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군 사령부는 22일 오전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최근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의 당시 총격 상황을 담은 CCTV를 공개했다.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귀순 북한 병사가 지프 차량에서 내려 남측으로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유엔군사령부/뉴시스>

스물다섯 살 한 청년이 짚차를 몰고 남쪽으로 내달렸다. 그는 ’72시간다리’를 건넜다. 거기서 분계선까지 오는 3분 가까운 시간은 어쩌면 72시간보다 길었다. 72시간다리는 북한군이 8.18사건(1976년) 이후 72시간 만에 만든 다리라는 뜻이다. 그 뒤 유명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폐쇄되었다. 올해는 분단 72년이다. 

UN사가 공개한 영상을 보고 있자니 그가 달려온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곧이어 전개된 추격자가 쏘는 빗발치는 총격 장면은 긴박했고 영화보다 냉정했다. 그의 탈출 행동은 남북의 오래된 긴장관계를 유혈로 압축하고 있었다. 쓰러진 그를 구출한 건 공동경비구역(JSA) 장병들이었다. 그 북한군 병사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이후 갖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이 말들은 어디에 가닿고자 하는 것일까. 

우선 분명한 건, JSA 대대장은 현장에 있었다. 이 사실에 이의를 달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휘자는 상황을 파악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사태를 제압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 게 옳다. 고작 10미터 후방이다. 이는 북한군 AK-47 소총 유효사거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가령 그게 9미터로 줄어들었다 한들 어떻단 말인가. UN사의 설명은 한국군의 조치가 적절했다면서 도리어 담담했다. 호들갑은 아무에게도 이롭지 않다. 남은 영웅담은 사랑방 몫이다. 그건 영웅담대로 그냥 두자. 한낱 어떤 ‘영웅’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사 객담의 즐거움을 위하여. 

김종대가 말한 우려는 환자인권 원론, 또 그와 연결된 기생충 매카시즘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국의國醫’ 이국종을 부러 나무랄 이유는 달리 없었을 줄 안다. 애초 JSA에서 일어난 상황 발생과 처리에 대해서 누구보다 정확하게 평가한 적이 있던 그다. 며칠 사이에 갑자기 이 국회의원의 판단이 흐려지거나 달라졌을 리는 없지 않겠는가. 더구나 그는 군사문제에 대해서는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다. 다만 기생충 공개 여부는 이국종의 설명을 믿어도 좋다고 본다. 한국인들이 설령 북한군 기생충을 매개로 한 매카시즘이 동원된다고 해도 거기에 함몰될 수준은 아닌 터다. 

▲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이 15일 오후 경기 수원 권역외상센터에서 북한군 병사의 2차 수술을 집도한 뒤 브리핑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국종이 기자설명회에서 한 말들이 수술 주치의로서 할 수 있는 말을 넘어선 게 아닌가 하는 의견들 또한 있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그의 말을 깊이 새겨 듣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취지는 중증외상센터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이었다. ‘빅5 대형병원’ ‘SKY’였다면 이런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의 표현은 그가 처한 버거운 현실을 적시한 것이다. 아울러 이윤이 전혀 남지 않는 이 의료 영역이 국가 내지는 사회적 지원과 관심 없이는 운영이 실로 불가능에 가까운 터다. 정작 이국종은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이는 진짜 국가의사(國醫)로서 해야 할 말들이 아니었을까. 이게 어찌 혼자만의 환청이었겠는가. 

JSA, 국회의원, 중증외상센터 의사는 자신들의 위치에서 필요한 말들을 했다. 조금씩 뜻과 해석이 엇갈릴 수 있는 대목들이 있었다는 걸 어찌 모르겠는가. 그 사이에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면서 여러 군데 총상을 입었던 스물다섯 살 O형 형액형의 북한군 병사는 생사를 헤매던 끝에 가까스로 깨어났다. 이제 그의 말을 들을 차례다. 기자회견이 열린다면 ’27cm’ 같은 것에 대한 질문은 굳이 하질 않는 성숙된 분위기는 어떨까. 10m 후방과 27cm가 이 사태의 본질은 아니질 않은가. 

이국종은 북한군 병사 몸 속에는 국민이 헌혈한 피 1만2천cc가 돌고 있다고 했다. 생동하는 구체어인 그의 말은 시보다 뜨겁다. 남한 청년들의 피가 북한 청년을 살리고 있는 이 명장면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무엇을 모색해야 하는지 상징하고 있다. 적어도 그 병사의 몸 속에서는 남과 북의 피가 한데 섞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이데올로기 따위는 감히 틈입할 수 없는 원초적 거룩함이 있다. 짧은 언어를 물리고 거기에 1cc를 더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