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시민혁명의 불꽃으로 점화된 지 1년이다. 화석연료 이전에 현실 생활에서 어둠을 밀어내던 촛불은 문명사회에서 거의 비유로 차용되어 왔다. 촛불은 고난 속에도 꺼지지 않는 양심과 고통에 동참하는 연대의 표시였다. 엠네스티 로고는 철조망 속 촛불이다. 잉글랜드 성공회 솔즈베리 주교좌 성당에 서 있는 철조망 촛불은 1980년에 설치한 이래 아직 꺼진 적이 없다. 세상 곳곳에 여전히 양심수들이 갇혀 있는 까닭이다.

불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실제로서 상상이다. 오직 불이 그러하다. 불은 밝을 뿐 아니라 아름답다. 그래서 타는 그 불의 이름이 불꽃이다. 불꽃은 불의 행위이자 미학이다. 불은 원시의 타는 갈증으로 문명을 열어젖히는 힘을 지녔고, 불이 품고 있는 열기는 세상을 녹이고 또 탄생시킨다.

▲ 지난해 12월 3일 제6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그 불꽃이 사람의 가슴에서 점화된 게 촛불시민혁명이다. 불의 비유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동력으로 치환한 게 언 겨울 권력을 뚫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한국 시민이다. 그러므로 촛불시위는 그 자체가 고난에 맞선 거대한 시였고, 그 행위는 상상력이 현실에서 발화하는 일이었다. 천만 개의 촛불이란 꺼질 수 없는 불패의 불꽃이자 잔치였다. 그 촛불시민혁명의 과정은 불의 광장을 창조하는 역사였다. 그리하여 23차에 걸쳐 이어진 광장 행동은 민주, 정의, 양심이 지상에서 가장 밝게 타오른 어둠 속 광명의 나날들이었다.

그 촛불의 권력은 주권자의 권력을 뜻한다. 촛불의 외침은 이름 없는 다수 대중이 광장에서 이름을 얻는 일이었고, 빼앗긴 민주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의지에 찬 싸움이었다. 폭압 권력 9년 동안 힘겨울 때마다 광장을 밝혀 온 촛불은 처음부터 패배가 있을 수 없었다. 어둠을 물리치려는 안간힘에 실패나 패배가 있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는 3.1혁명(운동) 이래 4월혁명, 6월시민항쟁과 함께 가장 광범위한 대중 참여 민주주의였다. 3.1혁명을 거치면서 한국인은 백성에서 국민, 시민으로 태어났다. 그 저류를 흐르는 것은 사상 처음 팔도에서 민중이 들고 일어난 동학혁명이다. 촛불시민혁명은 이를 재창조해낸 위대하고 숭고한 역사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민주정부의 본질은 촛불혁명정부일 수밖에 없다.

촛불혁명정부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높은 데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 정부는 자신의 운명을 촛불이 모여서 빚어낸 용광로로 여기고 쇠를 끓여내는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적폐라고 부르는 구악과 벌이는 투쟁의 성패 여부는 강도와 속도에 달려 있다. 개혁의 움직임이 더딜 때 어제가 오늘을 대체할 위험성은 얼마든지 있다. 무엇보다 대중이 그토록 꿈꿔 온 미래가 바로 오늘이라는 점을 명념해야 한다. 이는 정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시민 촛불은 동참을 통해 이 개혁 열차를 고도의 열정으로 추동해내야만 한다.

▲ 지난 2월 25일 '박근혜 4년, 이제는 끝내자! 2.25 전국집중 17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오늘은 촛불이 광장으로 나온 1년을 주권자, 곧 혁명 주체가 스스로 축하하는 날이다. 탄핵을 통해 시민혁명을 달성해낸 그 촛불이 두 갈래로 나뉘어서 날을 기린다고 한다. 촛불시민혁명은 서로 다른 숱한 의제를 품고 여기에 이르렀다. 그런 터라 몇 갈래로 나뉜다고 해서 한탄할 일만은 아니다. 다만 촛불의 권력이 권력화한 촛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촛불의 사유화로 흐를 수 있는 터다. 설령 뜻이 조금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 또한 힘의 촛불이 아니라 촛불의 힘이 깨우쳐준 능력으로 재창조해내라는 게 촛불 정신 안에 깃들어 있다고 확신한다. 어쨌든 이 하루는 불의 광장을 축하하자.

오늘밤 촛불이 옮겨가야 하는 곳은 더 어두운 곳, 더 볕이 들지 않는 음지다. 전쟁반대, 비정규직, 청년실업, 양극화의 피해계층, 출산파업을 하고 있는 여성, 양심수, 이주노동자 같은 게 당장의 의제들이다. 나아가 흠결없는 온전한 평화시위였던 촛불의 행동과 가치를 전파하고 나누는 일도 촛불혁명의 책무 중 하나다. 그러므로 아직 촛불을 끌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