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귀향]

한국에서 길은 통행료를 향해 뻗어 있다. 고향 들머리에서 추석 귀향을 반기는 건 송편을 찌는 어머니가 아니라 톨 게이트다. 그리하여 그대의 귀향은 유료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 쌓이는 피로와 짜증은 오늘 한국 고속도로가 안고 있는 모순의 크기와 일치한다. 

한국인은 국가와 자본에게 길을 완전히 빼앗긴 지 오래다. 옛적 산적들이 고개마다 삥을 뜯던 것과 별반 다름없이 도로 권력은 국민을 일상적으로 갈취하고 있다. 산적에게는 법이 없었고 오늘날에는 법이 있는 게 차이일 뿐이다. 법률에 있다고 해서 사회정의일 것이라고 믿는 건 오해다. 나쁜 정의가 법의 이름으로 세상과 시대를 지배해온 역사는 유구하다. 

주요 고속도로 대부분은 벌써 유료 운영 연한이 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법대로 따져보더라도 유로도로 통행료 총액은 그 도로 건설유지비를 넘을 수 없도록 규정(제16조 3항)하고 있다. 덧붙여 이를 30년 범위 안에서 마무리하도록 명문화(시행령 제10조 1항)되어 있다. 이미 경부선, 호남선, 경인선 등 8개 고속도로는 건설비용 회수가 끝난 지 오래고 더는 통행료를 징수해서는 안 되는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이 도로들은 대부분 2개 이상의 고속도로를 하나로 간주해 통행료를 징수(통합채산제)하거나, 중간에 민자도로를 끼워 넣어 자동차들을 그 길로 가도록 유도하는 잔꾀를 부리고 있다. 명절이야말로 이들 도로권력에게는 더할 수 없는 대목이다. 

길은 애초부터 생명체의 이동을 통해 형성되어왔다. 산업사회 이후 속도는 곧 돈이었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속도 판매는 국가와 자본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철도, 항공, 자동차가 두루 그러하다. 철도와 항공이 별도의 시설, 곧 기차역과 비행장 등을 필요로 하는 것과 달리 자동차는 개별 소유와 관리, 이동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좀 다르다. 잉글랜드가 신설 고속도로에서도 통행료를 걷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세금으로 건설한 걸 다시 이용료를 받는 행위가 이중과세라고 보기 때문이다. 참고로 본격적인 자본주의는 그 나라에서 시작되었다. 

민족 대이동이라 부르는 귀향과 귀성은 기본적으로 개발독재시대의 산물이다. 급격한 농촌분해는 거대한 실향, 탈향민을 양산해냈다. 도시 외곽 빈민을 형성한 이들에게 먹고 사는 도시는 쫓겨온 객지였고 돌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의지할 귀속처는 따로 있었다. 고향이었다. 산업사회 한국인에게 고향이란 단지 태를 묻은 원시의 거처를 뜻하는 게 아니라 도시에서 정체성을 갖지 못한 채 떠도는 대중의 거대한 상실감에 대응하여 형성된 생투어리, 곧 성소다. 귀향길에 대한 원천적인 귀책 사유는 권력에게 있다는 뜻이다. 

명절 길을 잡아먹는 유령은 고속도로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30년 이상된 도로에서 통행료는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 당장은 명절 통행료 폐지다. 설령 신설 민자도로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유료귀성과 귀경은 끝내야 한다. 길은 사유물일 수 없는 까닭이다. 길도둑과 길을 훔친 자들로부터 명절 동안만이라도 길을 돌려받아야 한다. 요컨대 오늘 귀향을 지체시키고 있는 건 국가와 자본이다. 

▲ <사진제공=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