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당은 공천을 마치고 본격적인 20대 총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어느 때이든 공천 파통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파동이 있었던 적이 없을 것 같다. 여당은 친박과 비박이 혈투를 벌이는 화룡점점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옥새투쟁’이 있었고 야당도 분열 되어 도끼가 등장하는 등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 중에서 압권은 김종인 대표의 ‘셀프 공천’와 칸막이 투표 등으로 논란을 겪은 더불어 민주당의 비례대표 공천이 아닐까 싶다. 더 민주당은 비례대표 공천을 두고 김 대표가 사퇴 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이 과정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해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의 사무차장을 지냈고 애초 B그룹에 속했으나 당 중앙위의 비례대표 투표에서 여성 최다 득표로 비례대표 5순위를 받은 이재정 후보를 지난 29일 서울 신대방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 후보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 이영광 기자

“칸막이 허물고 중앙위 투표 과정…제대로 ‘정치’ 경험했다”

-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5번이잖아요. 당선 안정권이라서 소감을 듣고 싶어요.

“제가 처음 운전 면허증을 땄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과연 자동차 운전대를 잡을 자격이 되느냐’는 생각에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두려웠거든요. 그런 감정을 두 번째로 느꼈던 때가 사법시험 합격했을 때입니다. 나름으로 열심히 공부했고 그에 대하여 국가는 합격이라는 결과를 허락하였지만, 과연 제가 법을 제대로 다룰 자격이 되는지는 여전히 두려웠습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축하를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란 사람이 국회의원이란 직을 국민의 요구를 받아안으며 제대로 수행할 수 있나’는 등 새로운 시작에 앞서 두려운 마음입니다. 그 감정을 곱씹어보며 내 안의 다짐을 다시 새겨보는 중입니다.”

- 애초 B 그룹에 속하셨잖아요. 그런데 중앙위에서 칸막이가 없어져서 여성 최다 득표로 5번을 받으셨어요. 기분이 묘했을 것 같아요.

“처음 발표된 이래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꼬막 3일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많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위, 칸막이가 나뉘는 등의 애초의 상황과 그것이 없어져서 투표를 하게 된 사정 등에 대하여서는 제가 그 절차를 통하여 평가받는 입장이었던 점과 결과적으로 투표를 통하여 당선된 입장에서 개인적 평가를 거론하기에 저어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조심스럽습니다.

▲ 비례대표 선정을 놓고 더불어민주당의 내홍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월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 중인 중앙위원회의에서 비례대표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변호사로 활동하던 가운데서도 다수가 논의하는 회의체를 경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중앙위에서 일련의 상황들을 논의하고 풀어가는 과정은 아주 놀라웠습니다. 이견이 표출되고 논쟁이 오가는 가운데서도 결국에는 적절한 지점으로 견해를 좁히고, 여전히 남아있는 자신의 입장은 밝히면서도 결과를 수용하는 과정을 지켜본 것은, 정치 초입에서 제대로 ‘정치’를 경험하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 당원들이 이 후보를 선택한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다양한 입장들과 평가가 있었겠지만, 투표 이후, 몇 분으로부터 반복해서 전해들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정견발표에 대한 평가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후보자들 모두 2분 정도의 정견발표의 기회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후보님들은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춤에 있어 각자가 내세울 수 있는 전문성을 강조하는 연설이 주를 이루었어요.

그러나 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언을 이끌어갔습니다. 저는 당일 후보군으로 모셔진 많은 분이 더불어민주당이 수권정당의 위용을 갖추어 보이기에 충분한 후보님들이시라는 서두로 시작하면서, 수권정당에 이르기까지 2년 가까운 시간 야당인 저희당에 대하여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제대로 된 야당의 역할이기도 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선거 직후 예정된 테러방지법 정국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야당의 모습을 요구하는 국민에 대한 대답이 비례대표 인선에서 있어야 하고, 바로 내가 그에 적합한 후보라고 하면서 제가 변호사로서 그간 해온 활동 일부를 소개하였습니다. 당시 이러한 방식의 연설이 다른 후보와 차별화되고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필리’ 기억에 머물지 말고 ‘테방법’ 사후적 통제, 발목잡기 해야”

- 제대로 된 야당의 역할은 뭐라고 보세요?

“입법기관 본연의 임무이지요.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 수적으로 우세한 여당의 독주를 막고 적절하게 제어하는 것이 야당의 일입니다. 흔한 말로 ‘발목 잡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 말은 현재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권력을 견제하는 야당을 몰아붙이며 쓰던 언어죠. 저는 이 말을 제대로 활용하고 싶습니다. 발목 잡는 일이 바로 야당 본연의 역할입니다. ‘제대로’ 발목잡는 일이 필요합니다. 집권여당이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속도를 붙여 국민의 위험에 내몰거나 민생을 위협하는 정책을 가속화한다면 그 발목 제때 제대로 잡아야지요. 그것이 야당이 응당 할 일입니다.

