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상호 기자 트위터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과 전국 주요 도시, 그리고 세계 여러 곳의 교민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그 직을 박탈당했다. 남녀노소 시민 1백여만 명이 모인 광화문 광장의 시위 중심부는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러나 질서 정연했고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광장의 아무도 박을 대통령으로 여기고 있지 않았고 조롱하면서 빨리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요구만을 소리 높이 외쳤다. 박이 더 이상 청와대를 지키는 것은 국제적 수치이고 국정중단과 혼란을 심화시킨다는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박이 하루라도 빨리 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는 것이 그가 입에 달고 다니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것이다. 박이 자행한 무당정치의 실체는 유치원생도 이해가 가능하다. 그래서 광장에는 어느 때보다 미성년자들의 참여가 뜨겁다.

청와대 정문 앞으로 행진하려던 시위군중은 경찰 차벽에 막혔다. 경찰의 저지 행각이 행정법원의 결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밝힐 일이다. 정당한 시민의 목소리가 박에게 좀 더 똑똑하게 들릴 수 있는 기회가 봉쇄당한 것이다. 그러나 박은 광화문에서 1백여만 명이 한 목소리로 외친 ‘즉각 퇴진하라’는 함성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그 소리는 천둥소리보다 컸기 때문이다.

시위 참가 시민들이 귀가한 광장은 쓰레기조차 없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실질적으로 탄핵 당한 박과는 너무 다른 최고 수준의 시민 민주의식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시민들이 가득 메웠던 광장의 열기는 박이 물러나고 사과하고 죄 값을 치를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시민들의 분노와 그 함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제 준비해야 할 일은 박이 물러나고 헌법에 의해 새 정부가 들어서는 작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면밀히 준비하는 것이다. 진정한 국민의 정치 머슴인 새 대통령을 뽑고 국민을 위한 봉사만을 생각하는 정부를 출범시키는 것이다.

▲ Ⓒ 이상호 기자 트위터

박은 이미 국민으로부터 탄핵을 받았다는 점에서 박 이후의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 그것을 국민은 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것이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 형세를 보면 야당이 그것을 내놓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야권의 어느 직업 정치인도 소상하게, 그리고 믿을만하게 그것을 제시하지 않는다. 못하는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 정도다.

이런저런 정치인들이 차기 대통령을 노린다고 하는데 그들을 보면 너무나 익숙하게 보았고, 지금도 그런 구린내 나는 후진적 정치인 스타일과 흡사하다. 즉 최종적으로 표 계산을 한다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는 점이다. 자기가 당선될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정치적 연극을 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이다.

“정치란 그런 게 아냐”

정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그래서 그럴까. 박이 국민적 탄핵을 받아버린 상황에서 야권 등은 대통령에게 ‘2선 후퇴’ ‘책임 총리제’ ‘거국중립내각’을 요구한다.

국민의 눈에는 이미 탄핵을 당한 대통령에게 이런 저런 주문을 하는 꼴이다. 정치인 자신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쳐 상황을 돌파하고 국민에게 정치적으로 봉사하겠다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대통령에게만 주문하는 꼴이다. 향후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는 정치인이 선문답하는 식으로 미래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은 채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의 행동을 한다.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거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식은 전형적인 기회주의 태도다.

일부는 대통령 퇴진 서명 운동이나 그런 선언을 하고 있지만 이는 일반 국민과 별 차이 없는 행동에 불과하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직업정치인 다운, 거기에 걸 맞는 행동이라 보기 어렵다. 국민들을 화나게 하고 지지를 거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공식 환영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박이 대통령 당선이후 헌법을 유린하고 정부 조직을 최순실이 범죄를 벌이도록 동원하는 식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 검찰 수사에서 매일 드러나는데도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 탄핵 발의 등에 대해서 적극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탄핵에 시간이 걸리고 국회 2/3 동의나 헌재 판결과 같은 지뢰밭이 있다는 등의 이유를 앞세운다. 그러나 이는 단세포적인 상황인식이다. 국민이 이미 탄핵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국회와 헌재에서 부결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짧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과 같은 일이 박의 탄핵 과정에서 돌발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국민이 성난 파도가 되어 청와대를 집어 삼키고 정치권 전체에 대한 철퇴로 이어지는 엄청난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너무 농후하다. 이런 가능성은 물론 여러 변수가 있을 것이 분명하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애매할 때는 원칙이 최우선이다.

사회현상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다양한 결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사회 각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직업 정치인은 그에 걸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우선 눈앞에 전개되는 박의 실질적 유고 사태에 대해 국회는 직무유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을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은 국민의 머슴의 역할을 하기 위해 헌법 등에 규정된 원칙 등에 따라 물불 가리지 않는 돌격대와 같아야 한다. 정략적인 유 불리를 계산하느라 좌고우면하는 식의 기회주의적 정치는 안 된다. 과거에 유사한 사례가 있다면서 행동을 조심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그런 태도를 하는 당사자는 자신이 영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민은 그것을 꿰뚫어 보며 비웃고 있다.

국내외에서 엄청난 시민들이 박에 대해 퇴진 심판을 내리고 빨리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행동을 한 이후 정치권이 할 일은 무엇인가? 향후 정치 스케줄을 밝히면서 국민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민주주의를 꽃피게 할 수 있는, 박의 공식적인 퇴진 이후에 대해 가장 합리적인 정치 일정을 내놓으면서 국민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박이 계속 버티는 경우도 고려한 대안 제시가 나와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박을 찾아가 단독 면담이라도 하면서 국민의 뜻을 전하거나 그것이 안 될 경우 강제로 끌어내려 어떻게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식의 열정은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트위터나 페북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식의 포풀리즘에 몰두하면서 눈치나 슬슬 보는 식은 곤란하다. 이런 태도로는 SNS 시대의 정치 머슴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일상에 바쁜 국민 1백여만 명이 광장에 나와 정치적 의사를 정확히 밝히는데 직업 정치인들이 제 할 일은 안하고 시민들의 흉내를 내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수많은 대안 가운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이것이 지금 최선입니다’라고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