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성들을 일터로 내몰았다. 미국 여성들이 두루 공장에서 일하게 된 건 전쟁 때문이었다. 팔다리 성한 남자들 대부분은 전장터로 끌려나갔다. 영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은 공장에서 일상용품은 물론 총과 대포와 비행기까지를 만들어냈다. 원자폭탄을 조립한 것도 여성들이었다.

그날은 2월23일이었다. 그러므로 3월8일이었다.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 사이에는 13일 차이가 있었다. 1917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그 2월 마지막 목요일에 여성들은 거리로 나갔다. 로마노프 왕가의 짜르 니꼴라이 2세는 전선과 궁성을 오고가면서 지친 전쟁을 지휘하고 있었다.

뻬트로그라드 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발걸음을 지휘하고 있는 건 빵이었다. 또 내 남편과 아들을 전장에서 돌려달라는 전쟁반대 구호였다.
빵과 평화 Хлеба и Мира! 아니, 빵! 평화!, ‘그리고’는 없었다.
그네들은 거리낌없이 두마(의회) 건물로 다가가면서 외쳤다.
-빵을 달라!
-내 아들을 돌려달라!

▲ 빵을 사기 위하여. 뻬트로그라드. 1917

빵을 사기 위해 아침부터 정오까지 길게 늘어서야 했던 행렬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일어서 권력을 향해 내달으면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들은 눈빛 날카로운 레프 트로츠키보다 빨랐고, 본명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가명 니꼴라이 레닌보다 먼저 생동하는 역사의 선두에 맨발로 서 있었다. 대중을 움직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지하신문들조차도 3월8일이 품고 있는 뜻을 미처 헤아리지는 못했다. 2월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경찰과 기병대가 투입되자 대중은 물러서기는커녕 9만 명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지지하면서 동조파업을 벌였다. 이는 뻬트라그라드 전체 노동자와 숫자가 거의 맞먹었다. 니꼴라이 2세는 아직 전선에 있었다.

▲ 두마 의장 미하일 로쟌코 Mikhail Rodzianko가 짜르에게 보낸 첫 번째 전보. 수신시간 2월26일 22시40분

2월26일(3월11일) 가장 넓은 넵스키대로Nevsky Prospekt에서 경찰이 총을 쏘았고 사람들은 쓰러졌다. 피묻은 군중 사이에서 누군가 일어서지 않았다면 2월은 거기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짜르의 군대 앞에 다가가서 아직 식지 않은 총을 내려놓으라고 한 것도 여성들이었다. 빵을 달라고 외치던 사람들에게 총을 쏘았던 12년 전의 악몽(‘피의 일요일’, 1905년 1월22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날이었다. 애인들, 아내들, 그리고 어머니들은 말했다.
-아들아, 무기를 버리고 함께 하자!
여인들은 긴 꼬챙이칼을 착검한 총을 붙잡고 애원했다. 꾸짖고, 또 부탁했다.
-너희들이 왜 짜르를 지키느냐. 우리를 지켜다오.

언제나 어머니의 요청은 혁명구호보다 강하다. 가장 먼저 볼린 연대 Волынского полка가 비무장 시민 사살을 명령하는 지휘관을 제거한 뒤 집단 탈영을 했다. 부대의 모토 ‘믿음(신), 왕과 조국을 위하여 За Веру, Царя и Отечество’는 그 순간 ‘대중을 위하여’로 바뀌고 있었다. 해군본부 건물로 몰려들어가 있던 수비대들도 최고 지휘관의 통제를 뿌리치고 흩어졌다가 새로운 군대로 조직되고 있었다.  

마침내 27일, 그날은 폭설이 내렸다. 그러니까 3월12일 밤 짜르 수비군 15만 명이 탈영을 감행했다. 한 병사가 어둠 속에서 외쳤다.
-나는 탈영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 품으로 돌아갈 뿐이다.
이제 짜르를 지켜줄 군대는 없었다. 눈 덮인 뻬트라그라드는 텅 비어 있었다. 대신에 어머니와 아내의 군대는 꽉 차 있었다.
짜르는 물러났다. 3월3일(3월16일)이었다. 장구한 러시아 농노제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 구경거리로 전시된 짜르 니콜라이 2세의 자동차 썰매.

훗날, 언젠가, 어디에선가, 트로츠키는 말했다. 짜르에게 빵을 달라고 하는 건 숫염소에게 젖을 달라는 것과 같다고. 그는 한 가지를 몰랐다. 숫염소에게 젖을 얻고자 할 때는 실은 염소 종자를 바꾸고자 한다는 것을. 그 시작은 여성들이었다. 1백년 전 오늘 2월혁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