▲ 테러방지법 처리 저지를 위한 192시간의 필리버스터가 끝나고 3월2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재개된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 외 156명이 발의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에 대한 수정안이 재석 157인, 찬성 156인, 반대 1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19대 국회 말미를 장식한 필리버스터의 기억이 있잖아요. 그 기억에 머물 일이 아니라, 당장 저희에겐 테러방지법이 예고됩니다. 필리버스터를 통해 많은 국민에게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알리긴 했기만, 그 위험한 법이 그대로 입법화되는 것을 용인할 수는 없지요. 또는 설혹 수적우세를 위시하여 법이 통과되더라도 사후적으로 통제를 시작해야지요. 헌법합치적인 법률인지 검토하고, 법이 남용되는 매 순간을 감시해야겠지요. ‘비판하는 야당’, ‘발목 잡는 야당’이 야당 본연의 일차적 의무입니다.”

- 정치는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긴 시간의 고민이 축적되고 있었습니다. 4년 전인 19대 총선 당시 저는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자 심사를 했었습니다. 제가 심사과정을 통하여 어떤 사람이 비례대표 후보로 적합할지 고민을 시작하면서 정치의 역할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선출된 후보들 경우 모두 제 의사로만 선출된 것이 아니지만, 나름의 고민과 기준으로 제 의견을 충분히 피력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기대하고 추천한 후보가 19대 의정활동과정에서 열심히 활동하여 국민적 성원을 얻는 것을 보면 내심 뿌듯하면서 정치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변호사로 나름 사회를 고민하면서 치열했던 과정을 거쳐왔지만, 그 안에서 느꼈던 갈증과 아쉬움이 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국회에 들어간다고 해서 일거에 해결될 일은 아니겠지만, 그 갈증의 깊이 만큼 역동적인 의정활동으로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길 바랍니다. 저 이외에도 여러 훌륭한 선배, 동료 변호사님들이 많으시고, 그분들에 비해 변호사로서도, 인간적 소양으로서도 제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다만, 제가 조심스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영역별로 가장 훌륭한 인재가 정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치인이 될 것인가의 문제는, 그 각각 정치에 대한 나름의 고민의 겹이 쌓이고 의정활동과 분야를 연결하고 소통해내는 코디네이터가 지녀야 할 자질이나 각오 등 독자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정치인은 자신이 겪고 소통한 다양한 인적 물적 경험적 자원을, 그간 제 경험의 토대가 된 단체나 활동체를 배반하지 않으면서 이를 정치적 공간에 제대로 반영하고 연결을 시킬 수 있는 정치 코디네이터로서 능력 있는 자로서 훌륭한 변호사, 훌륭한 전문가에 대한 평가나 기준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질문으로 돌아가서 말씀드리자면 그동안의 활동 가운데서 느낀 갈증에 더하여 2012년 이래 정치인이라는 실존에 대한 오랜 고민 가운데, 조심스레 출사표를 던지게 되었습니다.”

- 더민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저 역시, 진보정당의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을 하던 입장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정치적 입문의 계기를 더 민주당과 함께하게 된 것은 제1야당으로서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치세력을 포용하고 있는 너비와 그 안에서 이해관계를 조율해 가면서도 공유하는 가치를 키워가고, 입론한 정책을 관철하고 실천하는 그 가능성에 대한 선택이었습니다.

국민이 더민주를 제1야당으로 만들 주신 그 선택과 결이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여전히 여러 진보정당의 가치와 활동을 존중하고 진보정당의 여러 정치인을 선배로, 동료로 스승으로 모시고, 함께할 것입니다.”

- 5번이면서 여성으로는 최다 득표라서 정당 득표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을 것 같아요.

“최근 더 민주당에 우려를 표하시는 분도 있었고 탐탁지 않아서 비례대표는 다른 당을 찍는다고 공언하고 계신 분들이 왕왕 있습니다. 그분들의 우려에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우리 더민주에 등 돌릴 만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저와 우리당의 후보자들이 함께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설득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이재정 변호사(왼쪽)가 2012년 4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시교육청 회의실에서 열린 교육감 선거, 후보자 매수 혐의 1ㆍ2심 재판 결과와 관련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오른쪽)의 기자회견에서 함께 자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이번 비례대표 명단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아시다시피 일련의 과정 안에서 더민주의 당헌 당규에 정해진 소수자 배려를 도모했고, 청년이나 취약지역, 노동, 오랫동안 당에 헌신해온 당직자 등이 후보자로 추천되도록 하였습니다. 여전히 충분치 않다는 점에는 저도 동감입니다. 그 부족함은 저나 다른 후보들이 철저할 약자적 관점에서 더욱 노력하는 활동으로 메꾸어 나가겠습니다.”

