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욤나무네 감나무]

그 해 봄 
맨 처음 당신은 옆구리를 찢어 나를 받아주었습니다. 
내가 갈색 이파리로 푸르게 여름을 날 수 있었던 건
내내 당신이 
일생을 아무런 빛깔도 드러내지 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깃든 
그 날 이후 
당신은 아무런 열매 하나 맺지 못해도
봄여름겨울, 그리고 가을날
당신의 혈관에 뿌리 박은 내가 노랗게 가실을 맺을 때도
생흙 깊이 뿌리 박은 당신은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서 있었달 따름입니다.
눈이 내려 당신의 발등이 얼고 있는 걸 알면서도
나는 눈 감은 채 
위만 그리워하면서 거룩한 흉내를 내고 있었습니다. 

겨울밤 차디찬 침묵이 
여름날 잎새로 무성하게 바뀌어도
가을 서리에 갈라 터진 쓸쓸한 등걸을 타고 
이내 감꽃 피어도
당신은 어제를 잊은 양
아픔도 아주 모르는 양
당신 옆구리를 하루도 벗어나지 못한 나를
오히려 어여삐도 안타까이 여길 뿐
내가 당신을 빌려
겨우 고욤나무를 닮은 노래를 시늉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당신은 귀가 멀어 듣지 못했고
어쩌다 깊은 밤중에 
찬 바람 핑계 삼아
붉은 홍시가 무심히 떨어지는 건
당신이 살고 있는
낮은 뿌리에게로 이제사 돌아가고자 하는 까닭입니다. 

* 우리 땅에는 감나무가 자생하지 않아 고욤나무를 잘라내 접을 붙여 비로소 흔히 알고 있는 주렁주렁한 감나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