후 미국의 풍요와 일상공간에서 노출을 도회적으로 포착한 장면이다. 혼인 후 7년이 되면 자연스레 외도를 하고 싶어한다는 ‘7년 만의 갈망 The Seven Year Itch’을 환풍구 바람이 치마를 들추는 행위로 압축하고 있는 셈이다. 치마를 입은 사람도, 그걸 훔쳐보고 싶은 사람도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노출’과 ‘노출하고 싶은’을 한 순간으로 교차시킨 상업적 앵글이다. 그저 노출했다면 이는 결코 ‘명장면’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환풍구의 핑계가 만들어낸 ‘무책임’이 창조해낸 순간이었다. 정작 1955년에 뉴욕에서 탄생한 그 먼로의 모습이 왜 소양강에 들어서게 된 것일까. 

▲ <사진출처=우리은행 ‘우리미술대회’ 홈페이지>

먼로 동상이 문제가 된 날, 한 어린이가 그린 통일나무(제22회 우리미술대회 유치·초등부 대상 수상작 ‘쑥쑥 통일나무가 자란다’. 문화체육관광부 후원)를 매카시즘으로 몰아세우는 공세가 있었다. 붉은 색만 보아도 친북으로 보고 싶은 뇌구조에는 매카시즘시대에 대한 갈망Itch이 깃들어 있다. 빨갱이 사냥 심리에는 실은 민주나 토론, 합리적 의견 개진 등을 부인하고자 하는 의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진짜 선망하는 건 현실을 복잡한 절차 없이 틀어쥐는 지배권력인 까닭이다. 오래도록 빨갱이 언설을 통해 대중을 공포로 다스리고 권력을 유지시켜 온 시대에 대한 한없는 동경이 마침내 어린이 그림까지를 주저없이 매카시즘의 단두대에 올리는 비극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매카시즘은 미국사회와 그 주변부가 생성시켜낸 정치 히스테리다. 그 핵심 요체는 의심이다. 국가나 지배권력이 의심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의심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대중을 통제, 장악하는 분열증적 통치 수단이다. 광복 뒤 친일파들은 이를 빠르게 수입해서 친일 청산을 요구하는 세력을 우선 빨갱이로 몰고 자신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같은 대상으로 삼아 투옥, 살해했다. 미국처럼 추방은 없었다. 원조보다 더 저급하고 잔인한 행태였다. 이들은 하물며 독립운동마저 훔쳐갔다. 

자연은 다양한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이 만든 이념이자 제도인 민주이론이나 체제는 자연에 비하면 한낱 초라한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현실이 한계가 있다고 해서 한 가지 색만 주장한다면 세상은 결국 무채색이 되고 만다. 단색 자연을 생각해보라. 색깔론이 필요하다면 이는 색의 확장에 기여할 때만 가치가 있다. 어린이가 그린 통일 염원을 짓밟는 언행은 그만 두어야 할 뿐 아니라 꼭 사과가 필요하다. 그 어린이에게 매카시즘의 무게를 들씌운 게 한 치라도 합당한가. 설령 조금 더 적극적인 표현을 했다손 치더라도 이는 통일이나 남북대화는커녕 갈등과 전쟁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책임 있는 어른 세대로서 너그럽게 대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덧붙여 그 어린이가 표현한 대로 비록 지금 갈등 중이라도 통일나무는 자라야 한다. 

소양강 마를린 먼로 동상과 통일나무에 퍼부은 언설의 기저에는 모종의 선망이 함께 깃들어 있다. 동상을 칠하고 있는 건 전쟁 기억 상품화뿐 아니라 미국과 미군과 미국인에 대한 강자 선망이, 통일나무에는 매카시즘 통치시대에 대한 폭력 선망이 흐르고 있다. 동상은 문화로 치장된 선망폭력이고 통일나무는 어린이의 창작행위까지 파괴해도 좋다는 매카시즘 선망 폭력이다. 이 두 갈래 선망 폭력이 광복 뒤 분단한국사회를 지배해왔다. 이는 촛불시민혁명 동안 한국인뿐 아니라 미국인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태극기와 성조기의 합동 행진으로 거듭해서 나타났다. 

먼로의 성장기는 버거웠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떠나버렸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있었다. 소녀 먼로는 고아원과 탁아가정을 열 번쯤 떠돌아다녔다. 고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여섯 소녀는 처음 혼인을 했다. 성장한 뒤에도 그는 집요한 관음의 시선과 싸워야 했다. 그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는 매카시즘 시대와 일치했다. 여성으로서 그의 자의식은 그 시대 남성주의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았다. 어쨌든 그에게는 보통 사람 같은 좀 더 긴 성장기가 필요했다. 마릴린 먼로도 크레용(크레파스는 일본이 개발)을 더 오래 쥐고 있을 수 있어야 했다. 누가 노마 진(먼로)에게서 크레용을 빼앗아갔는가. 그것은 가난이었다. 오늘 누가 한국 어린이 손에서 크레파스를 빼앗아가는가. 그것은 늙은 매카시즘의 유혹이다. 이제 그만 선망 폭력을 거둘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