“소외되고 침체된 대구, 정치 경쟁이 없기 때문”

- 대구 출신이시잖아요. 대구는 야당의 불모지라 할 정도로 지지도가 낮은데 여기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네. 저는 초등학교 때 잠깐 전학과 서울에서 몇 년간 다닌 것 외에는 대학까지 대구에서 나왔어요. 신림동에 상경해서 고시공부를 하던 순간에 서울로 올라왔거든요. 제 고향 대구를 어떤 분들은 고담도 시라고도 표현하시기도 하면서 대구 정치 상황에 대해 답답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이 현실인데, 저도 많이 속상합니다. 그런데 저는 대구시민을 믿습니다. 시민은 저의 편이 돼주실 것으로 봐요, 대구가 소외되는 이유는 대구 정치에 경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경쟁이 바로 침체한 대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최적의 방법입니다.

고향에 있는 많은 분이 저의 국회입성을 축하해주시고 기뻐해 주십니다. 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어른들조차도 고향에서 정치인이 나왔다고 기뻐하시거든요. 어떻게 보면 정치적인 각성이나 이론 등 거창한 것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더민주가 그간에는 막연하고 멀었었지만, 본인의 이웃이고 자기 삶을 걱정해주는 것이란 것을 생활에서 느끼도록 해주면 그분들도 하나둘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대구에서 대학교를 나오셨다고 하셨는데 국회의원 대부분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했어요. 그래서 여기에 대해 생각이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직업군으로서 소위 혜택받은 사람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항상 마이너리티, 소수자였습니다. 주류사회, 변호사사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등 어디든 저는 항상 소수였던 것 같아요. 동문도 많이 없고 제가 나고 자란 고장이 TV에서 자주 등장한 것도 아니고 그 지역에 대한 기억은 소수만 공유하는 것부터 누군가 일부러 주려고 했던 소외감은 아닐지라도 저희는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 많았거든요.

사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탓에 제대로 할 수 없는 일도 있어요. 흔히 청년의 정치참여를 이야기할 때 왜 꼭 청년이어야지만 청년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지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청년이 아님에도 청년을 위한 정치를 고민하고 장애인 아님에도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고민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당사자만 느낄 수 있어서 터치할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지역출신에 대한 안배도 그런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요즘은 지역대학이라고 명명하려고 하지만 지방대라는 말로 폄하당하는 지방대생들이 느끼는 현실의 통상의 청년들에 더해 중복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을 충분히 경험한 제가 지방대생들의 청년 문제, 그리고 한국 정치에서 많은 기여를 했음에도 소외됐던 대구 지역의 문제에 함께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새 유행하는 용어로 흙수저이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 국회에 가시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민변에서 언론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활동하고 관련 소송 등 언론 법률문제를 적지 않게 경험하였습니다. 2017년에는 종편 재허가도 예정되어 있어서 그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법률가고 누구보다도 검찰 등의 권력기관과 현장에서 많이 부딪혀왔어요.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4.13 총선에 나서는 후보들이 새정치 약속을 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병관(성남시 분당구 갑), 황창화(서울 노원 병) 박주민(서울 은평구 갑), 송옥주(비례대표 3번), 김 대표, 이철희(비례대표 8번), 이재정(비례대표 5번), 오기형(서울 도봉구 을), 정은혜(비례대표 16번), 기동민(서울 성북구 을) 후보. <사진제공=뉴시스>

검찰 개혁 문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지겨우시겠지만, 오늘도 여전한 문제입니다. 일반 시민만이 아니라, 정치권력 역시도 검찰 권력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임에도 정작 개혁을 엄두도 못 내고 있지요. 권력기관 감시 특히 검찰 개혁 문제도 저는 언론 문제 못지않게 제가 관심을 두고 주력하는 부분이며, 소관 상임위를 떠나 어느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일입니다.”

- 마지막으로 각오와 아울러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GO발뉴스> 독자님들은 수준이 높으십니다. 저 역시도 <GO발뉴스>의 독자이지만 지금은 <고발뉴스>가 두렵습니다. 저를 응원해주시고 성원해주시겠지만, 그 신뢰만큼이나 날카롭고 예민하게 바라보며 쓴소리 아끼지 않으실 테니까요. <GO발뉴스> 독자님들의 기대와 응원 끝까지 무겁게, 두렵게 가지고 가겠습니다.”