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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47주기를 앞두고.. ‘전태일을 아십니까’전태일, 세상 향해 외친 마지막 절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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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리포터 김용택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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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1  16:10:49
수정 2017.11.11  16: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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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우(親友)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18] 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외치면서 죽어간 사람 그것도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뜨겁게 산화해 간 노동자 전태일 열사가 마지막 남긴 유서다. 요즈음 사람들, 아니 오늘을 사는 노동자들에게 ‘전태일을 아는가?’라고 물어 보면 아마 ‘전태일이 누군데?’ 하며 반문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평화시장에서 16살부터 시다로 시작해서 재단사가 되기까지 6년여를 일하다가 1970년 11월 13일 스물 둘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살라 죽은 사람.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치면서 세상을 향해 한 송이 불꽃이 되어 죽어간 사람이 전태일 열사다.

   

옛사람들은 말한다. ‘이 설음 저 설음 다 겪어보아도 굶는 설음만한 것이 없다’고.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이런 소리 하면 ‘은행에 가서 찾으면 되지?’라거나 아니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면 되지 않나?’ 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196~70년대는 정말 배고픈 시절이었다. 허기진 창자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먹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당시 한계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바램이요, 꿈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약점을 이용한 자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자선을 베풀지 않는다.

“한 달 월급은 1천5백 원이었다. 하루에 하숙비가 120원인데 일당 오십 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다니기로 결심을 하고, 모자라는 돈은 아침 일찍 여관에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고 밤에는 껌과 휴지를 팔아서 보충해야 했다. 뼈가 휘는 고된 나날이었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희망과 서울의 지붕 아래서 이 불효자식의 고집 때문에 고생하실 어머니 생각과 배가 고파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내 동생을 생각할 땐 나의 피곤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짜장면 한 그릇 값이 오십 원이었던 시절, 전태일 같은 노동자들은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짐승처럼 일해 받는 품삯이 달랑 오십 원이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예 같은 아니 짐승 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일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당시의 노동자들의 삶의 전부였다. 거짓말 같은 이런 현실 앞에 그것도 주인 맘에 들지 않으면 당장 그만 두어야 했다. 한 달에 두 번, 첫째와 셋째 일요일만 놀고 나머지는 점심시간에 30분을 제외하고는 햇볕도 안 드는 다락방에서 꼼짝없이 일에 매달려야 했다.

   

‘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로 시작하는 그의 탄원서는 탄원서라기보다 오히려 절규였다. 노동운동을 하면 ‘빨갱이’ 취급받던 시절 그는 어렵게 재단사가 되었지만 열 서너 살 어린 동생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짐승처럼 사는 모습을 보다 못해 박정희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쓰기도 하고 관계기관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모든 게 허사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갈 차비로 굶주리는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한 시 간도 넘는 집을 걸어 다니기도 했던 사람.. 전태일.

그가 떠나고 난후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내 탓이요’를 외치며 노동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며 피맺힌 절규를 한 지 반세기기 다가오고 있지만 현실은 어떤가? 오늘날 노동자들은 전태일열사가 바라던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약자도 사람대접 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은 우연히 오지 않는다. 1970년 11월 25일 조선호텔 노동자 이상찬의 분신 기도, 1971년 9월 한국회관(음식점) 노동자 김차호의 분신 기도. 아직도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감옥에 있다.

“노조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도 정책적으로 노력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새 정부 중요한 국정목표 중 하나가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조 조직률을 높여가겠다”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후 반세기. 이제 노동자도 사람 대접받는 세상, 약자를 배려하는 세상이 열릴까?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1970년 당시보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세상을 향해 외친 마지막 절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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